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지난 주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말았는데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반성, 또 반성하고 있습니다 🥲 역시 세이브 원고를 시간날 때마다 적어두고 예약 발송을 해야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하나의 핑계를 대자면, (나름) 비수기를 노리고 굉장히 빠른 여름 휴가를 다녀왔는데요! 더울 때 더 더운 나라로 가는 걸 선호하지 않았는데 나름 계절이 맞으니 재밌는 옷도 사고 하며 정말 푹 쉬다 왔습니다!!
GPT발 투자 열풍에 편승하지 않은 이유
사실 20년대 초반에 AI 광풍이 불 때 수많은 전문가, 투자자들이 AI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 것을 볼 때에는 딱히 판단이 서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시그널은 있었는데요. 당시 투자 현장에서 www, 모바일 다음의 패러다임으로 AI를 고르면서 + 조금 더 도전적인 멀티플을 위해 대형 VC들도 초기 투자를 시도하면서 '일단 탑다운으로 될 만한 도메인을 정하고 잘할 만한 팀에 밀어넣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VC업계 전체적으로 팽배했습니다.
그 때 정말 많은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고, 미팅을 할 때마다 밸류가 2배씩 뛰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그러한 서비스들은 다 나쁘지 않은 사용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는 하나의 독립적인 비즈니스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투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들이 이후 OpenAI, MS, 구글의 기조 연설 한 번에 썰물처럼 쓸려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때 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요. 어릴 때 열심히 스마트폰 메모리 정리 버튼을 눌렀었는데, 어느 순간 OS 차원에서 최적화 기능을 배포하면서 아무도 쓰지 않게 되고 말았던 거죠.
국내 AI 스타트업 투자 동향
아마 OpenAI가 GPTs를 낸 순간부터, 수많은 GPT wrapper(AI 모델에 적절한 프롬프트와 UI를 감싼 제품) 대신 B2B에서 AI를 활용하는 쪽에 많이들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저보다 천 배는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Y Combinator에서도 W24 배치에서 AI 투자 비중을 엄청 늘렸고, B2B 서비스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지금까지 1) 일반적인 B2B SaaS에 AI를 탑재하거나 2) 기업의 AI 도입 니즈를 해결하거나 3) 법률, 금융, 의료, 반도체 등 굉장히 버티컬한 영역에 도입되는 AI 정도가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아무래도 general한 영역은 GPT 선에서 정리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또 한국의 B2C 시장 자체가 전체적으로 하락세라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지금은 항공우주, 로보틱스 등 '쇠맛'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AI가 꽤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는 기업이 AI로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욕설이나 선정적인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를 출력해버리면 난감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red teaming LLM' 중인 보안 스타트업들도 꽤 보이구요. 여전히 CS 분야에서도 기회가 많다고 느껴집니다.
AI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사실 위에 제가 이래저래 적었지만, 링크드인이나 디스콰이엇, EO 가서 스크롤 몇 번만 내려보면 엄청난 인사이트를 가진 분들의 잘 정돈된 아티클이 이미 많습니다. 제 레터를 읽어주시는 구독자님이라면 저의 작고 하찮은 생각이 궁금하실테니, 제가 가진 생각을 두서없이 나열해볼까 합니다.
1. 생산성: 0.99 ≠ 1
정리하자면, '1인분 못하는 AI는 안 쓴다' 라고 생각합니다. GPT를 좀 잘 써보려고 이래저래 꿀팁들을 많이 찾아봤는데, 제가 잘 못 쓰는 건지 결과물을 출력할 때마다 영 미덥지가 않습니다. '너가 개쩌는 초기 세팅과 함께 기가 막힌 프롬프트를 안 넣으니까 그렇지!'라고 해도 저는 크게 설득이 안 되더라구요. 마치 GPT를 마스터하지 않으면 당장 내년에 깡통 찬다는 식으로 뭇 대중의 우매함을 가엾게 여기는 선지자들이 가끔 있던데...그런 이야기는 블록체인, 메타버스, VR 붐 때도 실컷 들어서인지 와닿지는 않습니다 😅
대신 반대로 엄청난 wow moment를 경험한 적도 있는데요. Canva로 이미지를 만들거나, Jenni AI로 리서치를 정리하거나, Supernews를 통해 NVIDIA의 price band를 근거 자료와 함께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일들이 그랬습니다.
결론적으로, 적어도 내가 뭔가를 더 손대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결과물을 일정한 퀄리티로 계속 받아보는 경험이 있어야만 AI를 비로소 생산성 영역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인턴한테 어떤 업무를 부탁한다고 가정합시다. 뭘 요청할 때마다 일일이 손을 봐줘야 한다거나, 잠깐 신경 안 쓰면 나무위키 긁어서 띡 내민다면 '에휴, 내가 하고 만다'하게 되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내 업무를 덜어주면서 얻게 되는 효용이 분명 있지만, 결국 그럼에도 내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비효용이 더 크게 느껴지면 이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1-1. 생산성: 의도적인 0.99
분명히 내가 손대지 않아도 되어야 쓴다고 했는데, 갑자기 말이 바뀐 것 같죠?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위의 의견과 일맥상통합니다. 다른 분께 전해 듣고 인상깊어서 기록해둔 말이 있는데요. '완전자율주행 시대가 오더라도 포르쉐는 핸들을 없애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이 결국 AI 코파일럿의 미래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AI는 분명 1인분을 온전히 수행해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단순히 결재만 하는 사람에 머무르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인간의 통제권을 박탈한 완전 자동화는 마치 포토샵 작업을 PNG로 전달하는 직원과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내가 손을 대지는 않더라도 PSD 파일로 받아보아 유사시에는 레이어 단위로 수정할 수'도' 있다는, 통제권을 남겨주는 방식이 생산성 AI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2. 엔터테인먼트 & 웰니스: 0.99 ≈ 1
개인적으로 상기 분야가 AI를 접목하기 가장 좋은 영역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사람의 감성에 소구하다보니 약간의 오류에도 너그러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강화학습을 적용하기도 용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1인분을 해버리면 불쾌한 골짜기가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챗봇을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 TIPS 지원기간을 8번째 다르게 답변하는 챗봇 A
- 내일 무슨 옷을 입을까? 라는 첫 질문에 최근 30일간 착장을 분석해주는 챗봇 B
- 점심 뭐 먹을까? 라는 질문에 시일이 지날수록 내 취향에 가까운 대답을 하는 챗봇 C
A는 업무 관련이기 때문에 자꾸 틀리면 너무 짜증이 납니다. B는 정확하긴 한데...뭔가 스토커같고 소름끼칠 것 같구요. C가 초반에는 부정확하지만 점점 나를 알아간다는 느낌을 주죠.
그래서 결국 무언가 '육성'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만의 아이돌을 키울 수도 있을 것 같고, 혹은 반려동물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혹은, 처음에는 아니지만 어느샌가 나보다 나를 잘 알게 되어 멘탈에 도움을 주는 웰니스 분야에도 적절하구요. 서로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결국 영화 'Her'가 실현되는 것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구요. GPT-4o 시연 영상에서 괜히 감정분석/표현 쪽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3. 핀테크: 아무튼 내 돈 불려줘!
생산성 영역에서는 통제권을 인간이 가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만, 돈을 번다는 개념 앞에서는 무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퀀트니 뭐니 모르겠고, 장투니 단타니 됐고 내일/다음주/내년에 지금보다 내 돈이 늘어나면 장땡인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철저히 이 영역에서는 투자 성향이나 방법론 등 개인 맞춤형 로보 어드바이저나, 투자 대시보드는 솔직히 B2C에서 소구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결국 엔드 유저 입장에 국한된 이야기이고, 돈을 벌기 위해 자산 운용을 담당하는 은행/증권사/보험사 등의 금융사는 그 뒤에서 다양한 AI 기반 인프라/서비스를 필요로 합니다. 고객의 리텐션이 너무나도 중요해졌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상품의 가짓수가 고객의 수만큼 많아져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또, 실제 투자 의사결정과 상관없이 실제 보유자산에 기반한 CRM 마케팅을 위한 콘텐츠를 많이 생산해야 하는데 기존의 인력(애널리스트)만으로는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AI의 도움을 필요로 할 거라고 봅니다.
4. 압도적인 시간 절약 - 순간이동?
섹터에 상관없이 '순간이동'과 같은 경험을 공통적으로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커머스나 콘텐츠와 같이 consumer 영역에서 혁신을 가져올 것 같은데요. Perplexity와 Google Circle to Search가 적절한 예시인 것 같습니다.
perplexity는 원하는 영역만 집중하여 검색할 수도 있고, 혹은 발견할 수도 있게 해주며 한 눈에 여러 결과를 늘어놓고 보여줍니다. Circle to Search는 예전의 '이미지 검색'을 압도적으로 개선하였구요.
결국 두 기술은 '적절한 키워드를,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여러 번 떠올려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으로부터 해방시켜줍니다. 이 과정은 레퍼런스를 찾거나, 흐릿하게 기억나는 웃긴 쇼츠를 찾거나, 언젠가 식당에서 본 커틀러리의 구매 링크를 바로 전달해줄 수 있는 '순간이동'과 같은 경험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서비스들도 결국 이 정도의 가치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버 테크놀로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상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평소에 중형 세단에 대해 알아보던 유저가
- 옥외 광고 솔루션이 도입된 자동차 전시장을 지나면
- 위치를 기반으로 해당 매장의 브랜드에서 신차 프로모션 광고 푸시와 함께 가장 오래 시선이 체류한 차종을 최상단에 보여주고
- 자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정 가격대가 산출되고, 오토론을 위한 카드/캐피탈 예산과 함께 자동차 보험을 제안받은 후에
- 예상 출고 스케줄을 몇개 구글 캘린더에 placeholder로 세팅해주는 경험
적고 보니 상당히 많은 서비스들이 seamless하게 연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술적 구현보다도 이해관계를 풀어나가는 게 어쩌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의 아주 개인적인 견해를 적어보았는데, 사실 겨우 정돈된 것이 저 정도고 아직도 대부분은 엉킨 상태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AI는 전기를 낭비하고 인간성을 마비시키는 것에 불과한 거품이라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AI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 사이 어딘가에 정답이 있을 거라 믿고 나중에 생각이 정리되면 또 공유드리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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