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추후'의 뉴스레터

2021.03.22 | 조회 1.95K |
0
|

추후

우리는 서른살이 됐고,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세상을 완전히 떠나기 전 7일 동안 머무는 곳 림보. 죽은 자들은 여기서 가장 소중한 기억을 골라야 한다. 그럼 림보의 직원들이 그 추억을 촬영한다. 그리고 7일째 되는 날 그들은 촬영된 영상들을 관람하고는 그 추억만을 간직한 채 영원에 잠들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히로카즈가 영화를 준비할 때 실제로 인터뷰를 했던 비전문배우들이 채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던 히로카즈 만의 이 표현은 그 자체로 신선한 시도들이고, 오히려 배우보다 더 진솔한 사연들이 전달된다. 또한 ‘림보’라는 판타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적이고 일상적으로 그려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판타지 영화라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이기도하다.

주인공 모치즈키의 시선을 통해서 결국 이 영화 자체가 영화 현장, 스탭들에 대한 히로카즈의 헌사로 마무리되는 짜릿한 순간도 존재한다. 그리고 영화를 감싸고 있는 히로카즈의 세상, 인간, 인생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왜 내가 히로카즈 영화를 좋아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많은 장점들이 있는 영화다. 그럼에도 그 많은 장점들을 넘어서 나에게 이 영화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남는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가요? 

선택을 하는 사람들. 나는 그 사람들이 어떤 기억을 선택했는지 보다, 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을 선택하는 그 행위 자체가 참 흥미로웠다. 대다수는 평범하게 선택을 했지만, 몇몇의 태도는 좀 달랐다. 


“그 기억을 선택하면 나머지는 지워지는 것인가요?” 

“난 기억을 선택하지 않겠다”


인생은 행복하지만은 않다. 사실 대부분은 불행하고, 행복은 순간이고 찰나이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 그것을 제외한 전부‘를 지우려는 사람. 어떤 기억을 택함으로써 나머지 기억들에 대한 소홀한 맘을 갖고 싶지 않아 선택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  

나는? 영화는 나에게도 질문했고, 당연히 고민에 빠진 나는 되려 슬퍼졌다. 한 가지 기억만을 가지고 떠나야만 한다는 것. 더불어 내 인생이 그 하나의 기억으로만 남아야 한다면 난 슬플 것 같았기에. 행복하지만은 않았더라도 내가 살아온 시간에 대한 책임 같은 것. 어떤 기억을 택함으로써 나머지 기억들에 대한 소홀한 맘을 갖고 싶지 않으려는 사람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한편으론 그토록 행복한 기억이 나에게 있었던가? 없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인가 싶다가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 이 생각을 하는 이 순간, 이 영화로 인해 내 인생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뀌었음을 느낀다. 선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자연스레 우리네 인생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더라도, 행복하기만 했더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을 개개인에 따라 속속들이, 혹은 수박 겉핥듯이, 어쨌든 돌아본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작은 시간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엄마가 자신을 무릎에 눕혀 귀를 파주었던 그 순간.

입대를 하기 전날, 사랑했던 그녀와 아무 말 없이 벤치에 앉아있던 그 오후.  

30년을 함께한 아내와 처음으로 영화를 본 후 공원에 앉아있던 그날. 

앞으로 결혼기념일엔 영화를 보러 오자던 그 말. 

 

작다면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지만, 위 기억들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선택한 기억들이다. 가장 소중해서 평생을 머물고 싶었던 그 기억들은, 화려하고 짜릿했던 순간들이 아니라 그때는 그저 지나갔을지도 모르는, 작다면 작지만 너무나도 평온했던 순간들이다. 행복이라기보단, 평온함에 가까운 그 순간들. 나는 내가 보내는 지금 이 작은 시간들도 나중에 내가 선택할 수도 있는 소중한 시간임을 느낀다. 모든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 희소성을 갖으며 더 값진 기억이 되니까. 그리고, 나도 결국은 어떤 순간을 선택했다. 

내가 뽑은 기억 역시 내 삶 속에서 가장 평온하다고 생각했던, 그렇기에 이 영화의 질문 그대로 그 순간에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이다. 모든 기억이 그렇듯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기에, 너무나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의 기억. 자세한 건 비밀! 

[원더풀 라이프]의 한 장면
[원더풀 라이프]의 한 장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당신이 평생 머물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원더풀 라이프]를 보고 직접 자신에게 질문해보시길. 그리고 평범하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당신의 삶 속에서도 평생 머물고 싶은 찬란한 순간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당신의 삶도 이미 [원더풀 라이프] 임을 깨닫기 바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쓴이: 유브로 

소개: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 유죄.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 네 명이 모여 글을 씁니다. 영화/라이프스타일/문학(시, 에세이, 소설)/음악에 관한 글을 매주 [월/화/수/목]에 발행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추후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추후

우리는 서른살이 됐고,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뉴스레터 문의 : wlwys819@kakao.com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070-8027-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