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오늘 이야기는 조금 무거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의 병에 대한 것이거든요.
요즘은 인식이 많이 개선된 덕분에
나약한 사람뿐 아니라 누구나 걸릴 수 있고,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비교적 널리 알려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온전히 이해받을 수는 없겠지요.
저도 제 상태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네, 맞습니다. 저는 만성 우울증 환자랍니다.
아,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서 이제는
약 없이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거든요.
뭐든지 하다 보면 익숙해집니다.
마음 관리도 그렇더라고요.
그런 저에게는 소중한 동료(?)가 한 명 있는데,
한쪽클럽 멤버인 작은물방울 님입니다.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도 솔직하게 풀어내면서
스스로 강해지고 계신 분이지요.
모든 질병이 그럴 테지만,
아무래도 마음의 질병은 특히나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가 어렵습니다.
워낙 증상이 다양해서 환자들끼리도
양상이 너무 다르게 나타나거든요.
제 경우에는 가장 적응되지 않던 것이
몸과 마음이 분리될 때였답니다.
기뻐야 할 때 기쁘지 않고,
슬퍼야 할 때 슬프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화가 치밀고,
반대로 화가 나야 할 상황에 그저
아무 느낌 없이 다 귀찮기만 하고.
그런데 또 머리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어서
내가 느끼는 현실과 바깥 세상의 괴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 때문에,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하루종일 눈을 감은 채
잠든 건지 아닌지 모를 하루를 보냅니다.
아무래도 나는 미친 것 같다,
살 가치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요.
이해가 잘 안 되시지요? 당연합니다.
저도 제가 잘 이해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마 당신도 가끔 그러실 걸요?
"내가 왜 그랬지? 잠깐 미쳤었나?"라는 생각,
설마 한 번도 안 해보진 않으셨겠지요.
본의 아니게 감정의 바닥까지 들이파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인간이 이성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자 오해라는 것.
오히려 지극히 감정적인 존재라는 것.
감정은 "이거 하고 싶어!"라면서 돌진합니다.
이성은 옆에서 "그렇지만 안돼!"라고 하고요.
마치 순진무구하게 사고를 치는 어린아이와
그걸 말리는 엄마아빠 같지요.
그래서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성과 감정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처럼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합의점을 찾아낸 게
바로 지금 나의 성격이라고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스스로를 이해하기가 좀 쉬워지더라고요.
내 마음이 온전히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된달까요.
게다가 가끔 다른 사람이 이상(?)해도
화가 조금 덜 나더라고요.
감정이 격해지면 그럴 수 있다고,
선만 넘지 않으면 된다고,
그렇게 조금은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요즘 우울증이 늘어나는 데에는
나의 감정, 다른 이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각박한 분위기도 한몫하지 않나 싶습니다.
감정이 분출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비난받을까봐 억지로 찍어누르면
얼마나 외롭고 자괴감이 느껴질까요.
이성으로 바라본 세상만 옳은 게 아닙니다.
감성으로 바라본 세상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당신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당신의 세상도 이해하고 싶은
임효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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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쩡이
힘든 시간 잘 견디신 록산님, 작은물방울님 토닥토탁해드립니다. 저도 겉으로는 밝은 것 같지만 30대 후반부터 몇년간은 정말 내가 왜 이러지...이럴정도로 우울과 짜증, 불안이 늘어난 시기를 보냈어요. 그때 잇콘 독자에디터가 되서 다양한 분들을 만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어제 어떤 인터뷰를 봤는데 감정은 무조건 수용되어야 한다고...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자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가장 좋지만 없다면 내가 나의 감정을 인정해주라고...그런데 록산님 글 읽다보니까 글쓰기가 정말 그런 방법 중에 하나겠네요. 저도 자꾸 정보성 글에 밀리지만 한쪽클럽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 해야겠습니다!
한쪽편지
늘 응원해주시는 오쩡이님 덕분에 힘이 팍팍 납니다 ^^ 저는 오쩡이님의 정보성 글도 참 좋아요. 좋은 건강정보도 얻고 동기부여도 되거든요. 나를 들여다보는 글쓰기도 분명 잘 하시겠지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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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내 안의 미친년이 튀어나올때가 있죠. 특히 요즘처럼 갑자기 날씨가 추워진다거나 갱년기로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시기는 더더욱이요. 거기에 안좋은 환경까지 더하면 아주 금상첨화로 미친년이 날뛰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나봐요. 나를 좀 진정시키려고. 록산님 뉴스레터 좋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한쪽편지
와~ 작가님이 구독해주시고 칭찬까지 해주시니 넘 뿌듯합니다 ^^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글쓰기만 한 게 없는 것 같긴 해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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