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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기억은 기차>에 대하여, 목요지기 서라가 쓰다

2024.05.17 | 조회 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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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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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지?”

 아까 전까지만 해도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따박따박 질문을 해대다 그 말에 말문이 막힌 김은 이내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기자의 습관이랄까, 카메라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잠깐, 그럼 그게 다 직접 겪은 일이다, 이 말씀인 건가요?”

 “뭐, 이렇게 얘기해봅시다. 과학자나 교수 같은, 이른바 학문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무조건, 반드시, 백프로, 이런 말 잘 안 해요. 왜? 혹시 모르는, 만에 하나 있을 법한 예외적인 상황이 분명 있거든.”

 “그래서요?”

 “마찬가지다 이거죠.”

 라는 위 내용을 한참 지켜본 김은 도저히 머리가 깜깜해져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며칠 아니 몇 주가 지났다. 위의 내용에 이어지는 글쓰기를 하라는 숙제에 도저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숙제의 타이틀이 “기억은 기차”인데, 그가 가진 어떠한 기억도 저런 기억은 없었다. 기억이 있어야 기차가 이어지고, 이어진 채 달릴 수 있지 않은가? 유명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노래에서도 그렇다.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에서 나오는 것처럼 바나나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맛있으면 바나나라는 가사조차 만들어 내지 못했을 거라는 거다. 그래서 숙제를 ‘이행’하고자, 위의 내용을 과감히 삭제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본인이 가진 기억의 기차를 슬며시 꺼내본다.

 이는 12년 전이었다. 수능을 갓 마친 김이 그의 절친 희, 한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청춘을 즐기고자, 내일로 패스를 끊고, 부산행 무궁화 열차로 향했다. 도착지는 갓 어른이 된 김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먼 도시로 골랐다. 내일로 패스의 특성상, 자유석 혹은 비어 있는 자리만 이용이 가능하였고, 친구끼리 처음 가는 여행에 설렌 김과 친구들은 어디서 주워들은 자유석 호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3명이 함께 마주 보고 가자며, 의자까지 돌려 본인들의 첫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이 짧은 안락함은, 한 아저씨가 그들에게 다가가며 깨지게 되었다. 아저씨는 젊은이들에게 본인의 자리라며, 표를 보여주셨고, 당황한 그들은 여기가 자유석이 아니냐며 물었으나, 아저씨는 여기가 자기 자리라는 것만을 열심히 증명할 뿐이었다. 무안함과 창피함에 셋은 벌떡 자리를 일어나, 커다란 배낭을 급하게 들고 나왔으나, 함께 마주보고 가자며 돌려놓은 의자를 원복하는 것은 까맣게 잊고 말았다. 그러자 아저씨는 손수 의자를 돌리시며, “어휴, 의자는 돌려놓고 가야지” 라며 핀잔을 주셨다. 그 핀잔에 민망해진 셋은 다른 칸으로 도망가며, 왜 저기가 자유석이 아니냐며 민망함에 툴툴거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참 이상했다. 12년 전에 떠난 그 어설픈 우당탕탕 부산 여행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왜 잘못 앉은 좌석과 돌려놓지 않은 의자로 인한 당황스러움과 핀잔이 잊히지 않는 것일지 김은 궁금했다. 미성숙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일지 혹은 스스로의 어리숙함에 대한 부끄러움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기억의 생생함은 첫 부산 밀면의 맛보다도 더욱 강력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김은 기차를 탈 때면 여전히 그 기억을 떠올린다. 즉 최근 기차로 출퇴근하게 된 김이, 매일 아침 그 일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미성숙함과 어설픔의 총집합체였던 그때. 김은 어쩌면 그때의 김에게로 가서, 괜찮다는 말을 건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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