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35. 거짓말 일기

한참 지나버린 만우절! 여러분은 어떤 거짓말을 했나요?🙄

2023.04.19 | 조회 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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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 배고프다.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자음과 모음이 눈발에 섞여 휘날리는 듯하다. 오늘 먹은 건 아몬드 10, 훈제란 2, 아몬드 브리즈 한 팩이 전부다. 한 끼에 모두 몰아 먹어 버렸다. 공연히 냉장고를 열었다가 주말에 시켜 먹고 남은 치킨과 눈이 마주쳤다. 지레 놀라 냉장고 문을 닫았다.

다시 창밖을 멍하니 보았다. 여전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뱃가죽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진다. 못 참고 치킨을 꺼냈다. 넣어둔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맛있는 냄새가 난다. 냉장고 성능이 별로라 조금만 더워져도 식재료를 못 쓰게 되어 버리기 부지기수인데. 차라리 이 음식이 당장 썩어 버렸으면, 아니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참지 못하고 가슴살 부위를 골라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있다. 기름진 것은 늘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쌓인 닭 뼈가 보였다.

 

... 비상이다.

얼른 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폭식을 참지 못해서 약이 자꾸 세진다. 몸에 들어간 지방이 흡수되지 못하게 하는 약과 식욕억제제를 먹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운동하는 효과를 내 주는 약도 있어서 격렬한 운동을 하면 쓰러질 수도 있다고 했다. 정확히 어떤 약인지는 모르겠다. 약을 먹은 뒤로 집중력이 많이 흐려져서 기억력도 덩달아 희미해졌다. A는 이 약을 먹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던데 나는 아직이다.

화장실로 향했다. 당장 삼킨 기름기가 배출된다. 한숨을 쉬며 일어나 세면대에 서서 거울을 보았다. 요즘 자제를 잘 하고 있었는데, 무너지다니. 그래도 주말에는 치킨을 먹고 금세 토해내서 볼이 조금 홀쭉해졌다. 눈가가 칙칙하긴 하지만, 최근에 산 컨실러의 커버력이 좋아서 괜찮다. , 얼마 전 사서 걸어 둔 프리사이즈 원피스가 맞을지도 모른다. 요즘 옷들은 다 강아지 옷처럼 작아서 개중 큼직한 옷을 골랐는데도 너무 작았다. 맞는다면 벚꽃이 필 때쯤 입어야지! 금세 신이 났다.

 

 

 

  Unsplash, pure julia
  Unsplash, pure julia

기운이 없어 세면대를 붙들고 있던 팔뚝이 저려서 상념이 깨진다. 침대에 누워 책을 펼쳤다가 또 금세 덮었다. 멍한 눈으로 천장을 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 속에는 휘황찬란한 광채를 뿜어내는 전신거울이 있었다. 홀리듯 다가가 나를 비춰 보았는데, 완전히 날씬해진 내가 보였다.

이리 저리 몸을 돌려도 보고, 이 자세 저 자세 취해도 봤는데 하는 족족 예쁘다. TV에서 보았던 연예인들 같다. 입고 있던 딱 붙는 원피스가 조금 야한 듯 하면서도 마음에 든다. 즐겨 봤던 드라마에서 누가 입고 나왔던 옷이랑 비슷한데? 그 배우의 얼굴이 떠올라 거울을 다시 보니, 내 얼굴이 너무 커 보인다. 볼살만 빼는 방법은 없나? 역시 시술이 답인가? 찬찬히 뜯어 보니 키가 작아서 그런지 다리도 너무 짧아 보인다. 종아리가 조금 더 마르면 더 길어 보일 것 같은데, 영 아쉬웠다.

그래도 자꾸 웃음이 났다. 내일은 더 잘 참아야지.

근데... 내가 왜 이러기 시작했더라?

 

, 예뻐지고 싶어서.

예뻐지는 일에는 끝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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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시작은 만우절, 어찌 보면 거짓말의 달 아닐까요.

그 생각으로 글 모임 몽글에서 거짓말 일기쓰기를 진행했고 제가 쓴 글에 살을 덧붙여 작성해 보았습니다. 저는 한때 비싼 돈을 주고 다이어트 약을 먹은 적이 있는데요. 그 약은 제 집중력을 갉아 먹고 근육을 앗아갔습니다. 효과는 좋았어요. 프리 사이즈의 마지막 사이즈인 66사이즈 옷이 맞았고, 전체적으로 몸이 작아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던지!

그런데 말이죠. 저는 계속해서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할 수 있는데 왜 안 했어? 더 빼면 더 예쁠 듯! 생각 없는 사람의 무례한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리다 못해 덜덜 떨리는 팔과 멍해져 책 한 권 완독하기 어려운 집중력을 상흔으로 남긴 채, 내가 무엇을 얻고 있는가? 과연 끝이 있는가? 그때 저는 처음으로 외모 코르셋의 첫 번째 단추를 풀었습니다.

현재는 탈코르셋을 외형적으로 완벽히 마친 상태입니다. 내적인 코르셋도 하나하나 내려놓고 있죠. 만약 그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름다움을 좇았다면? 아마 거짓말 일기의 주인공과 같은 사람으로 컸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허황된 아름다움을 위해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괜찮습니다. 꼭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아도 괜찮잖아요?

건강하게, 지극히 본인다운 일상을 살아 봅시다.

 

 

 

 

 

 

 

 

 

 

덥지만 아름다운 어느 수요일에,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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