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애도의 겨울

2023.11.28 | 조회 476 |
0
|

 

지난 금요일에는 산문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생애 첫 계약금을 받았다. 책을 사고 싶었다. 가장 익숙한 서점에 들러 여기저기 시선을 던지다 눈에 들어온 이름 하나. 최진영. 그리고 그 옆에 나란한 낯익은 이름들. 제목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모두가 있는 곳으로". 펼쳐보지도 않고 집어들었다.

그 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왔다. 작은 원룸의 건조함과 훈기를 동시에 느끼면서 책을 펼쳐들고 앉았다. 최진영 작가의 글이 첫 순서로 실려 있었고, 나는 두어 장 채 넘기지도 않고 직감했다. 이 글을 다 읽으면 겨울을 마냥 미워할 수는 없겠구나. 그리고 다시 슬퍼졌다. 나처럼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 당신과 이 글을 함께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이.

깨달음과 함께 애도가 시작되고 있었다.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애도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사랑을 애도하는 달인이 될 법도 한데, 전혀 능숙해지지가 않는다. 괜찮지 않다. 원망스럽고 속상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미운 것 또한 아니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다.

한번 좋아하면 미워하기가 어렵다. 힘이 든다. 미워하지 못해서 마음이 더 깎인다. 이 사랑을 지키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이 더 크게 자라난다. 결국 당신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고, 나는 싫어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된다.

사랑과 사람을 잃을 때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떤 하루를 살아야 이 상실을 겪지 않을 수가 있는 건지.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얼마나 진심이었고 얼마나 최선이었든 떠날 사람은 떠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한동안 '만약에'에 갇혀 지내게 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당신이 나를 괴롭게 했던 것들은 어느새 모두 휘발되었다. 오로지 내가 나에게 쏟아붓는 비난의 목소리만 남아 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조차도 쥐여주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다.

다시 또 누군가와 함께하게 되겠지만, 당신 같은 사람은 당신뿐이어서 나는 영영 이 상실을 채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따금씩 당신이 빠져나간 모양대로 난 구멍을 마주할 때마다 당신의 안녕을 기원하겠지. 당신의 마음에도 내가 남긴 구멍이 하나쯤은 있기를, 아니, 그런 건 생길 틈도 없었기를. 그러니까 나보다 당신이 더 완전하고 온전하기를.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흑심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주연] 사람개빡치게하는법

... 친구들은 내 글을 엄청엄청 잘 읽어줌.. 좋은 부분 잘라서 보내주고 어디서 어떻게 울엇는지도 알려줌 내 글 읽고 일기써줌.. 대화하다보면 내가 말한적도 업는 기분이나 성격 같은거도

2023.07.26·조회 792

[주연] 정록에게

20220703. - 겨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여자친구 재우고 나오기, 나 재워줄 여자친구 찾기, 아침까지 잠 자기, 씨 없는 수박 먹기, 다이어리 모으기, 유명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연예인 되기

2023.08.02·조회 780

[주연] Rest Energy

Marina Abramovic. 나는 동洞 읍邑 정도의 구간을 모두 마을이라고 부른다 하품과 한숨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너무 쉽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는 내가 무서웠고 그러나 내가 사람이고 너 역시 사람이라, 돌

2022.12.16·조회 820

[미지] 변태가 변태할 수 있는 법

그러니까 그런 거지. 나는 언제나 단정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하고, 그런 모습만을 노출시키고 싶어 하고. 물론 그런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게 나의 전부

2023.08.05·조회 794

[미지] 이별의 애도 기간은 언제까지인가요?

49제가 끝나면 새로운 사랑이 오나요?. 미용실에 다녀왔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내가 이별을 맞이하는 루틴 중 하나로, 그 외에 도피성 수면과 타로 보기가 있다. 흔히 [ 도피성 수면 - 타로 보기 - 미용실 방문]

2022.12.20·조회 2.07K

[주연] 천사는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

* 김복희. ※ 공지 <흑심>의 연재 시간이 변경될 예정입니다. 주연: 수요일 자정 미지: 토요일 자정

2023.07.17·조회 762
© 2026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