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록 vol.12 : 방학

메모리브 매거진, 소비록 2026년 2월호 vol.12

2026.02.28 | 조회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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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에 대해 다룹니다.

안녕하세요! 메모리브 매거진입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는 2월, 여러분들의 방학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소비록 2026년 2월호의 테마는 '방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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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학을 소비하고 싶은 마음 : 방학이 떠났다

 당연히 돌아오는 계절처럼 기다렸던 그날들은 직장인이 되자 예고 없이 사라졌다. 달력 위에 표시를 해둘 수 없게 되었고, 그 어떤 계획에서도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게 방학은 내 삶의 일정표에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빠져나갔다.

 직장인이 된 뒤로 시간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다. 하루는 칼같이 나뉘고, 일정은 타인의 시계에 맞춰 미리 정해진다. 휴가는 신청해야 하는 권리가 되었고, 그마저도 사유가 필요하다. 쉬는 날에도 마음 한쪽은 회사 단톡방과 다음 일정을 점검한다. 방학처럼 이유 없이 비어 있는빈 칸은 이제 동경을 넘어 사치처럼 느껴진다.

 사실 내가 그리운 건 단순히'노는 날'이 아닐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저'쉬어도 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눈에 보이는 진전이 없어도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허락되던 날들. 방학을 맞이 해 본지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그립다. 아무 계획도 없다는 계획, 늦잠을 자도 되는 날들의 연속, 오늘을 내일로 미뤄도 되던 그 시간의 이름이 그립다.

 미련을 뒤로 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방학은 없지만 하루는 어김없이 주어진다. 나는 이제 시간을 잘게 쪼개어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 되었고, 쓸모를 증명하지 못한 시간에는 괜히 마음이 불편해지곤 한다. 온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가도, 막상 비어버린 하루를 보면 기록에서 지워야 할 오답처럼 느낀다. 나는 아직도 갈팡질팡 하며 여유를 좇으면서도 효율을 놓지 못한다. 이 아이러니의 뫼비우스는 도통 끊어질 기미가 없다.

 방학이 영영 사라졌을지 모를 촘촘한 일상 사이사이에 나만의 작은 숨구멍을 뚫어본다. 거창한 방학은 아니더라도, 오늘 하루의 끝엔 쓸모 없는 시간이 오답이 아닌 오롯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방학은 없지만, 하루는 여전히 남아 있다.


2. 엄마가 소비하는 방학 : 고작 일주일의 방학

 아이가 방학을 했다. 어린이집 방학이라 고작 일주일인데, 그 일주일을 어떻게 보낼지 눈앞이 캄캄하다.

 나는 아이랑 놀아주는 엄마가 되지 못했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놀아주는 일은 아무리 노력해도 딴 세상 이야기인 것만 같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익숙한 것에서 안정을 얻고 계획한 대로 흘러가야 마음이 편한 나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능한 아이라는 존재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그건 화면 너머에서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내 눈앞에 실존해 있는 아이는 나를 늘 어렵게 만들었다. 결혼 후, 내가 아이를 낳아도 되는 사람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이를 낳는다면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생기겠지 싶다가도, 아이를 키우면서 그동안 내가 느끼던 불편함을 이겨낼 수 있을지, 아이와 놀아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남편은 아이가 생기기 전부터 아이와 하고 싶은 일을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리는 일, 그 앞에서 잘 놀아주는 일정도는 내 노력으로 상쇄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아이는 태어났다.

 먹고, 자고, 싸는 게 전부인 때에는 크게 힘들지 않았다. 물론 잠이 부족했고, 손목이며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지만,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일 정도야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아이의 활동 반경이 넓어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호기심이 많아지고 재미를 추구하는 개월 수에 진입하면서부터 아이를 돌보는 일이 버겁기 시작했다. 놀이책을 사고 인터넷을 뒤지며 엄마표 놀이같은 것들을 따라 해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크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에도 내 놀이에는 엉성한 느낌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세 돌까지는 가정 보육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나는 결국 14개월 차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키즈노트에 올라오는 아이의 활동사진을 볼 때마다, 안도감과 묘한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놀아주는 것보다 어린이집이 아이에게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 뒤에는 아이를 위해 더 내가 노력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마음이 늘 따라붙었다. 도의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환하게 웃는 아이 사진을 앞에 두고 나는 늘 감정의 줄타기를 했다. 공지 사항에 방학 기간 안내문이 올라온 날, 감정은 새로운 줄타기를 시작했다. 그동안의 죄책감을 만회할 기회라는 약간의 설렘과 그 시간이 어느 때보다 길 것이라는 막막함으로. 이래도 저래도 따라오는 양가감정 앞에서 어쩐지 나는 좋은 엄마는 되지 못할 것 같아 민망하다.

 이제 36개월이 된 아이. 잘 놀아주기 힘든 엄마는 이제 요령이라는 걸 깨우쳤다. 방학 내내 일단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갈 계획을 세운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하루, 내 체력과 아이의 웃음이 반비례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 뒷좌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너무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백미러로 아이의 웃음을 확인한다. 체력은 바닥났지만 내 입꼬리는 올라간다. 문득 앞으로 아이와 함께 보낼 방학이 몇 번이나 될까, 헤아려보다가 중학교부터는 아무래도 힘들겠지? 하는 마음에 아쉬움이 들어찬다.

 그래도 방학인데 고작 일주일이라니, 어쩐지 방학이 짧은 것만 같다.


3. 이달의 소비1-헬스장 회원권: 여름 방학이 필요해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나는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어릴 때부터 덩치가 큰 편에 속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곤 했는데, 나는 늘 출석부의 엔딩을 맡았다. 아담한 몸이 이상적인 여성상이었던 시절, 나는 크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았다. 큰 키와 살집 있는 몸은 학창 시절 내내 나의 최대 콤플렉스였고, 내 외모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과 동시에 나는 방학 동안 무조건 살을 빼버리겠다고 결심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헬스장부터 끊었다.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러 갔다. 살을 빼겠다는 일념으로 아침, 저녁 한 시간 반씩 운동을 했다. 30분은 사이클, 나머지 한 시간은 러닝머신을 탔다. 체력이 좀 더 되겠다 싶은 날은 한 번에 2시간까지도 유산소 운동만을 했다. 근력 운동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운동과 담쌓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침밥과 점심밥을 평소보다 적게 먹었고, 저녁밥은 먹지 않았다. 간식도 끊었다. 나는 한 달 정도 되는 짧은 여름 방학 동안 8kg을 감량했고, 개학 날 담임선생님은 살을 뺀 나를 보고 독하다고 했다.

 임신하고 18kg이 쪘다. 뱃속의 아이가 4.09kg으로 태어났으니, 주변에서는 임신한 거 치고 막달에 살이 많이 찐 것도 아니라고, 아이 태어나면 금방 빠진다며 우울해하는 나를 위로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불어난 살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적게 먹고 운동하면 살이 빠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다이어트를 성공한 18살 방학 때의 그 열정이 되살아 나지가 않는다. 38살이 된 나는 기운이 딸려서 먹고, 육아하다 힘들어서 먹고, 힘드니까 운동은 못 가는 핑계 돌려막기를 몇 년째 이어오고 있다. 올해 목표는 다이어트라고 거창하게 선언한 나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힘들다는 핑계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헬스장을 안 갔다. 개학 날 나를 보며 우와를 외치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 나에게도 한 달간의 방학이 주어진다면 8kg 정도는 거뜬히 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 나에겐 방학 같은 게 없다.

 핑계가 너무 구차한가?


4. 이달의 소비2-건담 프라모델 : 방학 상자

 방학이 시작되면 집에 조그만 상자가 몇 개씩 생겼다. 건담이나 조립식 로봇 같은 프라모델이었다. 일수가 조금씩 달랐던 방학의 길이보다, 그 상자를 열 수 있다는 게 더 설레고 중요했다. 상자를 열어 설명서를 펼치고, 비닐에 싸인 부품들을 늘어놓는 일은 방학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몇 개씩 쌓여 있는 상자들을 모두 완성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오늘 팔 하나, 내일 다리 하나를 붙여도 괜찮은 시간이었다. 방학은 프라모델을 완성하기에 알맞은 속도로 흘러갔다. 그렇게 나에게 있어 프라모델은 방학과 연결되어 기억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라모델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조립할 시간도, 조립한 뒤 둘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장난감이라는 말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관련 애니메이션은 계속 챙겨봤고, 길에서 프라모델 샵을 보면 괜히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렇게 건프라는 만들지는 않지만, 항상 관심을 두고 있는 묘한 취미가 됐다. 막연히 나중엔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프라는 생각보다 좀처럼 사기 어려웠다. 결혼하고 집이라는 공간을 꾸밀 수 있게 되었지만 역시 구매까지 이어지긴 어려웠다. 시작하면 장식장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와이프의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꽤 정확한 경고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구경만 했었다.

 좀처럼 인연이 닿지 않던 건프라였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옷방 서랍장 위에 새롭게 놓인 작은 소품 상자가 발단이었다. ‘흰빨파색조합이 내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 상자와 색감이 묘하게 잘 맞는 퍼스트 건담을 며칠 동안 설파했다. 이렇게까지 사고 싶다고 어필한 적이 없어서였을까? 크게 튀지 않고, 공간을 어지럽히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허락이 났다.

 사고 싶은 모델 재입고를 기다리기를 몇 달. 우연히 들린 장난감 가게 한 켠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됐다. 결제를 할 때 설렘은 오래간만에 느끼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기분이라기보다, 예전에 멈춰 둔 일기장 하나를 다시 꺼내 드는 느낌에 가까웠다. 아직 조립은 하지 않았다. 상자를 열어보는 일도 조금 미뤄두고 있다. 마치 방학이 시작된 예전처럼, 서두를 이유가 없어서다.

 장식장은 어디다 두면 좋을지 물어봐야지.


5. 계절을 소비하는 방학 : 방학이 없는 계절

 방학. 어김없이 떠나는 가족 여행.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여름휴가를 떠날 때마다 생각했다. 이 더운 날 놀러 가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라고. 돌아다니지도 못할 만큼 뜨거운 햇볕,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땀범벅이 되는 날씨. 이럴 바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나 쐬면서 집에 있는 편이 낫지 않나 싶었다. 여름은 휴가를 떠나기에 적합한 날씨가 아니다. 여름휴가라는 말이 생긴 건지 의문이었다. 겨울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었다. 방학을 맞아 겨울에도 한 번은 꼭 가족 여행을 가곤 했는데, 너무 추워서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어떤 곳이든 휑하게 만들어버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는 여행이라는 단어랑 어울리지도 않았다. 휴가나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는 어딘가 어긋난 계절. 아무튼 그 방학이라는 단어가 여름겨울에 어울리는 적합한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날씨 좋은 봄이나 가을에 떠나야 진정한 쉼이 따라오는 거 아니겠냐고, 나는 방학 때마다 투덜거렸다. 봄방학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봄은 겨울 방학 시즌2 같은 느낌이니까. 아무튼 그래서 방학을 날씨 좋은 봄이나 가을에 해주면 좀 좋나- 나는 늘 그런 마음을 품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식 날, 물놀이 안전 수칙을 거듭 당부하던 담임선생님은 너무 더우면 공부하기 힘드니까 방학을 주는 거라고, 학업에 열중하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그 말에 욱하고 반감이 일었다. 날씨 좋은 계절에 놀러 가야지, 교실에 앉아 있으나 밖에 나가 있으나 힘들다면, 차라리 좋은 날씨를 누리는 편이 모두에게 좋은 거 아닌가? 에어컨 틀고 공부하는 게 오히려 시원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방법 아닌가? 나는 정말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는 공식적인 봄방학과 가을방학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굣길, 봄 냄새와 가을 공기를 맡을 때마다 이 좋은 계절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과장을 조금 보태) 억울했다. 봄방학은 5월에, 가을방학은 10월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어디든 싸돌아다니며 해와 바람을 만끽하기 좋은 계절. 방학을 여름과 겨울로 정한 사람은 분명 계절도, 낭만도 모르는 이과생일 것이라고 혼자 악담을 퍼부었다. 나는 언젠가 봄방학과 가을방학이 꼭 생길 거라 믿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봄방학과 가을방학은 없다. 여전히 사람들은 더워죽겠다고 말하며 여름휴가를 떠나고, 겨울 방학 시즌에는 항공권값이 오른다. 다 커버린 어른에게 방학이라는 말은 사치에 가깝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봄방학과 가을방학을 꿈꾼다. 언젠가는 봄과 가을을 방학처럼 써보고 싶다. 좋은 날씨를 온전히 누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 봄과 가을이 방학이라면, 특별한 여행이 필요나 할까.


6. 시골에서 소비했던 방학 : 변화

 어렸을 때 방학의 시작은 시골이었다. 여름방학이든 겨울방학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촌들이 한데 모인 시골에서 일주일쯤 머무는 것이 방학의 기본값이었다.

 시골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불편한 곳이었다. 에어컨은커녕 텔레비전도 잘 나오지 않았다. 문자 하나 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대대적으로 집수리를 하기 전엔 화장실 가는 것도모험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에겐 대수롭지 않았다. 하루는 대부분 밖에서 흘러갔고, 시골집은 먹고 자는 데 필요한 곳에 가까웠다. 방학마다 내려간 시골에선 매일 이렇다 할 계획은 없었지만, 시간이 안 간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골은 점점 불편한 장소가 되었다. 정리가 제대로 안 된 집, 주변엔 편의점은커녕 불빛조차 드물었고, 이동 역시 번거롭다는 이유들이 뒤늦게 따라왔다. 시골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나에게 기준이 생긴 것이었다. 그 기준은 대체로 편리함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사촌들과의 사이도 시골과 비슷해졌다. 한때는 이유 없이 가까웠고, 늘 함께 있었지만 지금은 안부를 묻는 일에도 망설임이 생긴다. 무엇을 묻고,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방 하나를 나눠 쓰던 사이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방이 필요한 관계가 되었다.

 그래도 방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여전히 그 시골이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보다,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의 질감이 먼저 생각난다. 불편했지만 충분했고, 단조로웠지만 빠르게 지나간 날들이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방학은 없을 것이다. 시골도, 사람도, 나도 달라졌으니. 다만 기억 속의 시골은 아직 방학을 품고 있다. 편하지는 않지만, 떠올리면 괜히 마음이 조용해진다.

 나에겐 시골이 있었고, 방학은 거기서 시작됐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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