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과 잡학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배우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지만 심심할 때, 전철에서, 버스에서 마땅히 읽을꺼리가 없을 때, 누군가 떠먹여 주는 잡다한 이야기를 읽고, 들으며 편안한 시간을 갖고 싶을 때, 잡담과 잡학으로 느긋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매주 두 번, 화요일과 금요일, 선생님의 메일함에는 예상하지 않았던 메일이 도착합니다. 그 메일에는 온갖 종류의 잡다한 이야기와, 잡담과 잡학들이 들어 있을 겁니다.
상식, 정보, 예술, 문화, 시사 등 여러 분야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메일이 도착하고, 아래 첨부한 것처럼 공부가 되는 자료도 들어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쓰고, 모은 글과 자료를 함께 나눈다는 생각으로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유료 구독을 해주시면, 일주일에 두 번, 심심하지 않도록 다양한 읽을꺼리를 정기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제가 보내드리는 메일을 받는 분은 '조금'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제가 보내드리는 글과 자료는 잡다합니다만, 그래도 읽고, 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을 골라서 보내드리니 '약간의' 도움은 되실 걸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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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는 매 번 달라지며, 받아보시는 자료의 종류는 제 마음대로 선택해서 보내드립니다.
말 그대로 잡담과 잡학의 정신을 살려서 갖가지 잡다한 자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 메일이 도착할까요? 아래 내용에서 대략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잡담과 잡학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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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어주세요.
타임라인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림을 따라가서 본 작가의 작품. 한국작가 'Joyce Lee'의 작품을 찾아보니 인스타그램에 계정이 있고, 수백 개의 작품이 있다.
'춘화'의 현대적 해석이 대부분인 작품인데, 나는 회화 쪽에 정보가 거의 없어서 오늘에서야 이 작가가 세계적으로도 대단한 작가라는 걸 알았다. 한국에 이렇게 멋진 작가가 있다는 건 자랑할만하다.
그의 작품을 보다 특히 눈길을 끈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인데, 'Prayer 10'으로 연작 가운데 하나다. 이 연작은 수녀의 얼굴과 수녀가 기도하는 그림으로, 언뜻보면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수녀의 얼굴이 아닌, 발을 그렸다. 그래서 더욱 '성적 욕망'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짙은 푸른색 수녀복은 풍성하게 수녀의 몸을 감싸고 있다. 따라서 수녀의 몸은 굴곡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육체와 굴곡을 드러내지 않는 건 억압된 성적 욕망을 감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 수녀복 밖으로 보이는 발은 '성적 욕망'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빨강색 망사 스타킹은 그 자체로 '음란함' 또는 '섹스'를 상징한다.
영화에서, 길거리를 서성이는 매춘부가 이런 망사 스타킹을 신은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남성을 유혹하는 상징적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녀의 육체는 경건한 수녀복에 싸여 있지만, 그의 내면은 '성적 욕망'으로 들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다. 발목에 새긴 문신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머리에 썼던 가시면류관이다. 예수가 썼던 가시면류관은 로마 군인들이 씌운 것으로, 유대인인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기독교의 시각에서는 '가시면류관'은 곧 예수의 수난, 기독교의 수난을 상징한다.
이 '가시면류관'이 여성인 수녀의 발목에 새겨진 건, 수녀이자 여성이 지금 억압된 상태, 수난을 당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발목에 걸린 십자가를 보면, 십자가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가운데, 예수의 모습이 부조로 새겨졌다. 이때 예수의 모습은 천으로 옷을 가리지 않고, 온전한 나체인걸 볼 수 있는데, 예수가 벌거벗은 몸으로 매달려 있다가, 그가 십자가에서 풀려나자 가장 먼저 천으로 몸을 가려준 사람이 바로 '베다니아 마리아'다.
하지만 여기서 발목걸이 십자가에 보이는 벌거벗은 예수의 모습은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벌거벗은 남성'의 이미지로 읽힌다. 즉, 수녀의 성적 욕망이 투사된 남성 이미지인 것이다.
망사 스타킹 안으로 보이는 수녀의 발가락을 보면, 엄지 발톱에 진분홍 매니큐어를 칠했고, 두번째 발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왼쪽 발, 두번째 발가락에 반지를 낀 건 '신부'라는 의미다. 즉, 수녀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통해 '예수'와 결혼했음을 상징한다. 이 발가락 반지의 상징은 기독교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졌는데, 인도에서 시작했다. 따라서, 기독교(가톨릭) 외경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는 20대에 인도를 다녀왔다는 속설이 있고, 이 수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녀는 성스러운 종교적 수행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에 '성적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녀의 내부에서 신을 섬기는 숭고한 마음과 함께, 길거리 매춘부를 갈망하는 천박한 욕망이 뒤섞여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때, 이런 수녀의 모습을 보면서, 그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 없는 자가 저 여자(매춘부)를 돌로 쳐라'고 말한 예수의 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듯, 신성한 수녀복 속에서 들끓는 인간의 욕망을 가진 수녀를 비난할 사람 역시 없다는 걸 우리는 안다. 누구도, 내면의 욕망을 두고 비난해서는 안 되고, 비난할 수도 없다.
수도자는 그런 욕망과 당당하게 맞서며 자기 의지를 굽히지 않고 구도의 길을 걸어가기 때문에 성직자로 존경받는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이는 수녀의 성적 욕망보다는,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드러낸 것으로 읽는다.

맥베스의 비극
코엔 형제는 늘 둘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두 사람이 공동 감독으로 영화를 연출하지만, 미국 영화법에 따라 한 명만 감독 이름을 올릴 수 있어 영화마다 형제의 이름이 한 명씩만 올라갔는데, 조엘 코엔의 이름으로 발표한 작품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있다. 또한 '인사이드 르윈,, '위대한 레보스키', '더 브레이브' 같은 훌륭한 작품이 있으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있다.
특히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에서 흑백 필름의 아름다움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세한 먼지 입자가 가득한 이발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인공 에드의 모습은 마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 영화 '레이징 불'의 첫 장면, 주인공이 링 위에서 가볍게 몸을 푸는 슬로우 모션이 떠오를 정도로 명장면이다.
흑백 영화는 드물다. 컬러 영화가 시작하고 거의 모든 영화는 컬러 필름으로 찍고, 상영하지만 아주 드물게 감독이 의도해서 흑백 영화로 만드는 작품이 있다.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도 컬러 필름으로 찍었으나 흑백으로 변환해서 상영했다.
한국 영화에서도 '동주'가 있고, '씬 시티',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로마', 마틴 스콜세지 '분노의 주먹(레이징 불), 짐 자무시 '천국보다 낯선', 스티븐 스필버그 '쉰들러 리스트', 박찬욱 감독의 작품 '친절한 금자씨'도 컬러로 개봉했으나 흑백 영화로 다시 만들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흑백 영화로 만든 영화가 있는가 하면, 컬러 버전을 흑백 버전으로 다시 만드는 영화도 많다.
흑백 영화는 독특한 매력을 갖는다. 흑백의 명암이 주는 느낌이 강렬하면서 단순한 명료함이 있으며,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드러내면서 고전적 느낌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조엘 코엔이 '맥베스'를 연출하면서 흑백 영화로 만든 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며,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연극을 영상으로 옮긴 느낌으로 만들었다. 충분히 의도적이면서 효율적인 방식인데, 연극무대의 미니멀리즘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면서 연극에서 하기 어려운 몇몇 특수 장면에서 극적 효과를 강하게 드러내 이 작품의 특징을 살렸다.
세익스피어 '맥베스'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조엘 코엔이 혼자 감독으로 연출한 첫 작품을 '맥베스'로 한 까닭이 의아할 수 있는데, 내용을 알고 있어도 이 작품은 매우 흥미진진하고 새로운 느낌이다. 그건 원작 희곡의 내용을 조엘 코엔이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연출한 결과인데, '맥베스'의 서사로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건물 외에 아무런 장식 없는 텅 빈 공간들은 무대를 상징한다. 이 미니멀한 무대를 채우는 건 빛과 그림자이며, 무대 즉 공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배우들 뿐이다. 연극에서 관객은 배우를 멀리서 바라볼 뿐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 할 수 없지만 영화는 배우의 표정을 클로즈업 할 수 있는 장점을 살렸다.
흑백 영화의 장점이 특히 도드라지는 장면은 주인공 맥베스가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이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물의 피부색으로 정치적 논란을 만드는 사람이라도 이 영화가 흑백이라 피부색을 구분할 수도 없고, 의미도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조엘 코엔은 이런 부분을 의식했을 걸로 생각한다.
연극에서도 음향 효과는 매우 중요하고, 극적 효과를 끌어올리는 장치로 쓰이는데, 이 영화에서 음향은 특히 중요하다. 가능하면 좋은 음향 기기로 듣기를 추천하고, 좋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들으면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영화가 더 흥미롭게 보인다.
맥베스는 전쟁 영웅으로 귀환하는 길에 마녀들을 만나 예언을 듣는다. 자신이 코더 영주를 거쳐 왕이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이때 마녀들의 예언은 딜레마를 던진다. 맥베스가 왕이 되긴 하지만, 맥베스가 가장 아끼는 부하 뱅코의 아들도 왕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던컨 왕은 귀환한 맥베스를 코더 영주로 임명한다. 맥베스의 부인은 마녀들의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확신하고, 맥베스의 성으로 온 던컨 왕을 살해하라고 맥베스를 부추긴다. 이 뒤의 이야기는 맥베스의 비참한 최후, 목이 잘리는 마지막 장면으로 끝이지만 정작 중요한 서사의 의미는 앞부분에 있다. 맥베스는 전쟁 영웅으로 귀환하다 누구인지 모를 예언자(마녀)들에게 장차 왕이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이때 맥베스 앞에 나타난 예언자라는 인물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예언자들이 실제하는 외부의 인물이었다면, 던컨 왕과 맥베스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누군가일 수 있다. 즉 맥베스가 던컨 왕을 없애고 나면 다시 누군가가 왕위를 찬탈한 맥베스를 없애면서 왕위를 차지하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갖출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예언자들의 존재를 실제하는 인물이 아닌, 맥베스 자신의 내적 욕망의 현현이라고 한다면, 맥베스는 전쟁에서 승리한 영웅 장군으로, 자기 앞에 거칠 게 없는 권력과 권위를 가졌다고 자만할 수 있고, 그 자만의 힘으로 던컨 왕을 없애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야망을 꿈꾸었을 걸로 볼 수 있다.
이때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맥베스의 부인이다. 그녀는 남편 맥베스보다 권력을 향한 욕망과 야망이 더 큰 사람이었고,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남편 맥베스에게 투사했다. 그녀는 남편을 부추겼고,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 회유를 하며 결국 맥베스가 던컨 왕을 살해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면 맥베스 앞에 나타났던 예언자들은 맥베스의 부인이 보낸 인물들은 아닐까 의심할 수 있다.
극의 흐름을 보면, 인물들의 언행이 중의적이거나 알레고리를 내재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등장 인물들은 자신들이 마땅히 지녀야 할 도덕적, 윤리적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맥베스와 그의 부인만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르고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권력을 향한 암투나 치정극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벌어진 일탈과 어리석은 판단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예언자(마녀)들이라는 매개 존재가 있긴 하지만, 그들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 맥베스와 그의 부인은 마치 손에 왕(王)을 쓴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고, 미신과 무당에 취해 남편을 끝없이 부추기고, 회유하며 남편의 권력을 전유하려 했던 한 여자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어리석음의 끝은 비참한 죽음 뿐이다. 맥더프의 칼날에 맥베스의 목이 허공으로 날아가듯, 손에 왕(王)을 쓴 자의 최후 역시 총알이 목을 꿰뚫을 것이다.

H마트에서 울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미셸은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한국어를 거의 배우지 못한 채 성장한다. 한국인 엄마는 미셸을 '한국어 학교'에 등록해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쳤지만 완전하지 않았고, 엄마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 그의 이모들과 엄마가 반갑게 어울리는 장면을 기억하지만,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라서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지 모른 채 자랐다.
미셸은 한국사람이 살지 않는 외진 마을에서 살았으며, 학교에서도 유일한 한국인 혼혈이었다. 그는 다른 수많은 혼혈아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고, 부모와 불화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셸은 미국에서 자라지만, 한국인 엄마를 둔 딸로, 마치 한국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보인다. 미셸은 자기 엄마와 다른 미국인 엄마가 많이 다르다는 건 알지만, 엄마의 말과 행동이 철저하게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건 눈치 채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
미셸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생각이었지만, 엄마는 반드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강제해서 미셸은 대학에 진학하고, 그렇게 부모와 집으로부터 독립한다.
미셸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잔소리, 간섭, 신경질이 불편하고 피곤하고 싫었지만, 한편으로 엄마는 자기를 가장 잘 알고, 누구보다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미셸이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정체성으로 심각하게 고민할 때 엄마는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엄마와 함께 한국식품을 파는 H마트에서 쇼핑하고, 그곳 푸드코트에서 한국 음식을 사 먹고, 엄마가 골라준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엄마가 알게 모르게 자기를 찍은 많은 사진을 보며, 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진했는 지 새삼 깨닫는다.
집을 떠나 부모와 거리를 두면서 미셸은 비로소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건 미셸이 청소년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게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 엄마가 암에 걸리고, 상황은 심각하게 바뀐다. 엄마의 동생, 막내 이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미셸은 영어를 잘 하는 막내 이모와 한국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었다.
미셸이 엄마의 형제는 모두 세 명으로, 엄마는 둘째였다. 막내 이모가 유일하게 대학을 나왔고,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서, 미셸과 엄마가 한국으로 휴가를 나올 때면 막내 이모집에서 먹고, 자고, 함께 여행하며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추억이 있었다.
하지만 막내 이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미셸의 엄마가 암 진단을 받는다. 미셸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도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엄마를 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엄마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고, 미셸은 엄마가 만들어 주었던 많은 한국 음식을 떠올리며 한국 음식을 만들어 보려 한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지고, 미셸과 아빠만으로는 엄마를 간병할 수 없어, 엄마와 친한 한국 아주머니들이 번갈아가며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음식을 만들고, 엄마를 돌본다. 미셸은 이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한다.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한국 여행을 하는 것이어서, 가족은 한국에 도착하지만, 곧바로 미셸의 엄마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미셸은 엄마가 암으로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기에, 여전히 젊은 - 50대 후반 - 엄마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게 되자 충격을 크게 받는다. 마음이 준비도 하지 못했고, 이제서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영영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볼 수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만져볼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고, 아픔이었다.
미셸이 엄마를 기억하는 방식은 한국 음식을 만들어 먹는 거였다. 엄마가 만들었던 수 많은 한국 음식들을 기억하며, 자기가 직접 하나씩 음식 만들기에 도전한다. 미셸은 엄마가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데,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희망과 기쁨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엄마가 죽고, 미셸 부부는 마지막 남은 이모를 만나러 한국으로 간다. 이모는 영어를 못 했고, 미셸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지만, 이모가 죽은 엄마와 똑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엄마가 죽고, 한동안 그 아픔으로 시간을 보낸 미셸은 생활인으로 돌아가 회사에 취직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는 그동안 한번도 제대로 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없었고, 오로지 음악을 잘 하고 싶었고, 그들이 함께 하는 밴드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은 성과를 내지 못했고, 엄마는 미셸이 음악가가 되는 걸 반대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음악을 하는 예술가는 배고픈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엄마 생각이었고, 자기의 딸이 그렇게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밴드 활동을 하고 약 8년이 지났어도 이렇다 할 결과를 만들지 못한 상태였는데, 엄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에 예전에 냈던 음반이 팔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셸의 밴드는 명성을 얻으며 미국 투어는 물론 유럽, 아시아 투어까지 하게 되고, 미셸이 쓴 글이 유명 잡지와 뉴욕타임즈에 실리면서 미셸은 음악과 글 모두에서 성공한다.
이 성공의 바탕에는 죽은 엄마의 이야기가 소재였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모든 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엄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 미셸은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슬픔과 외로움으로 엄마를 추억한다. 미셸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한국 음식, 특히 김치를 만들기 시작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걸 뚜렷이 인식하며,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때 자기의 정체성을 고민하던 미셸이었지만, 이제는 엄마의 피가 한국인이라는 걸 감사한다. 모든 것이 '한국인'의 삶의 방식 그대로였던 엄마에게서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게 삶의 태도를 배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괜찮은 건지를 깨달으며 미셸은 엄마의 깊은 사랑을 간직한다.

붉은 눈
지금부터 10년 전, 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할 때였다. 파리에서 이틀을 묵고 아침에 베르샤유에 들러 넓은 궁전-프랑스에서 왜 혁명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는-을 둘러보고 남쪽으로 향했다. 우리는 드골 공항의 허츠 렌터카에서 벤츠 해치백을 빌려 내가 운전하고 다녔는데, 패키지나 단체 여행으로는 갈 수 없는 곳만 다녔다. 베르사유를 벗어나 남쪽으로 달리자 드넓은 평원이 이어졌고, 도로 옆으로 잘 가꾼 밭이 푸르게 펼쳐졌다. 도로를 달리는 차도 많지 않고, 도로를 따라오는 전신주도 예술적 감각으로 디자인 된 것이어서 우리(가족)는 프랑스가 예술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나라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저녁 전까지 마르세유를 지나 예약해 둔 캠핑장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오를레앙까지 지평선 같은 완만한 언덕을 보며 달리다 주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로 접어들었다. 길은 편도 1차선으로, 우리나라의 시골 국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도를 보며 남쪽을 향해 국도를 달리다 점심을 먹으려고 길 옆에 식당이 보이면 멈추기로 했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들어서자 오래된 건물이 보였고, 몇 채의 집이 드문 드문 길 옆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 가게인듯 해서 들어갔다. 건물은 오래되었지만 낡은 느낌은 없었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묵직한 목조 건물의 흔적과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는 햄과 소시지를 보니 이 가게가 꽤 오랜 역사를 이어오고 있음을 느꼈는데, 건물 한쪽에 건물의 나이가 200년이 훨씬 넘었다는 표식이 있었다. 문화재급 건물인 셈이다. 우리는 기념으로 소시지를 산 다음,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지만, 식당 안에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로 왔으리라.
우리가 들어가자 그들은 조금 신기한 눈으로 우리 가족을 바라봤다. 이 근처는 관광지도 없고, 관광객은 더더욱 없는 곳이어서 검은 머리를 한 동양인을 드물게 봐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송아지 갈비살과 병아리콩 스프를 주문했다. 음식은 약간 짠 편이었고, 조금 느끼했다. 그래도 프랑스의 시골사람들이 먹는 평범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밥을 먹고, 레스토랑에서 나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평탄했던 도로가 어느새 가파른 내리막길로 바뀌었다. 우리가 왔던 길은 평탄했지만 높은 지형이었고, 남쪽으로 내리막 산길이 좁고 가파르게 이어진 것이다. 지나는 차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조금 당황했고,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내려가니 산 아래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고, 그곳에서 잠깐 쉬며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고, 우리가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작은 도시까지 가려면 한 시간 이상 산길을 따라 내려가야 했는데, 자동차에는 연료가 많지 않았다.
산길을 내려가면 주유소가 나올 거라는 기대와 믿음으로 조심하며 산길을 내려갔다. 가을이 깊어가는 프랑스 산골은 숲이 우거지지 않았지만 구불거리는 도로와 키작은 관목이 산을 둘러싸고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연료가 없다는 경고등이 켜지자 마음이 초조하기 시작했다. 최소한 산 아래까지라도 내려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도로는 더 좁아지고, 거의 외길로 바뀌었다. 이정표도, 집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달리면서,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가파른 경사와 구불거리는 도로를 지나자 완만한 산길이 나왔고, 집이 드물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집이 보이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우리는 작은 마을에 들어서 길 옆에 있는 카페 근처에 차를 세웠다. 아무래도 이 마을에 사는 주민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카페 앞에는 노인 셋이 탁자를 둘러싸고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봉주~'
내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하자 노인들도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봉주~'
나는 영어로 물었다.
'혹시 영어 하시나요?'
그러자 한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금'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나는 웃었다.
'자동차 연료가 떨어졌어요. 기름이 필요해요.'
내가 말하자, 노인이 역시 고개를 끄덕였고, 프랑스 말로 두 노인에게 통역을 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프랑스 말로 영어를 하는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영어를 하는 노인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이 소년을 따라가' 노인은 친구인 노인을 '소년(boy)'이라고 했다. 그이의 애칭이거나, 오래된 친구이라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닐까.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앞장 선 노인의 뒤를 따라갔다. 노인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프랑스어를 할 줄 몰랐으므로 노인과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노인의 집이 있었다. 노인은 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노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이 사는 집은 2층 건물로 외벽은 돌을 깎아 붙였거나 쌓은 집이었다. 내부는 목재였는데, 대들보와 서까래가 드러난 오래된 집이었다. 노인은 나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고 안으로 사라졌다. 거실에는 주방으로 통하는 아치 형태의 문이 왼쪽으로 있었고, 긴 소파 두 개가 ㄱ자 형태로 놓여 있었다. 벽에는 사진과 오래된 액자, 작은 책장, 구석에 낡은 피아노가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다.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이 노인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잠시 뒤에 노인이 작은 통을 들고 나왔고, 나는 한두마디 아는 프랑스어로 노인에게 물었다.
'무슈, 저 그림, 할아버지가 그린 거에요?'
나는 노인을 보며, 손가락으로 그림을 가리키고, 노인에게 붓칠하는 흉내를 내보였다.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인은 내게 휘발유가 담긴 작은 통을 건네주었다. 나는 휘발유보다 벽에 걸린 그림 때문에 마음이 초조했다. 대체 누가 그린 그림이란 말인가.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없어 답답했으나 일단 휘발유 값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무슈, 이 휘발유 얼마에요?'
나는 지갑을 꺼내며 노인을 보고 영어로 물었다.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돈을 받지 않겠노라는 의사를 보였다. 나는 '메르시'를 연발하며 노인을 따라 카페로 돌아왔다. 그리고 영어를 하는 노인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술 한 잔 사도 되나요?'
노인들은 좋아했다. 노인은 카페 안쪽에 대고 소리를 질러 카페 주인에게 와인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다. 잠시 뒤, 50대 후반의 머리가 벗겨진 카페 주인이 와인 한 병과 와인잔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돈을 지불하고-27유로-노인들과 와인을 한 잔 마셨다. 아내와 아이는 마을을 걸어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영어를 하는 노인에게 그림에 대해 물었다.
'저 할아버지 집에 있는 그림에 관해 알고 계신가요?'
그러자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게 휘발유를 준 노인을 바라보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 그림, 히틀러, 저 노인, 독일사람, 히틀러 친구, 오스트리아 미술학교, 히틀러, 선물'
노인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나도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서 주로 단어를 중심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노인의 말을 내 의도대로 해석하면, 내게 휘발유를 준 노인은 독일사람인데, 지금은 프랑스에서 살고, 노인의 친구가 히틀러라는 말이었다. 히틀러가 미술학교에 시험을 쳐서 떨어진 건 알고 있지만, 노인은 오스트리아에서 미술학교에 다녔거나 그와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 그림이 히틀러가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정말일까. 어떤 객관적 증거는 있는 걸까. 나는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 그림을 내가 구입하고 싶어요.'
노인은 그림의 주인인 노인에게 통역했다. 노인은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렇게 히틀러가 1930년대 그린 '붉은 눈'이라는 작품이 내 손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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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산풍속도 - 91 페이지
- 딜큐샤 - 111 페이지
- 옛 그림을 만나다 - 14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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