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살구의 맛

'추후'의 뉴스레터

2021.07.20 | 조회 6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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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른살이 됐고,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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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으나 내실이 없는 경우를 이르는 한국의 속담이다. 하지만 이번 주말, 난 개살구도 잼으로 만들면 꽤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 가족에게는 귀농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작은 세컨드 하우스가 있다. 시골에 비어있던 집을 사서 새로 리모델링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진행했던 어머니는 한동안 이 집 때문에 고생하셨다. 집을 새로 가꾼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품과 돈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품과 돈만 들면 다행인데 계속해서 터지는 사건 때문에 어머니는 한동안 마음고생까지 하셨다.

 나는 처음 터를 잡을 때만 조금 도와드리고 한동안 시간 여유가 나지 않아 집을 가꾸는 걸 도와드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에 여름을 맞아 휴가도 갈 겸 어머니와 함께 시골로 내려갔다. 내가 시골에 가지 않았던 사이에 집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놀랍도록 변한 새로운 집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가장 놀랐던 건 집 앞의 작은 텃밭이었다. 원래 텃밭이 있었던 곳은 집을 수리하면서 생긴 쓰레기를 모아뒀던 공간이었다. 이전 집주인이 두고 간 폐기물까지 더해져 거의 작은 언덕이 된 그 쓰레기 더미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집의 모습은 분명 폐가였다. 내가 시골의 그 집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던 건 그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전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새 쓰레기가 쌓여있던 자리에 푸른 채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해 봄, 집이 완성되고 어머니는 이모들과 함께 집 앞마당에 작은 텃밭을 꾸렸다고 내게 말했다. 텃밭에는 자주 먹고 비교적 관리가 편한 채소들을 주로 심으셨다. 기본적인 감자와 고구마로 시작해서 옥수수, 파, 그리고 고추와 상추까지. 어머니의 얘기로만 들었던 그 텃밭을 실제로 보니 놀라웠다. 이렇게 변하다니.

 난 이렇게 변한 집의 모습을 보고 바쁘다는 핑계로 도와드리지 못했던 게 못내 죄송스러워졌다. 그래서 조금은 오버해서 어머니의 농장을 칭찬해드렸다. 어머니도 기분이 좋으셨는지 한동안 집을 꾸며놓으신 걸 자랑하셨다. 난 일은 안 했으니 자랑이라도 들어야겠다 싶어서 열심히 들었다. 그래도 내려왔으니 일을 좀 해야겠다 싶어 농장 관리를 도와드리려고 했지만, 일할 팔자가 아니었는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집 안 청소만 조금 도와드리고 내내 맛있는 것만 먹게 됐다.

 한동안 나는 이 시골의 집이 빛 좋은 개살구라고 생각했다. 시골에 세컨드 하우스가 있다는 건 겉으로 보기엔 좋지만, 들어가는 품과 돈을 생각하면 허울뿐인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하나를 수리하면 또 다른 하나 수리할 게 생기는 일의 반복이었다. 처리해야 할 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상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말마다 내려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쉴 시간도 없이 주말마다 일 하시는 게 못내 마음이 쓰였다. 

 나는 한 번 내려가려면 적어도 두세 시간은 걸리는 길을 왜 주말마다 가시냐고, 좀 쉬시라고 어머니께 말하곤 했다. 하지만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머니는 주말마다 짐을 한 아름 싸 들고 시골로 가셨다. 그리고 가끔 상추나 파 같은 채소들을 들고 오곤 하셨다. 직접 키운 상추라며 먹어보라고 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최근 본모습 중 가장 밝았다. 분명 시골의 집이 완성되고 꾸미기 시작하면서 어머니는 밝아지셨다. 난 그저 키우신 채소들을 맛있게 먹을 뿐이었다.

 내려간 지 이틀째 되던 날, 비가 그쳤다. 이모가 때마침 텃밭 관리를 도우러 시골로 내려오셨고,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난 이모가 시키는 대로 어머니가 봐 둔 집 근처 살구나무에서 살구를 땄다. 겉으로 보기엔 노란빛이 감도는 작은 배처럼 생겨서 처음엔 단맛이 나겠다 싶었다. 처음 딴 살구를 몰래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신맛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따오라고 하셨으니 땀을 뻘뻘 흘리며 살구를 따긴 했는데, 이 살구로 대체 뭘 할 수 있나 싶었다. 

 딴 살구를 한 바구니 들고 가니 이모가 잼을 만들어 먹자고 하셨다. 살구 껍질과 씨를 발라내서 과육만 골라낸 뒤, 설탕과 함께 은근한 불로 끓였다. 오후쯤부터 끓이기 시작했는데 저녁이 돼서야 끝났다. 아까 몰래 먹었던 그 신맛이 기억나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한 숟갈 얻어먹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렇게 며칠간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고 어머니와 함께 다시 파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이 글을 쓰면서 난 시골의 집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시골의 집이 마냥 빛 좋은 개살구만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짚 앞마당의 작은 텃밭을 가꾸는 건 사실 일이라기보다는 여가 생활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뭔가 내 손으로 재배한 무언가를 요리해 먹는다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었다. 어쩌면 어머니가 주말마다 내려가면서 밝은 얼굴로 이번엔 뭘 심는다, 뭘 해야 한다 하시며 내려갔던 건 이런 것 때문이었겠구나 싶었다.

  올라오면서 챙긴 그 살구 잼은 들고 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빈 통만 남았다. 겉으로 보기 좋지만, 내실은 없다는 그 개살구와 같은 살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신맛이 났던 살구로 만든 잼은 빵 도둑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빛 좋은 개살구도 쓸데가 있다는 것을. 어쩌면 내실이 없어 보이는 것도 시간을 들여 보다 보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는 걸. 빈 살구 잼 통을 설거지하면서 난 문득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다음번에 가면 그때 지나가면서 봤던 감나무에 열매가 맺히려나?’ 그때 난 비로소 주말마다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글쓴이: 순환선

소개: 스쳐가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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