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서른에 드디어 B, D, C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추후'의 뉴스레터

2021.03.23 | 조회 7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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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른살이 됐고,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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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을 때면 엄마는 종종 장을 보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가곤 한다. 물론 철저하게 ‘짐꾼’ 역할이지만, 가끔은 역할의 한도를 벗어난 질문을 받기도 한다.

“이 만두 어때? 2+1인데, 싸다”

나는 다른 브랜드 냉동 만두 제품을 집었다.

“이게 맛있어”

“에이, 그건 행사 상품이 아니잖아, 하나밖에 안 주는데?”

“어차피 사놓고 먹지도 않고 몇 달 동안 냉동실에 박혀있을 거 같은데..”

“사놓으면 먹게 돼 있어, 적당히 맛있잖아, 가성비도 좋고”

그렇게 주섬주섬 2+1 냉동 만두 제품 세 개를 카트에 담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가성비’라는 단어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했다. 가성비,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가성비를 따진다. 인터넷을 보면 ‘00 제품을 사고 싶은데 00 VS 00 골라주라’ 같은 글을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어떤 식품이나 제품을 고를 때, 가격 대비 성능(OutPut)을 따지는 일은 흔한 사고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가성비, 합리적인 의사결정, 중요한 일이다.

최근 취업고민 사이트에서 A회사와 B회사를 놓고 고민하고 있는 글을 봤다. 연봉을 따진다면 A회사였고, 하고 싶은 직무를 따진다면 연봉은 적지만 B회사였다. 한마디로 '가성비'를 따지면 A회사고, 거창하지만 꿈을 좇으면 B회사였다. 그 글에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초봉 무시 못 합니다'부터 시작해서 '꿈을 좇으세요'까지. 

내가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했던 때가 언제였더라. 예술하겠다고 수능 준비를 때려치웠을 때? 그리고 몇 년 동안 했던 걸 또 그만두기로 했을 때? 다시 늦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생각해보면,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진 않는다(하지만 후회가 1도 없었던 건 아니다).

만두로 치면, 나는 맛 6에서 7 정도 맛 세 개짜리 냉동식품을 고르기보다는, 언제나 맛 10짜리 만두 제품 하나를 먹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은 그 만두가 맛 10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으로 냉동 만두를 먹었다. 그렇게 맛이 없어 보이던 만두도 기름을 프라이팬에 두르고 노릇노릇 구워내자 적당히 그럴싸했다. 젓가락으로 만두를 집어 한입 베어 물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만두피에서 나는 밀가루 맛이 너무 거슬렸다. 그러자 아까 골랐던 만두가 생각났다. 그 만두를 선택했으면 더 만족했을까? 

문득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고 했던가. 나는 B(비 X고 만두)와 D(동 X 만두) 사이의 C(C발 또 잘 못 선택했네)를 드디어 이해하게 됐다. 

만두를 고르는 일, 아니 무엇이든 선택하는 일에는 가치관이 담긴다. 흔히 사람들은 갤럭시를 쓰는 사람을 ‘가성비’, ‘효율성’에 비견하며, ‘아이폰’을 쓰는 사람을 ‘멋’과 ‘세련됨’에 비교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한때 아이폰을 썼고, 그 후 갤럭시를 썼으며, 지금은 LG를 쓴다. 마치 내 인생 같다. 꼭 한 번씩 다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 그래서 뭐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다 장단점이 있다. 그 어느 하나도 완벽하진 않았다. 그러니까,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는 게 중요한 일 아닐까. 

예전에 한 ‘무한동력’이라는 웹툰에서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나,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나?’하는 대사가 담긴 짤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20대 초반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래 맞아, 꿈이 중요하지. 가난해도 꿈만 있으면 돼. 돈이 없어도 낭만이, 꿈이, 있잖아. 

그런데 서른이 된 지금, 나는 조금 달라졌다. 죽기 전에 못 먹은 밥을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지금은 종종 보이곤 하는 꿈을 좇으세요, 하는 말이 조금 불편하게 다가온다. 서른이 된 나에게는 못 먹은 밥도, 못 이룬 꿈도, 둘 다 중요한 거야. 그러니까 남은 인생도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또 후회하고, 그렇게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남은 만두를 꾸역꾸역 먹으며 생각했다. 


글쓴이: 유령 K

소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 네 명이 모여 글을 씁니다. 영화/라이프스타일/문학(시, 에세이, 소설)/음악에 관한 글을 매주 [월/화/수/목]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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