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념일을 준비하기 소비 - 제조일자: 기념일
너무나도 손쉽게 쇼핑할 수 있는 세상, 액정 속 넘쳐나는 상품들은 나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손가락 하나로 열리는 욕망의 문. 다양한 곳에서 마주한 욕망들은 내 핸드폰 앨범 속 위시리스트 라는 폴더에 박제되어 있다. 반팔티부터 책, 전자기기, 사무용품은 물론 명품 시계까지. 위시리스트에 물건들이 쌓여가는 속도가 내 지갑이 열리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마침내 인정했다. 내 욕망이 내 경제력을 훨씬 앞서고 있다는 현실을. 그렇게 위시리스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필요해서 담은 물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목적성 없이 그저 '갖고 싶다'는 감정만으로 담긴 것들이다. 그 폴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묘한 죄책감과 설렘이 교차한다.
위시리스트 안에는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템들이 가득하다. 3년 전부터 눈독을 들인 가죽 자켓은 여전히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오늘은 기어코 질러볼까 하며 위시리스트를 다시 열어보기도 한다. 택배 박스를 열어 가죽 자켓을 걸쳐 볼 나를 상상해본다. 그 상상 속에서 나는 항상 행복하다. 현실의 나보다 더 빛나는 것 같다.
자기합리화의 달인이 된 나는 결국 '구매 허가증'을 스스로에게 발급한다. "이건 투자야, 소비가 아니라.", "한번 사면 오래 쓸 수 있어.", "이 정도는 나를 위한 보상이야." 이런 말들을 되뇌다 보면 어느새 택배를 열어보는 나는 현실이 되어있다.
그래도 간혹 정말 잘 산 물건들이 있다. 몇 달을 고민한 끝에 구매한 옷 중 하나는 옷장에 걸려 있는 시간보다 내 몸에 붙어 있는 시간이 더 길 정도로 잘 입고 있다. 이런 경험들이 다음 구매를 더 쉽게 만든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그러다가도 이런 날이 반복되다간 거리에 나앉을 것만 같아서 나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 언제가 적합한지 고민하다 나를 위한 '기념일'을 만들어본다. 하지만 나를 위한 기념일을 만든다는 것은 힘든 날 좋은 핑계가 됐다. 상사에게 혼났거나, 프로젝트가 잘 안풀리거나, 그냥 왠지 우울한 날이면 나는 위시리스트로 달려간다. 내가 만든 작은 낙원에서 위로하기 위한 온갖 구실을 찾아본다. 하지만 이런 보복 심리로 만들어진 일시적인 행복은 카드 명세서 앞에서 한없이 옅어진다. 카드 결제일이 다가올 때 쯤, 식은땀을 흘리며 명세서를 확인하는 순간 깨닫는다. 그 모든 '기념일'들이 보여 하나의 거대한 숫자가 되었음을. 통장의 잔고가 채워지기도 전에 '나를 위한 선물'로 둔갑해서 증발했다. 다음 달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니 버텨야 한다. 위시리스트는 계속해서 나를 부르고 있으니까.
결제를 완료한 후의 그 짜릿함. 택배를 기다리는 그 설렘. 포장을 뜯는 그 순간의 행복. 나를 위한 소비는 분명 삶의 작은 축제다. 하지만 그 축제가 너무 잦아지면 특별함은 사라지고 습관만 남는다. 어쩌면 나는 물건 자체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위시리스트에 담고, 고민하고, 결제하고, 기다리고, 받는 그 모든 과정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 그것이 나를 위한 소비의 진짜 매력일지도.
오늘도 나는 위시리스트를 열어본다. 이번에는 정말 필요한 물건만 살 거라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내 손가락은 이미 '결제하기' 버튼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나를 위한 소비, 그것은 끝없는 유혹이자 작은 행복이다. 어쩌면 진정한 풍요는 가진 것의 많음이 아닌, 원하는 것의 적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핸드폰이 울린다. 벌써부터 택배가 기다려진다.
2. 이달의 소비1 : 시간의 향기-산타마리아 노벨라 멜로그라노
백화점 1층을 지날 때면 공기 속에 머문 수십 개의 향이 가볍게 뒤섞이다가 다시 제자리로 가라앉는다. 어떤 향기는 기억으로 남아, 잊고 있던 순간들을 문득 떠오르게 만든다. 콧속으로 스며든 그 장면은 오래된 필름처럼 흐리지만 강렬하게 스쳐 지나간다. 어딘가에 박혀 있던 낡은 사진을 발견한 것처럼 향기는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어딘가로 데려가기도 한다.
향에 예민한 나는 향수를 쓰지 않는다. 화장품이나 향수를 파는 곳에선 각종 향이 공중에서 충돌하며 내 머리를 울린다. 그럼에도 약 10년 전, 나는 그곳에 서 있었다. 성년의 날, 여자친구에게 줄 향수를 고르기 위해. 친구의 추천을 받아 선택한 랑방 향수는 내겐 그저 병 속의 액체였지만, 그녀에게 건넸을 때의 표정은 지금도 선명하다. 붉은 장미 다발과 함께 건넨 향수 병을 받아든 그녀의 환한 얼굴이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어제는 별다른 기념일도 아닌데 향수를 샀다. 그녀가 언젠가 말했던 산타마리아 노벨라의 멜로그라노. 랑방에서 산타마니라 노벨라로 바뀐 향수처럼 우리의 12년도 변화했다. 대학 근처 쇼핑몰에서 백화점으로, 어색한 데이트에서 편안한 일상으로, 각자의 집에서 우리의 집으로. 하지만 향수를 고르며 느꼈던 그 몽글몽글한 감정은 여전히 같다. 시간이 흘러 아내가 된 그녀가 눈여겨본 향수를 사 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백화점을 빠져나오자 두통은 사라졌다. 대신 가슴 한편에 살며시 피어오르는 설렘이 자리했다. 12년 전과 같은 설렘. 향수를 건네며 마주할 그녀의 미소를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소비의 목적이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라면, 나는 향수가 아닌 그녀의 미소를 사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소비하는 것은 물건이 아닌,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향수병 속에 담긴 것은 단순한 향이 아닌, 12년의 시간과 기억,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우리의 이야기다.
3. 이달의 소비2 : 일하는 사람의 손목-세이코 SWR083P1
2년만에 복직을 한다. 육아휴직이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크게는 삶의 지표가 바뀌었고, 아주 자잘하고 사소한 것에서 얻는 가치 값도 달라졌다. 삶의 중심은 나에서 가족으로 옮겨갔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타협이라는 것을 모르고 뻗어있던 꼿꼿한 나뭇가지에서 바람에 따라 유연하게 흐르는 갈대로 모양을 바꿨다. 나를 위한 쇼핑이 예전처럼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았고, 기분 전환을 위해 네일샵에 가는 일은 약간의 사치가 되었으며, 매일 바꿔 끼던 실버 반지들은 손길이 닿지 않아 변색된 채로 굴러다녔다. 내 시간으로는 길었고, 아이의 시간으로는 짧았던 2년이라는 세월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남편은 나의 복직을 기념하며 데이트를 제안했다. 내가 다시 출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뿐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여러 의미로 기념할 만한 일이었다. 우리는 조도가 적당히 낮은 카페에서 커피를, 목소리를 약간 높여야 하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복직을 조촐하게 축하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은 선물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이왕이면 재출근 기념일을 기억할 만한 물건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면서.
뜻밖의 숙제에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이왕이면 기념일의 취지에 걸맞은 물건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사회 초년생도 아니고 9년간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출근을 위해 딱히 필요한 물건이랄게 없었다. 쓰면 사라지는 소모품을 사고 싶지 않았고, 매년 비우는 옷장에 옷을 채우는 일도 내키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화장대를 정리하던 날, 서랍 구석에 자리하고 있던 손목시계를 발견했다. 내 손목 사이즈 대로 묵직하게 주름이 배어있는, 출근하던 나와 매일 함께했던 시계였다. 언제 멈췄는지 알 수 없는 시곗바늘은 두 시 오십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대 중반, 첫 출근을 하고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산 시계였다. 직장인이 되면서 전보다 시간을 확인할 일이 잦아졌고, 매번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는 일이 번거롭다고 느낄 때쯤이었다. 시계라는 것의 원래 목적이 시간을 확인하는 데에 있지만, 손목시계란 그저 패션 악세서리 정도로 여겼던 나에게 본래의 목적대로 쓰일 시계를 찾는 것은 여러 조건이 뒤따라 붙은 제법 까다로운 일이었다. 인덱스가 선명해야 했고, 다이얼의 사이즈가 보통의 여자 시계보다는 커야 했다. 어디에나 어울리는, 무난하지만 아주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이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시계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뒤로 조건에 부합하는 시계를 찾기 위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썼다. 그리고 마침내 내 손에 들어온, 마크제이콥스 시계. 까만색 가죽 줄과 금색 베젤이 적당히 단정한 멋을 내는, 선명한 인덱스와 한눈에 들어오는 정사각형의 다이얼이 시원하게 빠진 시계였다. 공들여 찾은 시계를 차고 출근한 날, 손목을 돌려 간결하게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이제야 진정한 직장인이 되었다는 우스운 생각을 했었다. 매일 손목시계가 필요한 것이야말로, '일을 한다'는 상징 같은 것이라고. 나는 매일 아침 시계를 차며, 내가 '일하는 사람'임을 되새기곤 했다.
시계 대신 손목 보호대를 찼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두시 오십분에 머물러있는 시계를 다시 손목에 찼다. 재출근을 기념할 만한 선물로는 시계가 적당하겠다 싶었다. 손에 걸치는 모든 것이 짐이 되던 시간을 지나, 다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새 시계를 차기로 했다.
올해로 10년, 약간 큰 정사각형의 다이얼에서 느껴지는 발랄함이 어쩐지 머쓱해지는 연차. 이번에는 다이얼의 사이즈가 두드러지지 않는 차분한 디자인을 골라본다. 손목 사이즈대로 접혀있는 가죽 줄을 뒤로하고 고전적인 맛이 있는 메탈 시계를 살핀다. 단정함보다 담백함이 어울리는 나이임을 실감하며 고른, 직사각형의 다이얼에 터키블루의 핸즈와 용두가 조화로운 세이코의 메탈 시계. 나는 다시, 일하는 사람이 되어 집을 나선다. 왼쪽에 새 손목시계를 차고.
4. 기념일에 소비하는 장소
"축하하거나 기릴 만한 일이 있을 때, 해마다 그 일이 있었던 날을 기억하는 날". 그날을 우리 우리는 기념일이라고 부른다. 기억하고 싶은 날,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분위기 좋은 장소에 가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쯤은 검색창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쳐보는지도 모른다. 낯선 장소에서 느끼는 설렘은 함께 공유할 추억을 더욱 빛나게 해줄 테니까. 함께 보낼 적당한 시간을 고민하고 장소를 물색하는 수고가 더해져 특별해지는 날, 그렇게 쌓여가는 매해 기념일이 다시 기념일이 되는 것. 차곡차곡 쌓이는 낭만으로 우리는 행복에 가까워진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말, 분위기를 한층 더해줄 장소를 추천한다.
5. 기념일로 소비하는 기분 : 빨간 동그라미의 그림자
중요한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달력에 빨갛게 표시를 해둔다. 생일, 결혼, 출산, 승진, 집들이 등 각자의 삶의 특별한 순간들이 모여 축하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축하의 순간들은 마치 긴 밤을 비추는 불빛처럼 우리 삶을 밝히지만, 그 불빛을 켜기 위해 우리에겐 얼마나 많은 장작이 필요한가. 매번 불을 지피기 위해 우리는 지갑을 열고, 포장지를 뜯고, 또 다른 의무를 짊어진다.
거기에 뭔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챙길 날들은 많다. 발렌타인데이를 필두로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끝없이 이어지는 '~데이'는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그렇게 사랑은 초콜릿과 사탕이 되고, 감사는 지갑이 되고, 존경은 넥타이로 포장되어 계산대 위에 올려진다. 마치 선물이 없다면 그 날의 의미도 없는 것처럼.
달력을 넘기는 소리가 한 장, 또 한 장 살랑거릴 때마다 새로운 기념일의 압박감이 찾아온다. 이렇게 한 해 동안 부지런히 빨간 동그라미를 챙기다보면 어느새 추워진 거리가 온통 붉은색과 녹색으로 물든다. 골목부터 백화점까지 형형색색 조명들은 눈을 현혹한다. 끝없이 울려 퍼지는 캐럴은 이제 더 이상 아기 예수의 탄생을 노래하지 않는다. 종교적 의미는 희미해지고, 어떤 선물을 준비할지 의무감만이 남았다. 전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경건함이 아닌, 소비의 유혹이다. 이 날은 이제 '연말 대목'이라고 불리고 있다. 쇼핑백을 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종소리를 뒤덮는는다.
공통의 기념일이 다가올 때마다 거리의 화려한 간판들이 외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지 않을 건가요?' 그 소리에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전해줄 무언가가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것처럼, 소비 없는 기념일은 의미가 없는 것처럼. 정해진 간격으로 찾아오는 이 상업적 기념일들은 우리의 감정을 상품화하고, 관계의 깊이에 숫자를 붙인다. 언제가부터 선물 교환의 장으로 변질되면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더 비싼 가격표를 달아야 인정받고 있다.
잠깐.
우리는 언제부터 기념일을 '소비의 날'로 둔갑시켰을까? 의미를 기억하기보다 물건을 구매하는 날로, 마음을 나누기보다 선물을 교환하는 날로. 특별한 날, 특별한 선물을 하라는 광고마저 당연시되었다. 어디서부터 놓치고 있던 것일까. 이제는 상업화된 기념일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소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실 어렴풋이, 아니 잘 알고 있다. 1년에 한 번 비싼 선물을 교환하는 것보다, 매일 나누는 소소한 대화와 눈빛으로 쌓인 우리만의 기억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어쩌면 진정한 기념일은 달력에 표시되지 않은 날들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마주한 미소, 평범한 저녁 식탁에서 나눈 대화, 시답잖은 주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던 주말. 그런 날들에 우리는 무엇을 소비했던가. 그 안엔 돈이 아닌 시간이, 물건이 아닌 감정이 있었다.
나는 이제 다른 달력을 만들고 싶다. 소비의 날이 아닌, 기억의 날들로 채워진 달력. 그 달력에는 가격표가 없다. 대신 우리가 함께한 순간들의 흔적이 담겨있다. 함께 만든 추억을 영수증이 아닌 마음 속에 기록하고 싶다. 소비의 흔적이 아닌, 마음의 흔적으로.
달력 위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질 때마다 나의 지갑은 얇아진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동그라미를 지폐로 채우지 않아도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는 날이 되길 바란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념일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싶은가?
6. 기념일로 소비하는 관계 : 촉촉해진 달력
언젠부턴가 5월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어린이날로 시작해 어버이날과 스승의날, 성년의날을 거쳐 부부의 날로 마무리하는 가정의 달이 약간 피곤하게 느껴졌달까. 생각해보면 5월을 즐기던 때도 있었다.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고민하고, 잊고 지냈던 선생님께 오랜만에 연락을 드리는 일을 기꺼이 즐겁게 했던 때가.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넉넉한 마음이 있었고 뒤따르는 뿌듯함에 흡족했었다. 봄의 절정에 다다른, 따뜻하고 부드럽다 못해 화사하기까지 한 계절에 사람들과 함께 보낼 날이 정해져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한 조합이라고, 5월은 그런 달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음의 여유라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자리를 좁혀갔고, 고민이라는 것을 '선물'에까지 나눠주기에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살아보니 실용적인 것이 제일이라며 선물은 돈으로 퉁쳤고, 상대도 나만큼 바쁠 것이라는 합리화로 연락을 미뤘다. 그렇게 나는 5월과 멀어져갔다.
삶이라는 건 갈수록 건조해졌다. 기념일이 다가옴을 느끼는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기념일을 기념일답게 보내던 때의 마음가짐이 사라졌달까. 상대방을 향해있던 마음은 방향을 틀어 나로 향했다. 상대를 생각하며 설렘을 느끼는 날에서, 내 마음 편하자고 '도리'를 챙기는 날로 변해버렸다. 상대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적당히 챙기며 살아야 하는 의무처럼 느껴지는 일. 명분만 남은 일에 재미가 따라올 리 없었다. '관계 유지'란 얼마나 보수적이고 따분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과하지 않지만 모자라지 않게 적당히 챙기며 살자는 식으로 마음을 먹곤 했다. 적당하고 근근이 챙겨나가야 하는 날, 기념일은 짐이 되어버렸다.
남편 친구의 부부와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날, 갑자기 아이스크림 케이크 배들이 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배달에 당황하고 있을 때 걸려온 전화. 남편의 또 다른 친구였다. 부부의 날이라 케이크를 보내 봤다고, 즐거운 시간 보내라는 미혼인 친구의 전화였다. 케이크를 자르고, 웃고, 떠들며 그날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유난히 달게 느껴졌던 케이크를 먹으면서 나는 '이게 부부의 날인가?' 싶었다. 그날 아침, '부부의 날이 별건가' 애써 외면하며 출근했던 나를 떠올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친구가 케이크를 보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예전의 내가 상대를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던 마음과 맞닿아 있겠지 싶었다. 나로 인해 상대가 기뻤던 순간, 그래서 나 역시 기뻤던 그 순간들이 차례로 떠올랐다. 상대를 위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내가 더 기뻤던 일. 기념일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부터, 기념일을 기념일답게 보내는 시간 모두에는 '그래서 행복한 내'가 늘 기저에 깔려있었다. 기념일을 챙기는 행위를 '관계 유지'라는 딱딱한 말로 덮어버렸지만, 그 뒤에는 팍팍하게 살다가 바스라지기 직전까지 가버린 메마른 내가 숨어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하루, 그 속에서 우리는 가끔씩 일어나는 소소한 행복을 먹으며 산다. 그 작은 행복에 기념일이라는 보너스가 숨어있었음을, 나는 이제야 깨닫는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사이가 돈독해지는 일은 내 삶의 밀도를 채우는 일이라는 사실도. 그래서 기념일을 챙긴다는 것은 숨을 고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게 할 쉼표를 찍는 것과 같은 꽤 필요한 일임을 또한 깨닫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제, 눈 앞에 다가오는 모든 기념일을 기쁘게 맞이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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