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과 잡학_6회입니다.

2026.03.27 | 조회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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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두 권의 소설에서

 

최근 읽은 소설 가운데 우연히 남편의 존재에 관한 내용을 다룬 작품 두 편을 읽었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과 마리 다리외세크의 <유령들의 탄생>이 그것인데, 두 작품 모두 어떤 이유에서든 남편을 잃은 여성의 이야기다.

'환상의 빛'은 책읽기 모임에서도 읽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작품인데, 20대 중반의 남편은 어느날 기차 선로 위를 걷다 기차에 치어죽는다. 남편의 죽음은 누가 봐도 명백한 자살이었고, 아내이자 주인공 유미코는 남편이 왜 자살했는지 이유를 전혀 알 수 없다.

어린 아이를 둔 유미코는 남편이 죽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바닷가 마을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살고 있는 남자와 재혼한다. 두 사람은 잘 지내지만 유미코는 죽은 전 남편의 '자살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하고 이유를 알기 위해 무진 애를 쓰지만 결국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느꼈던 바닷가에서의 '환상의 빛'을 남편도 어느 순간 봤을 거라고, 그 '환상의 빛'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하고, 어느 순간 죽음에 이를 수 있는 빛이라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유령들의 탄생'은 어느 날, 바게뜨빵을 사러 나간 남편이 사라진 이야기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 온 남편은 집에 빵이 없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빵을 사러 나간 다음, 사라진다. 남편의 실종을 믿지 못하는 아내는, 동네를 찾아다니고,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남편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돌아올 기약은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왜 집을 나갔는지, 아내는 그 이유를 모른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남편이 돌아오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

'환상의 빛'은 여자 주인공의 눈으로 바라봤지만 작가는 남성이다. 그리고 '유령들의 탄생'은 여성 작가다. 두 작품이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두 작품 모두, 남편의 자살과 실종에 있어 그 사건의 원인이나 이유를 찾지 못한다. 왜일까? 두 여성 주인공은 그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인정하기 싫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물론 남편의 '부재'에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소통의 부재'다. 남편이 사라지게 된 결정적 원인이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를 고민하지만, 그 고민에서 자신의 문제는 처음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나 때문일까?'라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걸까? 그건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두렵기 때문이다. 여성(아내)이 자기의 잘못으로 남편이 자살하거나 사라졌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자기의 몫이고, 가족, 친구, 친지, 이웃 모두에게 비난을 받을 것으므로,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잘못은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두 작품을 읽어보면, 주인공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바라보면 당연히 남편의 자살이나 실종의 이유를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두 주인공을 멀찍이 바라보게 되면, 두 여성의 존재가 객관적으로 보이게 되고,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고, 남편의 자살과 실종에 그들의 배우자 즉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혹시라도 여성을 비하한다고 여기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위의 상황은 남자와 여자를 바꿔놓아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남편의 자살이나 실종의 문제는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배우자'의 문제인 것이다. 만일 여기서 자살이나 실종을 하는 사람이 여성이었다면 당연히 문제의 근원은 그들의 배우자인 '남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의 핵심은 '소통의 부재'인 것이지 젠더로서의 '성'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렇다고 남편들의 자살이나 실종의 책임이 온전히 그들의 배우자에게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두 작품에서 아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은 상당하지만 100%라고 말할 수는 당연히 없다. 모든 사건은 상대적이고, 완전히 어느 한쪽이 잘못하는 경우는 '범죄'에서만 가능하다.

평범한 부부가 살아가면서, 어느 한쪽이 완전히 잘못하는 경우라면 그것은 더 이상 '가족'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아무 잘못 없는 아내를 폭행하는 남편이라면, 그것은 범죄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과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이 두 작품의 경우, 두 부부는 몇 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잘 지냈다. 거의 다투지도 않았고, 아내가 바가지를 긁지도 않았으며, 남편이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들은 자살했고, 사라졌다. 왜일까?

나는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아내에게 있다고 말한다. 적어도 현상적으로는. 그렇다면 본질적으로는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을까. 남자인 내가 생각할 때, 결정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역시 남편에게 있다.

'환상의 빛'에서 남편은 불과 25세 젊은 나이에, 그것도 첫딸을 낳은 지 불과 석달만에 자살한다. 그는 영세한 공장에 다니고 있었고, 부부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지만 두 사람 모두 가난한 집안에서 중학교만 겨우 나오고 세상의 밑바닥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세상은 이미 고정되어 있고, 자신은 몇 십년은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것만 남아 있는, 미래가 지금과 똑같은 암담하고 고생스러운 시간으로만 남아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내와 갓난아이가 있으니 참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지만 잔인한 말이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결혼을 한 것부터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는 그런 절망과 좌절과 뼈저린 아픔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실존에 관한 질문을 던졌고, 사회의 높은 벽과 도시빈민으로 꿈지럭거리는 한 마리 지렁이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그런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너무 젊은 나이에, 성급하고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아내와 갓난아이를 그렇게 버리고 자살한 것이 이기적인 태도라고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유미코의 남편은 어려서부터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것은 유미코도 마찬가지인데, 남편은 엄마를 따라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가난한 살림 때문에 엄마는 어린 아이를 잘 돌봐줄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혼자서 외롭게 큰 아이는 가족의 따뜻함을 몰랐고,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그렇다고 죄 없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자살하는 것이 잘 한 것이냐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다. 유미코에게 잘못이 있다거나, 비난받아야 할 부분이 있었다면 오히려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말하기도 어렵다. 유미코는 갓난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런 경우, 실존이 존재를 위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죽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유령들의 탄생'은 그런 면에서 '환상의 빛'보다는 조금 더 그 이유가 선명하다.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빵을 사 오라고 말하는 아내. 그리고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자신이 그동안 남편에게 무심했었다고 독백하는 아내. 그러면서도 왜 남편이 사라졌는지를 모르는 아내.

여기서 사라진 남편은 '환상의 빛'에서 자살한 남편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자발적인 실종을 선택했을 뿐, 자살을 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출이 아니라 범죄의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빵을 사러 가는 길이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당하거나 차량으로 납치를 당했을 가능성은?

차라리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지언정 자살을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남편은 하루 일과를 마쳤고, 여느 때처럼 저녁시간에 맞춰 집에 들어왔으며, 아내가 저녁준비를 마쳤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범죄의 가능성도 매우 희박한 이유는,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거리는 사람들의 왕래도 많고, 밤이라도 불이 밝은 곳이어서 범죄자들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남편이 사라진 당일의 행적을 보면, 남편은 부동산 거래를 위해 몇 건의 상담을 했고, 사람들을 만났지만 실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완이 좋고 능력이 있어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독백으로, 남편에게 무심했다는 말을 한다.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는 무심하고, 식사도 잘 차려주지 않고 그렇다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하루종일 집에서 뭘 하고 있는지 답답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 하는 여느 주부들처럼 집안 살림에 신경을 좀 쓰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그걸 말로 한다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다. 그렇게 몇 달, 몇 년이 지나가면서 남편은 이런 삶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은 그 날 저녁, 집에 돌아오니 저녁도 차리지 않은 아내가 빵이 없다면서 자기더러 빵을 사오라고 한다. 낮에 뭐하고 있다가, 일하고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남편은 화를 내는 대신, 차갑게 웃으면서 알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 지갑에 들어 있는 얼마 안 되는 현금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하고 생각하면서.

아내의 입장에서는 남편의 존재가 유령처럼 생각되겠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숨막히는 저주로부터 풀려난 느낌이라는 걸 아내는 과연 알까?

이 소설은 사실 정반대의 입장 즉 남편의 입장에서 똑같은 분량으로 더 쓰여져야 한다. 앞부분에서 아내가 남편의 실종에 관한 아방가르드하고 슈르레알리즘적인 서술들이 남편의 실종에 관한 자기연민이라면, 뒷부분에서 남편의 독백은 그로데스크하고 자기학대적인 폭력적인 표현들로 난무할 것이다.

여자를 잘못 선택한 멍청한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과 구역질 나는 결혼생활에 대한 자학과 7년 동안 참고 살아 온 고통과 불만의 폭발로 채워질 것이다.

두 작품 모두 남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남자들의 자기비판이 일정 부분 있어야 할 것이지만, '환상의 빛'에서는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죽을 수밖에 없었고, '유령들의 탄생'에서는 남편의 실종에 아내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아내가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럼에도 아내보다는 남편(남자)에게 더 큰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극단의 상황까지 오는 동안에 아내에게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아내를 낯선 사람, 타자, 이방인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 남편들의 잘못이었다. 그런 것까지도 아내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다. 문제의 심각함을 알아달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남편들이었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눈치껏 남편의 심기를 헤아려야 한다고 믿었던 남편들의 이기심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두 남편은 아내를 완전히 믿었을까?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했을까? 적어도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 때는 사랑했을 것이고, 믿었을 것이지만, 결혼생활이 지속되면서 남편들에게는 의무감과 책임감만 남았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소통'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다. 단지 나 하나가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끝난다는 극단적인 생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끝낼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만화] 풀

김금숙 작가 작품. 그래픽 노블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렇게 과거의 기록을 남길 때다. 구술사의 경우,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구술자의 말을 글로 기록하게 되는데, 기록의 생생함을 글로만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글은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복원되지만, 독자의 상상은 독자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인해 제한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래픽 노블처럼 글과 그림이 동시에 독자에게 전달되는 방식은 독자의 상상력을 확대하고, 고증의 완벽성이 관건이긴 하지만 독자의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또한 글만 읽을 때의 어려움을 그림과 함께 보여줌으로써 가독성을 높이고, 내용의 이해를 도우며, 책읽기의 즐거움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픽 노블을 단순히 만화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판이다. 그림은 글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담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으며, 글의 내용이 전달하고자 하는 원래의 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이 작품은 일본군 성노예로 붙잡혔던 이옥선 할머니를 작가가 직접 인터뷰해서 그리고 쓴 작품이다. 이럴 때, 작가가 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작가는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동질감을 갖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므로, 똑같은 소재라 해도 남성 작가가 접근하는 것보다는 훨씬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작가는 그림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붓과 먹을 이용한 흑백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흑백은 과거의 시간을 그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미지이며, 붓과 먹은 우리의 전통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의 역사를 전통의 방식으로 다루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작가의 그림은 한국화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과거의 시간에 채색을 하는 것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 잔인한 과거의 흔적을 묘사하는데 흑백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작가는 일본군의 만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마음을 묘사하는데 더 많은 공을 들인다. 그것은 이 역사적 사건에서 피해자가 주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를 가해자 중심으로 놓고 보면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간단한 예로, 박정희 정권에서 희생당한 인혁당 사건의 주인공들을 그릴 때도, 박정희 정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방식과 인혁당 피해자와 가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분명하고 엄연하게 다르다. 역사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는 역사를 누구의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와 직접 관련이 있으므로, 우리는 역사의 시각과 관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일본군 성노예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비틀릴 수밖에 없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일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도는 한국의 지식인 사이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이 사건을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단지 포주와 창녀의 돈벌이로 왜곡, 격하시키는 발상은 일본이 늘 주장하고 바라는 관점이다.

이옥선 할머니의 경우, 당시 조선의 가난한 민중의 삶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일본의 수탈, 조선의 지배계급의 무능과 부패, 강대국에 침탈당하는 약소국의 비애, 식민지를 확대, 강화하는 제국주의의 발현 등 당시 역사의 총체적 사건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와 편견, 왜곡된 지식으로 친일파가 되어버린 인간들의 역겨운 인식이 날뛰는 꼴을 볼 수 있다. 한국의 만화가들 가운데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빈민에 관하여

2000년 이후 한국에서 '도시빈민'에 관한 대중적인 개념과 연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서는 드물게 '도시빈민'에 관한 연구가 진행 중이긴 하지만, 그것은 사회변화에 반영되지 못하고, 학문의 분야에서 머물러 있을 뿐으로, 고착된 사회문제의 개혁이나 변혁의 이론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쉽다.

'도시빈민' 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이른바 '제3세계' 전반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회문제이며, 오늘날에는 경제선진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경제선진국에서는 슬럼가나 할렘, 노숙자 등을 '도시빈민'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도시빈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런 규정이나 개념을 학계, 언론에서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도시빈민'에 관한 사회학적, 계급적 분석은 이미 끝났거나, 아니면 '도시빈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도시빈민'은 '도시'와 '빈민'이 결합한 것으로, 산업사회의 짙은 그늘의 부정적 현상이며, 산업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특수한 존재들이다. '도시빈민'과 비교할 수 있는 '농촌빈민' 역시 최근의 사회학 주제로는 그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주제들은 인기도 없을 뿐 아니라, 학자들이 다루기에도 거북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도시빈민의 발생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그것은 이미 250년 전 영국에서 자본주의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도시빈민이 출현하게 되는 것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봉건사회의 농노, 농경시대의 경우 한 나라의 인민이 굶주리는 경우는 흔했지만 그들을 '빈민'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물론 봉건시대나 농경사회에서도 빈민은 존재했겠지만, 노동력이 부족했던 그때는 누구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으면, 굶주림으로 죽지는 않았다. 생산력이 낮아 잉여수확물이 적었고, 지배계급이 착취 때문에 인민에게 돌아가는 식량의 양이 적었던 것이 문제였지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소외'의 문제는 심각한 편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한국에서 도시빈민의 출현은 군사독재정권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이면서 폭력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필연적인 이유는, 한국이라는 변방-강대국에 둘러 싸인-의 작은 나라가 살아남기 위해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고, 냉전체제에서 세계강대국인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과 자원이 거의 없는 나라에서 오로지 노동력만으로 수출을 통한 돈벌이를 하는 방법은 낮은 임금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매우 낮은 임금으로 경제선진국의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노릇을 자처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쏟아진 사회과학 서적들에서 이미 '도시빈민'에 관한 사회과학적 분석은 끝났으니 여기서 말하는 건 필요없을 듯 하고, 2000년대 이후 논의가 없는 '도시빈민'이 2000년대 이전의 '도시빈민'과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하겠다.

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촌에서 유입된 노동인구는 도시의 변두리나 공업단지 주변에 밀집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청년 노동자들이 기숙사에 거주하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면, 가족 단위로 이주한 농촌 인구는 도시 변두리에 정착해 저임금 노동시장에 편입되었다.

이미 도시에서 살고 있던 빈민은 도시재개발-자본의 이윤추구 사업-으로 밀려나 도시의 외곽 변두리로 이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동네', '판자촌', '해방촌'과 같은 단어들이 이들을 상징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 이후 농촌인구와 도시인구의 비중은 꾸준히 반비례하면서, 지금은 도시 인구가 전체의 약 90%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사회는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정보화사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로 완전히 이행했고, 초기 도시이주 세대에서 한 세대가 지났다.

1960년대 국민소득이 200불에서 지금은 1만5천불까지 올라갔으니 그 사이 경제 발전은 수구집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기적'이라고 과장할 수도 있겠지만, 단지 결과만을 말하는 방식은 반민주, 반인권적 패륜임을 알아야 한다. 그 사이 노동자와 농민이 겪은 고통은 외면하고, 묵살하면서 오로지 권력자의 치적을 위해 결과를 과장하는 방식의 주장은 천박하고 저열하며 비열한 주장일 따름이다.

국민의 다수인 노동자와 농민이 피땀 흘려 경제를 일으켜 세웠지만, 정작 그들은 그렇게 쌓인 부를 나눠갖지 못하고, 오히려 자본의 착취와 억압으로 질식당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18년, 전두환 군부독재가 7년, 노태우가 7년까지 모두 32년의 군사독재 기간 동안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 열매는 극소수 자본과 권력에게 돌아갔다.

절대 빈곤을 벗어나고, 보릿고개가 사라진 것에 대해 노인 세대는 독재정권의 치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들-박정희와 전두환 일당-을 칭송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실제 일을 한 사람들은 바로 그들 자신임에도, 자신들이 일군 부를 착취한 자들을 은인으로 받드는 멍청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에게 전쟁의 공포는 독재정권보다 더 강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렇더라도 독재정권의 만행을 눈감고, 그들의 착취와 억압을 긍정하는 것은 전쟁의 공포와는 별개의 문제임을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어떻든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1990년대 이후, 정권과 자본은 나라 곳간을 털어 먹고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세계 자본의 공격으로 인민의 삶은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구제금융 사태 이후,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더욱 격렬해졌고, 권력과 자본은 샴쌍동이처럼 변신했다.

지금도 전통적 형태의 '도시빈민'은 존재하지만 외형적으로 도시빈민의 거주지는 대개 '재개발'되었고, 도시빈민은 '청년빈곤'이나 '청년실업' 등의 주제에 묻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도시 변두리에 형성된 달동네, 판자촌은 민간 건설업자들에 의해 고층 아파트로 변하고, 그곳에 살던 도시빈민들은 더 먼 변두리로 밀려났다.

일부 운이 좋은 도시빈민은 영구임대주택이나 시영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삶까지 개선된 것은 아니다. 경제가 활성화되던 80년대는 일자리와 잉여 자본의 일부가 도시빈민에게도 돌아갔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중산층'의 위치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이후 더욱 가속, 심화된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도시빈민은 '하우스푸어'와 '청년빈민'이 대표적이라고 본다. 하우스푸어는 부동산 개발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에 의해 먹잇감이 된 서민들이다. 그들도 부동산(주로 아파트)이 투자와 거대한 잉여이익을 창출하는 수단이라는 욕심을 가지고 뛰어든 잘못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부동산 투기라는 사기를 친 것은 정부의 책임이고, 정부와 밀착한 자본의 책임이다.

은행에서 거액의 융자금 즉 빚으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그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이자의 압박과 원금 손실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민소득은 분명 증가하고 있었고, 최저임금 보장과 각종 복지 제도들이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는데 껍데기는 화려하면서 알맹이는 없는 하우스푸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90%이상의 대학진학율과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의 취업난, 실업자의 양산은 정부와 자본의 무능과 계산된 의도로 인해 '청년빈곤'과 '청년실업'을 대량 발생하고 있다. 대학을 나와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논리는, 대학이 하나의 시장-취업시장-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대학이라는 장사를 통해 이윤을 획득하는 자본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또한 '청년실업' 문제는, 산업예비군(실업자)을 최대화 하는 것이 자본에게는 매우 유리한 전략이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고급인력이 실업자로 존재하게 되면, 그들 자체의 경쟁이 격렬해지고, 경쟁은 단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게 된다. 즉, 청년들이 뭉쳐서 자본에 대항하는 힘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 해, 고급인력을 싼 임금으로 쉽게 부릴 수 있으며, 해고의 위협이 상존하고,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자의 단결을 방해하는 기능도 하게 된다. 자본으로서는 꿩 먹고, 알 먹고, 둥지털어 불 때는 일석 삼조 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1970년대의 도시빈민이 도시 변두리 지역 산동네, 판자촌에 거주하는 건설노동자, 일용직 노동자들로 대표되었다면, 2000년대 도시빈민은 번듯한 아파트에 살면서 빚에 허덕거리고, 대학을 나와도 취직을 못하고 한숨 짓는 청년 노동자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격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친자본정부와 자본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지 않는 한, 빈민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The Look of Silence

인구의 1%를 살육하는 정권. 인간백정, 살육자들이 떵떵거리며 큰소리치고, 돈과 권력을 쥐고 사는 국가. 피해자 가족은 또 다시 살육이 벌어질까봐 공포 속에서 벌벌 떨며 살아가는 사회.

인도네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공산당원과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한꺼번에 '공산당'이라는 딱지를 붙여 참혹하게 살해한 사건은 이미 한국에서도 벌어졌던 상황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에서는 학살자의 폭력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면, 한국은 민주주의가 진행되었다가 다시 반동화되고 있다고 봐야겠다. 한국의 매국노 수구집단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고, 정권을 잡자 총공세를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인구의 1%를 학살할 수 있었던 사회적 요인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절대 다수 국민의 '외면'이었다. '나만 살면 된다'는 무관심과 외면은 결국 죄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수하르토의 군부독재 뒤에는 미국(CIA)의 공작이 있었고, 미국과 군사독재정권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공산당'과 그 지지자들을 절멸시킬 작전을 세웠다.

그들은 조직폭력배를 무장시켜 선량한 시민을 학살했다. 군부독재정권이 주문한 '공산당'과 그 지지자들 뿐 아니라, 조직폭력배들의 눈밖에 난 사람들도 모두 잔혹하게 살육당한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은 군사독재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지역의 군대와 경찰의 묵인과 방조 속에서 아주 작은 꼬투리만으로 잔인하게 살해했다. 이 영화에서 학살자들이 자랑하면서 설명하는 살해 방식을 들으면, 그들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너무도 충격적인 사실에 놀라게 되지만, 그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권력을 잡고, 매국을 애국으로 윤색하고, 독립운동과 독립투사를 범죄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을 뻔뻔하게 자행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범죄를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저들이 역사를 비틀고, 역사교과서를 거짓으로 만들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육과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학교에서는 군부독재와 살육을 정당화할 뿐 아니라,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공산당'은 '악마'이며 '민족반역집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

지금도 한국에서는 폭력을 휘두를 준비가 다 된 극우깡패들이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다. 이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주는 매국노들의 정권이 존재하는 한, 선량한 국민이 참혹하게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선량한 사람을 살육하고, 그 피를 마신 인간백정들이 자신의 살인과 폭력을 자랑하고, 큰소리 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미쳐버린 사회다. 피를 부르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는, 야만과 원한의 불기둥에 갇힌 지옥같은 사회다.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매국노들이 발호하고, 일본을 끌어들이고, 이 땅에 다시 일본의 식민지를 건설하려는 주구, 괴뢰들이 돈과 권력으로 미쳐 날뛰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1965년 상황은 결코 과거도 아니고, 우리와 상관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재정권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그 후유증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나라다. 게다가 그때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며, 다수의 무지한 국민들은 올바른 판단을 못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지만,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면, 뜨거운 피가 차갑게 식는 느낌이었다. 민족반역자, 매국노들을 처단하지 않는 한, 한국의 미래는 암흑일 뿐이다. 별 네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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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한성백제사 1

한성백제사 2

한성백제사 3

한성백제사 4

한성백제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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