[줄귤레터] 03. Fantasy 2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린 존재의 등장!🦄

2022.06.22 | 조회 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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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넌 뭐야?”

물으면서도 조금쯤 기운이 빠졌다. 이 기묘한 생명체는 조그맸지만 예쁘거나 귀엽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뜯어보니 조금은 징그러운 것 같기도... 이렇게 생각하는 스스로가 별로였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팅커벨처럼 예쁜 요정이길 바랐는데.

녀석은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움찔하는데, 단정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에 없이 기묘한 울림이었다. 그렇게 다급하지도, 아주 느긋하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의 노크였다.

나은.”

내 이름을 나직히 부르는 목소리는 분명히 한새리였다. , 쟤 뭐야. 왼팔에 돋아난 소름을 다른 손으로 쓸어내리며 고집스레 침묵을 지켰다. 한새리 쟤 진짜 뭐지? 지금 쫓아온 거야? 화장실을? 나는 손바닥 위에서 내 엄지손가락을 구명줄처럼 붙들고 바들바들 떠는 생명체를 들여다보았다. 너는 왜 쟤가 무서워? 한새리는 예쁘고, 잘 웃고, 상냥한 앤데.

나은아, 너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그거랑.”

그거?”

, 그거.”

호기심에 못 이겨 새리에게 대답하는데 그거라는 지칭 대명사가 거슬렸다. 얘도 나름 생명인데.

얘를 왜 찾아?”

먹으려고.”

?”

농담이야. 근데 우리 얼굴 보고 이야기할까?”

분명히 농담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한새리는 다정한 앤데. 다정이 병이라고, 애들이 장난처럼 말하는 앤데. 이상하게 이 녀석을 정말 통째로 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안간 바깥이 조용해졌다. 여전히 녀석은 내 엄지손가락을 꽉 안고 떨고 있었는데, 이상한 예감에 고개를 들었다가 녀석을 떨어뜨릴 뻔 했다.

 

  Photo by Fuu J on Unsplash
  Photo by Fuu J on Unsplash

한새리가 화장실 문 위에서 두 팔로 버티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유자적하게 한 손으로는 턱까지 괸 모양새였다. 한새리는 싱긋 웃었다. , 쟤는 이 각도에서도 예쁘네. 이 소름끼치는 상황에서도 예쁘네.

나은. 그거 원래 내 거거든.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도망쳤나 봐. 미안.”

... 어떻게 거기를...?”

? 그러게. 아이돌 말고 운동선수 해야 하나?”

한새리는 자신이 한 말이 진심으로 재밌다는 듯 웃었다. 다른 애들이 봤으면 포토 카드를 제작한다느니 할 얼굴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온 몸으로 안고 기절이라도 한 듯 눈을 꽉 감은 녀석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 못생겼네. 자연스레 찡그려지는 미간을 봤는지 한새리가 한층 더 상냥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요정 같지가 않지? 그렇게 생기다니. 안 됐어, 정말. 근데 그거, 요정이래. 별반 힘은 없지만.”

요정?”

. 우리 집에서 몰래 살다가 나한테 걸려서, 내 거거든. 질리면 너 줄게.”

지금은 안 질렸어?”

아직. 질리면 꼭 너 줄게. 안 먹고.”

전에도 요정 먹어본 적 있어?”

홀린 듯한 내 목소리에 한새리가 또 낭랑하게 웃었다. 웬 허무맹랑한 소리냐는 듯. 설마 정말 그랬겠냐는 듯. 나는 웃지 않았다. 곧 한새리의 웃음이 잦아들고, 녀석은 체념한 듯 슬그머니 날개를 들썩였다. 녀석이 달아나지 못하게 주먹을 꼭 쥐었다.

얘 주면, 넌 나한테 뭐 해줄래?”

씩 웃는 한새리의 얼굴이 역시, 예뻤다.

 

 

 

 

다음 레터에서 이어집니다.

 

당신의 심심한 수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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