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두 번째ㅣ자기만의 방과 타인의 삶 ① #이호

올해는 1922년 서울에서 개화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빠르게 벚꽃🌸 이 피었답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봉오리가 하룻밤 새 폭죽처럼 터지는 광경은 매해 새롭게 경이롭습니다. 며칠이 지나 하루 종일 봄비☔ 가 내린 다음 날, 도로 위로 흩날리는 꽃잎은 보는 이에게 어찌할 수 없는 아쉬움과 서글픔, 혹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선물은 누구나 받아갈 수 있습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말이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고 서울에서 삽니다. 얼마 전 이 도시는 시장 보궐선거를 치뤘지요. 투표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벚꽃이 주는 선물들을 받았을까요? 저는 투표결과를 보면서 여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다른 꿈을 꾸는지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집니다. 우리들은 어디까지 서로에게 기대할 수 있고 어디까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요.

🌼  꽃밭에서 노는 꿈

제 아버지가 40세 되던 해에 저는 태어났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가진 환경과 경험은 하나에서 열까지 판이하게 다릅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은 6⋅25 전쟁을 뚜렷한 삶으로 겪었다면 한 사람은 교과서로 배웠죠.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아침에 집을 나섰다가 저녁이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이었어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버지의 퇴근이 기다려진 건 그 손에 들려오는 전병과자, 치킨,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들 때문이었죠. 그러다 주말이 오면 여름엔 수영장으로, 겨울⛄ 엔 스케이트장으로 세 자매를 데리고 다녔어요. 또 섣달 그믐엔 졸음을 참다 참다 깜빡 잠든 아이들 눈썹에 밀가루칠을 했고(우리의 선조들은 설 바로 전날 밤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했답니다.👀 ), 정월대보름이면 호두를 까서 입에 넣어주고 잣불🔥 도 켰습니다. 매해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머리맡에 사탕주머니, 연필깎이, 동화책 등이 놓여있었고 산타할아버지가 아버지🎅 였다는 건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죠. 밤이면 항상 ‘꽃밭에서 노는 꿈꿔라'라는 말과 함께 우리들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  우리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부모님에게 가장 못되게 굴던😈  10대와 적당히 못되게 굴던 20대를 지나 좀 더 어른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 무렵 아버지와 저는 가끔씩 둘이 만나 맛있는 안주에 술을 한 잔 하거나 당구를 치거나 하며 새롭게 친해지고 있었어요. 저는 종종 우리가 같은 시대에 친구로 만났다면 정말 죽이 잘 맞는 사이였을 거라고 얘기하곤 했죠.
그 날도 어느 맥주집에서 잔🍺 을 기울이고 있었고 마침 서울시장 선거 직후라서 우리는 누구를, 왜 선택했는지에 대한 대화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입에서 나온 후보의 이름이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기분이 상할대로 상한 저는 정색을 하고 화를 내며 매섭게 아버지를 비난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제 얘기를 듣던 아버지는 차분하게 본인의 인생 중 가장 무서웠던 시간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한 사람이 겪었던 생활의 단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전해 듣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이야기들이었어요. 그러면서 본인이 세계관을 정립하던 시대와 제가 자랐던 시대는 분명하게 달라서 우리의 가치관과 선택이 같아질 수는 없을 거라며 ‘우리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평행선을 걷게 될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될 수 없는걸까?’ 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그 날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선택한 후보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히 평행선을 걸어갈 사이더라도 우리는 여러가지 주제로 토론을 할 수도 있고 친구도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토론의 끝이 꼭 ‘설득'과 ‘납득'이 아니더라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평행선을 걷는다는 건

저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소수자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아마도 아버지의 세계관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저의 선택도 많았을 거에요. 그리고 워낙 즉흥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서 항상 ‘하루’를 살아내기에 급급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폭이 커지고 선택할 내용의 질이 높아지면 좋겠어요. 또한 제 주변의 친구들이 좀 더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거기에 더불어 한 가지 바람이 더 생겼습니다. 평행선을 걷더라도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한 단계 진화하길 희망해 봅니다. 서로의 시시비비와 잘잘못을 가리기도 하면서 잘한 일은 기분 좋게 칭찬해주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꼭 함께 해야할 내용이면 과감하게 손을 내밀기도 했으면 좋겠어요. ‘여기’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르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또한 평행선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나란하게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요. 

[이 주의 추천곡]

🌸  Air - Cherry Blossom Girl저에겐 벚꽃 흩날리는 봄날이면 항상 떠오르는 곡입니다. 장-베노아 덩켈(Jean-Benoît Dunckel)의 미모가 돋보이던 시절의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프랑스 특유의 방송 스타일과 편집이 감상포인트.

🌈  John Lennon - Imagine (Official Music Video 1971)어렸을 때는 그저 유명한 가수의 유명한 곡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몇 년 전 커버곡으로 연습을 하다가 방에서 혼자 눈물을 훔친 적이 있어요. 여러분에게도 무척 익숙한 곡이겠지만 오늘은 좀 더 곰곰히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호 - 고래의 말이번 주 금요일은 세월호 참사 7주기입니다. 제가 이 곡을 만든 건 2016년 4월이었지만 이상하게 부를 수가 없었어요. 작년이 되어서야 오월창작가요제를 통해 처음 공개하게 되었던 노래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이 주의 추천곡]과 더불어 저의 4월들을 함께 해 온 곡 몇 개를 추려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봤습니다. 😊  *스포티파이에 없는 곡은 대체했어요.

[식알못의 씨앗부터 도전기 ①]

로망은 그저 로망일 뿐인 걸까요. 제법 식물을 구분할 줄도 알고 밖에서 만나게 되는 식물들에게 항상 찬사를 보내며 그들과 친해지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집으로 데려온 애들은 과습증상과 건조증상을 오가며 고군분투하다가 이내 제 곁을 떠나곤 했습니다. (미안해, 얘들아.😢 )

2년 정도 여러모로 도전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현재 저와 함께 지내주고 있는 애들은 다섯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무모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텀블벅에서 만난 ‘씨드키퍼(seedkeeper)’의 펀딩을 통해 ‘가든 시리즈'를 받았고 오늘 씨앗을 심었답니다. (그런데 씨앗 색깔이 너무 화려해서 놀랐어요! 😲 ) 과연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 주세요.

🌱 씨드키퍼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eed_keeper/

오늘 하루 종일 편지보낼 생각에 무척 설레고 떨렸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모두들 꽃밭에서 노는 꿈 꾸길 바랄게요. 
어쩌면 다같이 그 꽃밭에서 만날지도 모르겠네요.

이호 드림

📮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

모호 mohho
기타치고 노래하는 사람. 솔로프로젝트인 ‘모호프로젝트(Mohho Project)’와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이다.

이호 eeeho
인문학을 사랑하는 이과 출신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이호(eeeho)’, 일렉트로닉 포크 밴드 ‘호와호(howaho)’로 활동 중. 항상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때의 마음을 좇다보니 현재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트리키네코 trickyneko
싱어 송라이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듯한 감정의 세계를 소리로 맞바꾼다. 2011년 EP ‘꿈의 통로’, 2015년 1집 ‘모든 계절의 밤’, 2019년 2집 ‘수면 아래’. 마포FM 게릴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홍한나 annaHong
시각예술분야 종사자. 비 가시적인것과 가시적인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작업과 생활을 병행한다. 아트랩반 개인전 Circuit Mode(2018), REC Mode(2018), 별관 개인전 General Error(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