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한 기억은 18살에 시작한다. 큰 키와 큰 눈. 그에 어울리는 큰 웃음소리를 가진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으로 난 12년을 살았고, 12년이 지난 후에 그녀를 다시 만났다. 나의 친구이자 그녀의 친구인 강이 글을 좋아하는 우리를 연결해 주었다. 우연도 아니었고, 필연도 아닌 오묘한 만남에 여전한 그녀의 모습이 신기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나는 그녀가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인 줄 몰랐다. 사실 그때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를 그 정도의 사이였다고 말한다면, 그녀가 섭섭하려나? 그렇다면, 그땐 그녀가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별로 궁금하진 않았던 것 같다는 핑계를 대겠다. 그리고 그때는 궁금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궁금해졌으니 더 좋은 게 아니라도 능청스럽게 말하겠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그녀에 대해 궁금해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오랜만이야. 나는 너를 12년 만에 처음 만났을 때. 한결같다고 생각했어. 왜냐면 여전히 잘 웃고, 감정표현이 커서.
내가? 한결같다고? 나 되게 달라졌어.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내가 웃으려고 노력하고 그러는 게 아니야. 그냥 타고난 기질인 것 같아. 사실 나는 잘 웃어서 곤란한 경우도 되게 많기도 했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웃겨서나 행복해서 웃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웃음=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웃음과 행복은 다른 말이라고 생각해. 나에게 웃음은 나의 하나의 기질이나 습관 같은 느낌?
그러면 스스로 한결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 한결같다고 생각하는 건 없어?
음. 여전히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것?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꿈이 작가였거든. 사실 왜 작가가 꿈이 되었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어. 근데 어릴 때 국어선생님이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한 적이 있거든? 그땐 그래서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줄 알았어.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만. 그래도 그게 시발점이 아니었나 생각해. 뭐, 지금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곤 하지만 끝까지 가봐야지. 그래서 여전히 글은 계속 쓰고 싶어. 계속 쓰고 있기도 하고.
글을 계속해서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쓰고 싶은 글은 어떤 거야?
다양한 글을 쓰고 싶어. 산문도 좋고, 소설도 좋고, 시도 좋고. 바라는 건, 어떤 글이든 내 글에서 독자가 생각을 다르게 봐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어. 아, 글로 한정할 순 없지만, 뻔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그러니까, 글도 그렇고, 사람 자체도 뻔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아.
뻔하지 않은 글?
응.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를 담은 글이야. 물론, 다른 글이 없겠나 싶지만, 비주류의 삶을 담아내는?
결국 사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거네.
맞아. 결국. 나는 글을 쓰는 모든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거든.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쓰는 사람도 결국은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쓴다고 생각해. 나 또한 그렇고. 아, 나의 한결같은 점 중에 여전히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란 것도 있는 것 같아. 아마도 내가 글을 쓰겠다고 하는 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계속해서 있는 사람일 거야.
사람에 대한 애정? 생각해 보니까 예전에도 넌 되게 친구를 좋아했던 것 같아.
사실 지금은 그때만큼 친구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안 맞는 관계에 대해서도 맞추려고 되게 노력하고, 어떻게든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제는 적당히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사는 형태가 달라지니까 관심사도 달라지기도 하고. 글쓰는 이유가 사람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했는데 너무 애정이 없어 보이나?
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그만큼 열정적으로 애정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그래서 그런 관계에 대해서 아쉽거나 슬프지도 않은 것 같기도 해. 그 시기는 그렇게 친구가 중요한 시기였던 거겠지. 나한테.
모두 각자에게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 마지막으로 우리는 글로 (다시) 만난 사이니까, 좋은 글은 뭐라고 생각해?
좋은 글이라.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내가 글을 쓰면서 느끼는 건, 초고보다 수정한 글이 좋고, 한번 수정한 글보다 두 번 수정한 글이 더 좋다고 느껴. 생각해 보면 몇 번이나 글을 고친다는 건 그 글에 그 정도의 애정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하거든. 결국 수정을 거듭할수록 글이 좋아진다고 느끼는 건, 그 정도로 수정할 만큼 작가가 애정을 가진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결국 작가가 애정을 가지는 글이 좋은 글 아닐까?
그녀는 많은 게 달라졌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대답에서 여전히 그때의 그녀가 보이는 듯했다. 여전히 사람을 애정하고, 그 애정을 글로 담아내고 싶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 애정의 형태는 달라졌을지라도, 그녀의 마음속 뿌리 깊은 애정이 보인다. 어쩌면 기억도 그런 거 아닐까? 그녀는 스스로 달라졌다고 말하지만, 나는 한결같다고 느끼는 그런 것. 결국 기억은 추상적이고 개인적이어서 개인의 몫으로 둘 수밖에 없는 것. 결국 난 내가 느낀 한결같은 그녀로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그녀가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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