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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이란 제주의 방언입니다.

2023.04.01 | 조회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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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어둑한 그 밤에, 적어둔 글을 들고 방문할게요.

 허물이라는 뜻이래요.

 

저는 작년 봄부터 제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길게 있으려는 생각은 없었죠.

그냥 가볍게 머릿속을 정리하면서 이후에 해야할 것들을 정해보자는 마음으로

아무런 걱정없이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느껴보려고 온 게 벌써 약 1년 전이네요.

 

허물이라는 뜻을 가진 흘. 결국엔 사람들은 상처로 만들어지는

허물을 벗겨내고 벗겨냄에 있어서 

성장하고 또 다시 삶을 살아낼 용기를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키워드는 두가지인데요

바로, '결핍'과 '망각'입니다.

인간은 결핍을 느껴야 노력할 수 있고,

어느 순간은 망각해야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테니깐요.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표현 두 가지가 제 삶의 원동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울도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방문에서 풀어보겠습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그 허물을 벗어내는 제주에서의 에피소드를 풀어나가려 합니다. 

 

 

 

#흘 - 1

처음 제주에 내려온 날.

나는 가벼운 자켓을 입고선 소박한 짐을 꾸려 비행기를 타고 외딴 섬으로 향했다.

구름도 천천히 흘러가는 밤 하늘을 바라보며 

익숙했던 동네가 아닌 새로운 동네로 내 마음을 옮겨왔다.

 

도시였다면 늦지도 않았을 시간, 8시 즈음, 고향에선 걸음 걸음 마다 있던

가로등이 몇 안 켜진 동네를 바라보고선

무서움보단 되려 별 구경을 자주 해야겠단 생각을 했고, 

아무런 소음도 없는 거리는 외롭기보단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제주살이를 결정하기전에

우선 일주일만 일을 경험해보면서 제주에 내려올지를 결정하라고 해주었던 

사장님들과 만나,

몇 마디를 나누어보고는

한 시간도 채 지나지않아

제주에서 꽤 오래 눌러앉아 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공간에는 김동률의 노래가 흘러나오고있었고,

세대가 다른 우리가 같은 음악에 대해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또 자신의 에피소드를 말하고있다는 사실에

이 곳, 이 사람들과 함께면 타지에서의 삶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걸 사랑하는 사람들인 것이라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지회하는 제주에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밤에는 심야식당에서 서버로, 아침에는 게스트하우스 테라스에서 커피를 내렸다.

 

맛있는 음식을 여행자들에게 대접하는 일은  나에겐 너무 설레이는 일이었다.

음식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전달해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건 

나에겐 설레이는 일이었다.

사장님이 처음으로 나에게 당부한 것은 가볍고 푸근한 말 한 마디였다.

평소와 같이 "식사는 괜찮으셨어요?" 라는 말을 혼자 여행을 떠나온 사람에게 전했지만,

"오늘 처음으로 말을 해봐요. 감사해요 너무 맛있어요. 공간도 너무 예쁘구요. 잘먹었습니다!"

라는 예상치도 못한 대답을 들은 이야기를 들었다.

 

항상 사람 사이에 감정이 오고 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썬 

따듯한 밥 한끼를 전하는 일, 아니

이 여행자들에게 온온한 마음을 전하는 일에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우리에겐 형식적으로 묻는 질문들이

여행자에 입장에선 너무나도 큰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깨닫는다.

그 기억에 또 찾고, 응원해주는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식당에서 일한다는 건 참으로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 일원으로 이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여행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이전에는 바리스타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던 나는 

제주에 내려와서도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캐리어에 다른 짐들은 내쳐두고 결국엔 브루잉에 필요한 도구를

넘치도록 담아 제주에 내려왔다.

드리퍼 두 개, 온도 유지, 조절이 되는 드립용 전기포트,

종이필터, 붓, 머들러, 서버, 핸드밀까지. 

홈카페를 꿈꿨던 내가 몇 년에 걸쳐 장만한 든든한 내 무기들이었다.

 

내 직업 바구니에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담은 것은

커피라는 분야 자체에도 너무 큰 매력을 느꼈지만,

커피를 나눌때에 가볍게 나누는 이야기들을 더 사랑하는 나는 

내 무기로 여행자들을 사로잡고 싶었고,

사장님께 허락을 받아 아침마다 여행자들이 조식을 먹은 후에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는 데크에서 자유로운 팁을 받고

작은 카페를 열어보기로 결정했다.

필요한 도구들을 깔아놓고, 선물받은 앞치마를 차려입은 후 데크에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아침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겐 행복감이 가득 차오르는 행위였다.

커피를 내리면서 얼굴도 모르던 사람의 여행 이야기를 듣다가

커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또 좋아하는 것을 말하며 신난 모습을 숨기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자아를 꺼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이, 성별, 취향 등 모든 걸 불문하고 사랑스러운 얼굴 그 자체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을, 현재에 대한 감정을, 미래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여행자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좋았다.

좋은 영향을 서로에게 끼치는 일이 나에겐 무엇보다

값진 일이라고 느껴졌다.

나의 구부정한 어깨처럼 굽어진 마음이 이제서야 펴 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에 관해 무엇을 적을까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는데

이 글을 적다가 결정했다. 아무래도 나의 토요 방문은

제주에서 만난 인연들과의 만남으로 인해 내가 느낀 것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방문이 될 것 이란 것을.

제주, 이상하리만치 사랑이 부는 섬. 그 섬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to be continued-

 

 

 

 

 

 

 

 

 

 

늦은 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안온한 밤 보내세요. 

 

+인스타그램 계정도 활성화하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만 올라가는 글도 생길 터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instagram: @knock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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