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피디, 김용모 그를 알게 된 건 한 독서모임에서였다. 독서모임에서 남다른 견해로 토론하는 모습으로 두각을 나타내더니, 당시 친하지 않던 나에게 글쓰기 모임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제안하였다. 제안을 받아들이고 같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약 1년이 되어 가면서, 용피디라는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활동 또한 다채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잠시 주최했던 전통주 원데이 클래스에 참석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 사람 본업이 피디라던데… 왜 피디가 된 거지? 어떤 영상을 제작하는 거지?
이번 인터뷰는 글쓴이 용피디 말고, 영상 제작자 용피디에 궁금한 것들을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어릴 적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제가 하고 싶은 건 역사를 탐구하는 일이 아닌, 사람들에게 역사를 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계기가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때문이었는데요. 경주에서 역사 특집으로 방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특집으로 인해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영상을 통해 대중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 또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영상을 제작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피디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죠.”
왜 피디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용피디가 대답했다. 당시 무한도전의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필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을 주는 예능의 역할을 뛰어넘어 한 사람의 꿈에도 영향력을 끼친 대단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런 영상을 제작하고 싶은 걸까?
피디가 된 그가 어릴 적 품었던 꿈을 이루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역사 관련 영상을 제작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물론 있다고 대답했다. 이전에 다니던 회사가 전통주 관련 회사라 그와 관련된 영상을 제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역사 관련 영상을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본인이 만들고싶은 영상을 기획해서 제작했다고 하면 완성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곧 그는 학부 시절 개인적으로 진행했던 ‘국보 투어’에 대해 말해주었다.
“학부 시절 ‘국보 투어’라는 이름을 붙여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전국에 국보가 340개 정도가 되는데, 이 국보들을 다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겨보겠다는 프로젝트였죠. 이와 관련된 영상과 사진을 기록으로 많이 남겨두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편집하고 영상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국보 투어’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더니 그는 곧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국보가 전국에 흩어져 있다 보니, 전국을 들쑤시면서 다니는 것이 일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기억에 남는 것들이 많습니다.
혹시 서산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이라고 아실까요? 아마 교과서에서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백제 시대에 절벽에 새겨놓은 불상인데 이 불상에 대한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국보 투어’할 당시에는 제가 스마트폰이 없어서 보통 투어 시작하기 전에 가는 방법을 메모해서 다녔는데, 그렇게 가다 보면 버스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던지,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날도 그랬어요. 우여곡절 끝에 서산으로 찾아갔는데 불상을 보러 들어갈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린 거예요. 너무 막막한 마음에 그곳을 담당하시는 분께 사정을 말하면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담당자분이 안된다고 말씀하시면서 결국 그날은 들어가게 해주셨어요. 그게 아마 4시쯤 폐장할 때였을 거예요. 해질녘이 되어 불상을 바라보니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답고 멋있는 거예요. 그 불상이 중국과의 무역이 많았던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인데 바닷길로 무역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식으로 조각을 했다고 해요. 불상에 담긴 안녕을 기원하는 따뜻한 마음과 경비 아저씨의 배려와 마침 해질녘인 시간까지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맞물려서 ‘마애여래삼존상’에 대한 기억이 지금까지도 제일 기억에 쨍하게 남아있는 좋은 기억이에요.”
‘국보 투어’에 관한 그의 에피소드를 듣고 있자면 용피디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그 프로젝트를 수행했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그 경험들은 그가 앞으로 만들 영상의 좋은 자양분이 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거침없는 그에게 피디로서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방송PD를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어요. 음식점을 운영할 때 중요한 것은 손님들에게 균등하게 70~80점짜리 음식을 밀리지 않고 내보낼 줄 아는 것이에요. 방송PD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더라고요. 정해진 사이클에 맞춰서 일정 수준 이상의 다음 콘텐츠가 꾸준히 나오도록 하는 능력이 중요해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출연자의 스케줄 변경이나, 촬영하기로 한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던가 사이클이 엉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란 말이죠. 그럼 방송PD는 사이클이 무너지지 않도록 전체적인 촬영 순서를 조정하는 등, 주어진 시간 내에 결정을 빠르게 해야 하죠. 곧 다음 사이클이 돌아오니까요. 이 사이클을 관리하는 능력이 중요하면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대답을 얻기 위해 숱한 어려움과 위기를 겪었을 용피디의 모습이 떠올랐다. 영상을 제작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청자에게 무엇을 보여줄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를 보니 이 대답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보다는 최상의 결과물을 위해 고민하다가 얻은 대답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떤 영상을 만들고 싶냐는 질문에 용피디가 대답했다.
“사람 이야기와 역사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 이야기는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프로그램 <유퀴즈>와 같은 콘셉트처럼요. 그리고 역사 이야기는 사람들이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영상으로 남기고 싶어요.”
그의 모든 활동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이다. 좋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또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가 만든 ‘글로만’ 모임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쓰고 싶다면 작가의 노선을 선택했겠지만, 그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계속 글을 쓰고 싶어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 ‘사람’, ‘관계’는 다른 어떤 것들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느껴졌다. 이것이 아마 그에게 사람 냄새가 나는 이유일 것이다.
“제 창작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습니다. 타인에게 0.1%라도 좋은 방향으로 방향의 전환을 주는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요. 저라는 사람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 더 건강해졌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제 인생은 만족스러운 인생일 것 같습니다.”
영상 제작자, 용피디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그는 단순한 영상 제작가가 아닌 창작가 용피디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영상과 글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같이 재미를 줄 수 있는 창작가. 그의 모든 활동이 앞으로 그가 만들어낼 창작물의 좋은 자양분이 되어 그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길 기대한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아니 꽁꽁 얼어붙은 세상 위로 긍정적인 영향력으로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용피디는 걸어간다.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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