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36. 그건 사랑이었을까

당신에게 사랑은?💗

2023.04.27 | 조회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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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여러분은 사랑에 빠진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 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하루 온종일 한 사람을 떠올리거나 예쁘고 좋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 하거나 상대의 단점마저 감싸고 마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첫눈에 반한 적도, 상대가 그런 적도 없지만 늘 예측 불가한 상황에서 알고 있던 사람을 좋아하게 되더라고요. 가령 그의 손이 크고 투박해 든든해 보였다든지, 매일 투덜거리던 사람이 자기 일에는 진심이었다든지 하는 이유였습니다. 특히, 저는 제 몫을 든든히 해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사랑에 빠진 채 적었던 많은 단어가 시라는 형태로 세상에 배출되었습니다. 용례에 따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대로 욱여넣은 채 매일 밤 창문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던져 올리곤 했는데요.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한 번도 상대에게 전달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당연한 일이겠죠.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게 차분한 사람이 되었는데요. 제법 사랑을 믿지 않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예전 내가 느끼고 쏟아 부었던 사랑은 결국 환각물질이었구나, 인정하는 일이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했습니다. 셀 수 없이 여러 번, 무겁게 흘러가던 밤은요? 전신을 덮어버릴 듯 압박해오던 우울의 담요는요? 허망했어요. 그러나 그토록 눈물짓던 사랑이 남긴 건 처참한 폐허였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Unsplash, Jason Leung
  Unsplash, Jason Leung

얼마 전 우연찮게 과거를 마주할 일이 있었어요. 혹시라도 살다 보면 마주칠 것 같아 수도 없이 재생해 보던 광경이었죠. 요행히도 제가 먼저 피해버릴 수 있었지만 한동안은 멍했습니다. 과거의 망령이 걸어오는 듯한, 예기치 못한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수도 없이 되감기를 할 적에 떠올리던 모습과 사뭇 다른 것은 물론이고, 제가 느낀 감정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토록 미워했으면서도 막상 마주치면 다시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흔들릴 것을 걱정했는데 당혹감이 지나가고 나자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그 슬픔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요?

 

매번 넘쳐나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는 것이 저의 사랑 법이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것과 결이 달랐어요. 과거의 망령을 보았을 때, 저는 그 망령을 사랑한 과거의 제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느끼던 고통과 부질없던 희망까지도. 어둠이 드리우면 차가운 표정의 달을 올려다보면서 몸을 말고 울었던 과거의 제가 떠오르면서, 매우 슬펐어요. 누군가가 너무 그리우면 죽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던 그 애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돌아보지 않을 뒤통수를 보며 슬퍼하지 마라. 거울을 밀어주면서, 결점만 가득했던 얼굴을 똑바로 보라고 할 거예요.

 

혹시, 하며 품는 희망은 대개 절망으로 변모하더라고요. 그 중 단순한 희망만은 아닌 것들도 있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면서도, 그렇게까지 애면글면 속을 썩이던 제가 떠오르면 마음이 아파요. 사랑은 대관절 무엇이기에 그토록 저를 갉아먹었을까요? 그 의문은 아주 오랫동안 꼬리표처럼 마음 한 구석에 뭉쳐 있었습니다. 제멋대로 엉킨 털실처럼, 도통 풀어지지 않은 채로요. 사랑은 마치 환각물질처럼 저를 단박에 구름 위로 던져 놓았다가 다음 순간 진창에 처박는 것이었습니다. 마약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중독성과 오락가락함을 사랑에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만이 진짜 행복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요. 처음으로 제가 도전한 일에 조금이나마 성과를 이루었을 때, 저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어요.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행복한데? 사소하지만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고, 비로소 혼자 꾸려나갈 삶을 기대하게 되었어요. 혼자 지내는 삶은 그 자체로도 풍요롭고, 새로운 인연을 곁에 둠으로써 즐겁고, 역시나 외롭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제 두 다리로 올곧게 서야만 비로소 나아갈 수 있지 않던가요? 외로움은 사랑에 빠져도, 빠지지 않아도 진득하게 따라붙더군요. 평생의 동반자는 어쩌면 이 녀석이겠다, 하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사랑을 희구하는 밤이 찾아옵니다. 아직 이 세상은 로맨스만이 외로움의 구렁텅이에게 건져 올려줄 것이라고 외치기 때문에요. 저는 저의 나약함이 싫지만 외로움처럼 나약함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기로 합니다.

 

저는 여전히 저만이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랑을 찾아나가는 중이거든요.

 

 

 

 

 

 

 

당신의 사랑의 정의가 궁금해 묻고 싶은,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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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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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미

    0
    about 1 year 전

    오늘의 줄귤도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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