凝 001
창간호
잘 성공하는 것보다 잘 실패하는 게 중요해요
위승주
멋쟁이사자처럼 AI PM · 음식 계정 · 와인 앱 운영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이제는 코드를 직접 짜기보다 AI와 함께 만드는 쪽을 택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음식 계정과 와인 앱, AI 신사업을 동시에 굴리고 있었다. 위승주님은 2022년에 이미 "개발자가 일하는 방식이 크게 바뀐다"고 봤고, 그 변화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 부지런히 움직였다. AI가 직무의 경계를 흔드는 시대에 무엇이 남는가. 그 질문을 5년째 몸으로 풀어가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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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발자취
바뀔 직무를 일찍 읽은 사람
아무것도 모르는 채 들어간 군대에서, 그는 한국인 치고 빠르게 GPT를 접했다. 주변에 ChatGPT에 대해서 아는 동기조차 거의 없던 2022년이었는데, 대학 과제를 10초 만에 풀어주는 걸 보고 그는 일찍 결론을 내렸다. 개발자가 일하는 방식이 크게 바뀔 거라고. 흥미로운 건, 정작 본인이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코딩이 좋아서 그 과에 간 게 아니라, 오히려 "죽어도 혼자선 공부 안 할 과목"이라서 일부러 골랐다.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전략적이었다. 경제학과에 가면 경제 1등을 해야 의미가 있지만, 컴퓨터공학에 가면 "컴퓨터공학에서 경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약점을 피하는 대신 자기만의 좌표로 바꿔버린 셈인데, 그의 첫 사업도 같은 결에서 출발했다. 군대 갤러리에 쌓여 있던 음식 사진을 '활용할 리소스'로 보고, 핸드폰 하나로 음식 계정을 시작한 것이다.


02
두 번째, 일의 실체
AI에게 일을 시키는 법
코딩을 직접 하지 않는 그가 어떻게 앱을 만들고 신사업까지 굴릴까. 답은 의외로 단순했는데, 직접 짜는 대신 AI와 함께 만드는 것이었다. 업무에서 그가 주로 쓰는 AI는 Claude Code 하나로, 그만큼 일하는 시간의 무게중심도 옮겨갔다. 개발보다 기획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
"기획이 정말 중요해요. 개발은 AI의 도움을 받으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할 수 있거든요."
그가 말하는 기획안은 남에게 잘 보여주기 위한 문서가 아니다. 본인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다 헷갈리지 않을 정도의 로드맵, 나중에 돌아올 지점을 표시해두는 좌표에 가깝다. 기획이 잘 잡혀 있으면 개발 자체는 클로드에게 맡기고 빠르게 돌린다. 와인 앱 '드링키지'를 React Native로 한 달 만에 혼자 만든 것도, 디자인을 AI로 뽑은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그는 AI가 흔히 내놓는 결과물의 한계까지 안다. 가령 디자인을 그냥 맡기면 아이콘 자리에 이모지를 채워 넣는데, 딱 봐도 AI 티가 나서 그는 그게 싫었다. 그래서 "이모지 대신 SVG 일러스트로 아이콘을 직접 그려라"라고 시켜, AI 티가 덜 나는 결과물을 받아낸다. 완벽한 결과를 한 번에 기대하기보다, 일단 뽑아서 바로 써보고 다듬는 식이다.
회사에서의 일도 같은 방식이다. 베트남 인재와 한국 기업을 잇는 채용 신사업에서, 그는 지원자 정보를 시트에서 받아 이력서를 스크리닝하고, 합격자에게 AI 인터뷰 링크를 보내고, 녹음을 텍스트로 변환해 평가한 뒤 기업에 전달하는 과정을 한 사이트로 묶어 직접 구축했다. 사람이 며칠씩 붙어 하던 채용 절차를, 그는 AI로 처리되는 파이프라인으로 바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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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AI 시대
따라잡지 않고 먼저 써본다
그렇다면 그는 빠르게 바뀌는 AI를 어떻게 따라잡을까. 흥미롭게도 그의 답은 '따라잡지 않는다'에 가깝다.
AI는 주사위 같아요 적응하려 하면 도망가요
매번 새 모델, 새 기능이 쏟아지는 흐름을 통째로 좇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신 그가 믿는 건 단순한 시차다. 빨리 써본 사람이 그만큼 이득을 본다는 것. 새로운 도구가 나올 때마다 처음엔 "저게 되겠어, 곧 사라질 텐데" 하며 미심쩍어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때 거부하던 사람들도 결국 하나둘 다 쓰게 된다. 그 과정을 여러 번 본 그는 검증을 미루지 않는다. 안 해본 도구도 일단 써보고, 좋다는 걸 스스로 느껴야 효율도 따라온다고 믿는다.
"빨리 쓴 사람은 그만큼 이득을 봤을 거예요. 일단 써봐야 알아요."
이런 태도는 그가 일하는 환경과도 잘 맞는다. 실무를 하다 보면 답답한 지점이 늘 생기고, 마침 그걸 풀어주는 새 도구가 계속 나온다. 그래서 그는 좋은 도구가 보이면 미루지 않고 실무에 적용해 일의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예전엔 글로만 빼곡한 기획서를 넘겨야 했다면, 이제는 AI로 화면을 직접 만들어 보여줄 수 있어 의도가 훨씬 잘 전달되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협업에서도 막히는 구간이 줄어든다.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해보려는 것도 같은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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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재정의
그래서 무엇이 남는가
개발자의 일도 점점 분화될 거라고 그는 본다. AI를 더 깊이 다루는 쪽으로 가거나, 빠른 실행으로 강점을 내는 쪽으로 가거나. 어느 쪽이든 자기만의 자리를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가 기획으로 방향을 잡은 이유도 그리 거창하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가장 빨리 직면하는 문제는 AI보다 사람이 더 빨리 찾고, 실행력이 있으면 그걸 짧게짧게 풀어갈 수 있으니, 그나마 기회가 조금 더 있지 않을까."
AI는 결국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결과물이라, 세상에 없던 문제를 새로 발견하는 일만큼은 아직 사람이 빠르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살아남는 데 필요한 건 세 가지라고 했다. 문제 정의, 실행력, 그리고 '왜?'라는 질문. 그중에서도 첫 번째를 가장 강조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한 판에 다 넣으면, 실패해도 왜 안 맞았는지 알 수 없다. 그에게 좋은 실패란 원인을 알 수 있는 실패다. 직함을 대하는 태도도 비슷하다. 명함에는 '멋쟁이사자처럼 AI PM'이라고 적혀 있지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매니징보다는 직접 만드는 PO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천천히 덧붙인다. 직함이라는 이름표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름표가 흐려지는 시대를 먼저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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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결
직함은 버려도 이름은 남긴다
그는 잘 비우는 사람이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들도 필요하면 접을 수 있다고, 무언가에 너무 애착을 두면 판단이 흐려진다고 말한다. 이미 이뤄둔 것에 자신을 묶어두면, 정작 새로운 걸 시도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저는 버릴 준비는 되어 있어요."
대신 그가 오래 마음을 쏟는 목표는 따로 있다. 당장의 직함이나 성과가 아니라, 시대가 어떻게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단 하나의 방향, 시간이 지나도 남을 자기 이름을 만드는 일이다. 언젠가 전 세계 '위승주' 중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되고, 더 나아가 나이나 분야를 기준으로도 기억되는 이름이 되는 것. 스스로도 유치하게 들릴 수 있다고 했지만, 그 말의 핵심은 자랑이 아니었다. 시대가 어떻게 변해도 바뀌지 않을 목표 하나를 정해두고, 거기에만 흔들림 없이 마음을 쏟겠다는 뜻이었다. 직무도 회사도 기술도 갈아 끼우며 옮겨 다니는 그가, 유일하게 놓지 않는 방향이다.
凝 ABOUT
첫 번째 시리즈 〈AI 시대, 시장은 어떤 사람을 원하는가〉
일터에서 가장 두꺼운 층을 이루면서도, 가장 적게 불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자리에 서 있고, 그래서 이 기록은 거기 있는 사람들을 응시합니다. 직업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금, 여러 분야와 연차의 사람들이 변화 속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는지, 자기 일을 어떻게 다시 부르는지 옮겨 적습니다.
글 / 편집 : 최예원
凝, 001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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