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글을 씁니다

<기억의 배반>에 대하여, 수요지기 S가 쓰다

2024.03.20 | 조회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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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짧은 글 한 편으로 매일 아침 새로운 기분을 받아보세요

 “만약에 13년도 수능 언어영역 14번 문제에서 1번이 아닌 2번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 뭐, 더 좋은 대학에 갔겠지?

 에잇. 깨져버린 몰입을 부여잡고, 자자- 다시 집중해 봅시다.

 “만약에 그 회사를 최종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 뭐⋯ 좀 더 많은 돈을 벌었겠지?

 “만약에 테니스 동아리에서 혜원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 기숙사에서 마주쳤겠지?

 “만약에 그날 파스타가 아닌 김치찌개를 먹었다면 어땠을까?”

 → 다음날 얼굴이 더 부었겠지?

 <기억의 배반>이란 주제로 글을 쓴다면 어떨까? 아아,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에게 기억에 If라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인간의 기억을 창조해 If를 붙여보지만 도통 재미도 감동도 없는지라 북북 찢어버립니다. 그러다 내가 이 글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If의 앞에 Even을 찰싹 붙이는 거! 바로 그거면 되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자, 여기를 보세요, 만약 수능 문제를 몇 개 더 맞았고, 더 좋은 대학에 갔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갔다고 해봅시다. 뭐, 지금보다 더 돈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 없는 글을 쓰겠다며 나서고선, 써지지 않는 글 앞에서 머리나 쥐어뜯고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모든 기억을 배반한다고 해도 글 쓰는 모습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요. 아니,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 지독한 운명주의자에게 수많은 If는 결국 한 가지 결말로 귀결되어 버립니다. 아! 어쩌면, 삶에서 허락된 건 하나의 결말이고, 그 결과에 최대한 만족해지고자 하는 “자기 합리와의 대-왕”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뭐, 그게 어때서요! 기억의 배반은 If가 아닌 Even If에서 완전해지는걸요. 언제든 기억을 배반하고 싶을 땐 여러분도 Even을 기꺼이 써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아아- 아무래도 <기억의 배반> 주제에 알맞은 글을 쓰는 시도는 실패했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여러분! 성실히 임한 저를 용서해 주시겠나이까?

 뭐, 만약 이런 진심 어린 제 사과에도 "불구하고" 용서를 안 해준대도 어쩔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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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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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재

    0
    2 months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피는 3월임에도 씁쓸하고 쌀쌀한 요즘이지만, 곧 있을 꽃놀이를 기다리듯 우리는 매일 그놈을 곱씹나 봅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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