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를 응원해

11월의 초입에서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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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유학일기

독일에서 보내는 편지 💌

마지막 메일을 쓴지도 석달이 훌쩍 지났다. 뭔가를 꾸준히 못하는 건 여전하다. 언젠가 끝맺음이 있다면 제대로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나는 늘 이런 식이다. 이른바 '잠수'를 탄 지난 삼개월 간 많은 일이 있었다. 독일 대학교에 합격을 했고, 가족들과 프랑스 여행을 다녀왔으며, 교환학생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갔다가 다시 독일에 돌아왔다. 

 

다시 돌아온 독일에서의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벅차고 힘들다. 아침 7시부터 시청 오픈런을 해서 두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주소지 등록을 할 수 있었고, 12월에는 혼자 이사도 하고 비자 인터뷰도 가야한다. 늦깍이 유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는 강박 때문인지,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 있어도 스트레스, 공부를 안 하고 쉬어도 스트레스다. 독일인 친구들은 사서 고생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한심하게 보는 것도 같다. 어제 거실에서 공부하고 있던 내게 플랫 메이트 Saskia가 말했다. "스트레스 받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물론 나도 알지만, 이십대 중반의 한국인으로서 나이 강박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이번주 목요일에는 베를린국제단편영화제에 일하러 간다. 내가 왜 독일에 왔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다시금 깨닫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네트워킹은 여전히 버겁고 기가 빨리지만, 유럽에서 직장을 구하고 살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것을 점점 깨닫는다. 어차피 참여해야 할 네트워킹 파티라면 그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긍정적인 에너지와 건강한 자극을 얻고 오고 싶다. 

 

내가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이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듯, 많은 친구들이 끝맺음을 하고 각자의 새로운 시작을 향해 발돋움하는 게 점차 많이 보인다. 형태는 달라도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궤적을 살아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겉으로는 평안해보여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만의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인의 세계를 더 넓히고자 누구보다 치열하게 투쟁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게 졸업이든, 취업이든, 유학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독일에 온 후로 나는 내가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보면서는 '내가 이 나이에 유학을 왔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는 '내가 이 사람만큼의 어른스러움과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이제 그만 두기로 했다. 나는 내 페이스에 맞게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것뿐이니까. 후회를 한다고 해서 늦은 게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 늦은 건 이미 늦었다. 나는 지금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먼 길을 구불구불 돌아서 왔고, 너무나도 빛나던 이십대 초반의 시간을 꽤나 낭비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믿는다. 바보같은 선택들을 한 것도 나. 뼈아픈 실패에 며칠 밤낮을 울며 지샌 것도 나.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설친 것도 전부 나다. 그땐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냥 나는 그렇게 여러 실패를 직접 해봐야 나한테 맞는 정답이 뭔지를 깨닫는 그런 사람인 거다. 

 

그러니 혹시라도 과거의 나처럼 암흑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믿기지 않겠지만 쨍하고 해 뜰날이 돌아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도. 각자에게 맞는 때라는 게 있고, 맞는 길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실패하면 그건 내 것이 아니었나 보다- 하면 되고, 내 것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잘 되면 좋은 거고, 잘 되지 않더라도 좋은 자양분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각자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진심 가득한 응원을 보낸다.

화이팅!

 

 

독일에서, 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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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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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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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out 1 month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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