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채은입니다. 메일링 플랫폼을 이용하면서 약간 달라진 모습으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기분 좋은 새 단장과 함께 1편부터 3편까지의 메일을 정돈해서 다시 보내드립니다. 고맙습니다.
1. 아침 일찍부터 기차를 타고 옆 동네 프랑크푸르트에 가고 있다. 나에게 오전 11시 37분은 이른 아침이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의 방문은 내 일상에도 활기를 불어넣어 줬다. 프랑크푸르트(이하 프푸)에 가는 것도 친구 덕분이다.
개인적으로 프푸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내가 사는 동네에 비해서 비교적 산만하고 악취가 나는 곳, 인종차별과 캣 콜링을 더 쉽게 겪을 수 있는 곳, 차가운 빌딩이 가득 찬 곳. 모든 게 과포화 된 그곳을 보면 내 고향 서울이 떠오른다.
너무 비슷해서 가기 싫었던 것도 같고, 어쩌면 서울에서의 불안하던 내 모습이 떠오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맛있는 빵집(이름은 Zeit für Brot), 넓은 미술관 거리와 쇼핑 거리, 한강을 닮은 긴 라인강과 공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갈 가치는 충분하다. 관광객인 친구에게 한 번쯤은 보여주고 싶은 곳이었다.
2. '독일에서 온 편지'는 내 예상보다 많은 분께 닿게 되었다.
구독 신청자가 1명만 돼도 시작하려고 했던 건, 아무리 많아도 두세명의 신청자가 전부일 거로 생각해서였다. 신청해 주신 모든 분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내게만 남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 좋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진 것을 사람들과 나누고 함께 호흡하고 싶다는 생각이 짙어진다. 상대가 없으면 구현할 수 없었을 소망은 이 글을 읽고 있는 37명의 여러분 덕분에 이루게 되었다. 나의 <언어>와 일상에 궁금증을 품고 표현해 준 여러분에게 감사하다.
3. 요즘은 <언어>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날이 많아졌다. 독일에서 만난 같은 학과 친구 비올레따의 말이 시발점이었다.
4. 지금껏 <언어>라고 하면 글, 수화, 외국어 정도를 생각했던 편협함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수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세상을 탐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수많은 사람의 글에 위로받아서 시작했던 블로그도,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했던 그림도, 막연하게 어감이 좋다는 이유로 배운 독일어도, 교환학생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더 많이 대화하고 싶어서 배우기 시작한 스페인어도, 언젠가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수화도. 모두 <언어>에 대한 갈망을 뿌리에 두고 있는 것들이었다.
무엇도 꾸준히 한 적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저 매 순간 속해있는 세상과 속하고 싶은 세상의<언어>를 배우고 싶어서 방랑하는 인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홀로 부유하는 섬 같은 나의 방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5. 나를 이해하는 순간은 언제나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순간이 쌓이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지니까.
남의 의중은 흐린 안개 같지만, 적어도 자신에 대한 것은 인생에서 명확하게 또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여러분은 <언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장 사랑하는 <언어>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6. <언어>를 사랑하는 나는 오늘도 독일어를 한 번이라도 더 쓰고 싶어서 비교적 익숙한 영어 대신 독일어를 뻐끔거렸다. 서툴게 다른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나의 <언어>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이 시간이 진심으로 감사하고 소중하다.
나는 이것을 단순 메일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글을 나누고 싶던 마음과 내 글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이 만나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끼리 공유하는 일종의 비밀 교환 일기장 같은 느낌이랄까.
다시 한번 공지하자면 글을 보내는 일시는 독일 기준으로 수요일, 토요일 밤 11시이다. 한국 기준으로는 목요일, 일요일 아침 6시가 될 것이다.
시차를 넘어서 1달간 만나게 될 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그 첫 번째 편과 함께 좋은 하루를 보내시길 바란다.
Tschüss! Bis dann. (독일어로 '잘 가! 또 보자.'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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