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04. Fantasy 3

이번 화가 마무리입니다. 정말 진짜로.🔮

2022.06.29 | 조회 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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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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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린 듯 한새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요정이 내 엄지손가락을 물었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다. 성글게 쥔 주먹 안에서 요정이 필사의 저항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한새리는 특유의 웃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 예뻐. 요정은 한새리가 아닐까? 솔직히 이건... 너무 못생겼잖아. 내 주먹을 가만히 보다가 결국 결정을 내리고 한새리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

눈을 뜨니 교실이었다. 수학 시간에 잠깐 존다는 게 깊이 잠든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친구들은 나를 깨우지 않았다. 생각을 해주는 건지, 방목하는 건지 헷갈린다. 내 수학 성적 어떡하지? 물론 깨 있었다고 공부하지는 않았겠지만. 멍한 얼굴로 하품을 쩍 하는데 누가 보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새리가 나를 보고 있다. 하품을 너무 추하게 했나? 머쓱해져 한새리에게 씩 웃어보이자 한새리도 마주 웃어준다. 역시, 쟤는 천사야. 웃는 얼굴도 엄청 예쁘네. 한새리의 웃는 얼굴에 환각 성분이라도 있는지 몽롱하다. 마저 남은 잠기운인가...

나은.”

?”

나 한새리야.”

, 알아.”

뭐를?”

?”

뭘 아는데?”

너를 안다고.”

대뜸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한새리가 의아하다. 일단 쟤가 내 이름을 안다는 게 신기하고... 근데 왜 이 생각에 기시감이 들지? 마치 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것처럼. 또 잡념에 빠져들던 찰나, 한새리가 또 해맑게 웃으며 내 앞자리에 앉아 뒤로 돈다. 얘 왜 이래?

, 할 말 있어?”

... 나은이는 요정 믿어?”

갑자기?”

, 요정. 작고 날아다니고... 예쁜 것.”

?”

기억 안 나나 보네.”

한새리는 내 농담에도 별다른 동요 없이 미소 지은 얼굴 그대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머쓱함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이면서 생각했다. 저 웃는 얼굴이 무섭다고. 말을 섞어본 것도 이번이 처음인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Photo by Stefano Ciociola on Unsplash
  Photo by Stefano Ciociola on Unsplash

-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 새리는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새리는 이라는 공간을 둥지라고 부르긴 했지만. 둥지에 도착한 새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내려놓은 뒤 침대에 푹 쓰러져 누웠다. 꼭 있어야 할 것만 있는 자그마한 원룸이다. 책상 근처에서 기묘한 울음소리가 들리자 새리는 누운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한 얼굴이다. 새리의 시선이 닿은 곳은 책상 위. 책상 위에는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듯한 인테리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엔티크한 새장이 놓여 있었다. 새리는 새장 속 생명체를 빤히 보다 싱긋 웃었다. 모두가 새리를 우러러보게 만드는 그 미소였다.

이번 나은은 어떨까?”

새리의 달콤한 목소리에 새장 속에서 철창을 흔들며 울부짖던 요정의 울음이 멎는다. 일순간 모든 표정이 사라진 듯한 얼굴. 마치 흰 도화지 같은 얼굴이다. 비로소 요정의 이목구비가 보인다. 나은의 얼굴과 같다. 그것도 잠시, 요정은 전보다 더 격렬하게 철창을 쥐고 흔들며 꺾인 날개를 펄럭인다.

나은, 포기해. 저번 나은이가 네 날개를 꺾었잖아.”

나긋하게 말을 마친 새리가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 별안간 침대 위를 뒹굴며 마구 웃어대기 시작한다.

, 너무 웃겨! 너랑 약속한 게 몇 년이지? 10? 네가 너라는 걸 알아챌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새리와 눈이 마주치자 요정의 얼굴은 전보다도 더 일그러진다. 저주의 조건이다. 나은이 요정이 된 자신을 알아채지 못하면, 얼굴은 더욱 더 일그러진다. 정답으로부터 한 걸음 더 멀어진다. 요정은, 아니 나은은 울부짖는다.

 

 

 

다음 레터는 새로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당신의 심심한 수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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