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만년 떡밥 중 하나가 바로 '사람은 고쳐쓸 수 있는가'다. 사실 사람이 탱크도 아니고, SCV 리페어로 어떻게 고쳐쓸 수 있겠는가. 차라리 그러면 좋겠다만.

저 질문에 대한 답은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가치관을 볼 수 있는 실마리 중 하나다. 리트머스지라고 하기엔 너무 약하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바뀔 수 있는가는 진보와 보수의 가치관 차이를 볼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크기 때문에, 교화를 선호한다. 아닌 사람은 분리를 선호한다. 그렇기에 고쳐쓸 수 있는 사람은 엄격한 처벌 시스템보다는 교화를 선호하며, 인간 개개인에 대한 믿음이 이어진다.
고쳐 쓸 수 없다는 사람은 인간의 자발적인 변화에 대해 회의적이며 그만큼 강력하고 촘촘한 교육시스템, 처벌과 분리를 선호한다. 왜 교육이 중요하냐면, 개체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시스템을 강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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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차치하고... 난 사람의 변화는 믿으나 고쳐 쓸 수 있는가는 의문이다. 내가 뭘 고쳐 야발ㅋㅋㅋ
인간은 변한다. 진짜 변한다. 백종원이 총들고 협박하니까 홍탁집 형도 변하더라. 큰 손실을 봐도 변하고, 건강이 나빠져도 변한다. 죽을 위기를 겪고 가치관이 변한 사람의 이야기는 많다. 이런 극적인 사례를 제외하고서도 많다. 10년 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얼마나 다른가. 신입사원이던 시절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그렇다. 인간은 변한다. 대가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이 오거나, 시스템 속에서 누적된 경험치에 따라 인간은 변한다. 역으로 보면, 정말 강한 충격을 주거나 혹은 오랫동안 훈련받아야지만 변하는 것.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고쳐 쓰고 싶은가? 일하는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고쳐쓸 이유는 없다. 그 사람을 고칠 바에 다른 사람 쓰는 게 더 빠르다.
다만, 인간관계에서는 약간 다르다. 비즈니스적으론 고쳐 쓸 바에 안 쓰거나 다른 거 쓰는데, 인간 관계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선택지는 그 싫어하는 모습도 수용하거나 그 모습을 외면하거나 혹은 그 모습이 싫으니까 적당히 선을 긋는 거다 (우리는 선을 긋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30대다!)

설득 이론은 인간을 흑백의 이분법이 아닌 그라데이션으로 본다. 개인의 ANCHOR POINT는 각기 다른 위치에 있고, 대화를 통해서 저 point가 약간씩 이동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는 그라데이션의 평면에 있고 각자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이동하는 것인 셈.
인간관계는 타협의 연속이다. 내가 그를 나에 맞게 고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동시에, 나를 그에 맞게 고치는 것도 어렵다. 적당히 수용하고, 적당히 외면하고, 적당히 선을 긋는 거다. 예를 들어, 난 종종 비속어를 찰지게 쓰는데 그게 불편한 친구 앞에서는 정말 비속어를 안 쓴다. 그리고 존대하면서 친구로 지내는 관계도 있고.

사람은 고쳐 쓸 수 있는가? 내가 그를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변할 수 있다. 그가 변할 수 있는 환경을 내가 제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난 그를 고쳐서 쓸 수 있다. 내가 제공할 수 없다? 그러면 누군가를 고쳐서 쓸 생각을 버리자.

인간은 생각보다 강하고, 인간은 생각보다 약하다.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면 확신과 장담은 정말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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