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두 차례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보았어요. 아이를 배 속에 품고 낳을 때까지, 내 몸에 있어 매 순간이 조심스럽고 긴장되었지만, 특히 임신 중기에 들어서며 ‘임신성 당뇨’를 검사하던 무렵은 유독 신경이 쓰였어요.
임신 초기에 심한 입덧으로 거의 먹지를 못하다가, 드디어 나아지며 고삐가 풀린 듯 이것저것 먹기 시작했는데,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으면 혈당 조절을 위해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해야 했거든요.
당 대사 장애로 인한 임신성 당뇨가 생기면, 당을 많이 섭취한 아이가 4킬로그램 이상의 거대아로 성장해 분만 상황이 위험해지거나, 양수 양이 많아져 조산할 위험성이 커진다고 해요. 출산 후에도 당뇨병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요.
워낙에도 과자와 초콜릿을 좋아하는 저는 임당 검사를 앞두고 제 발 저리며, 다이어터들이 즐겨 먹는다는 ✅미주라(misura) 통밀 비스켓을 (왕창) 주문해 간식이 먹고 싶을 때마다 까득까득 씹어 삼켰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입 안에 단 걸 잔뜩 밀어 넣고 싶다는 열망은 쉽게 사라지질 않더라고요.
💡 설탕 없는 잼도 잼인가요
✅‘책꼬리’ 코너에서 가장 처음 소개해드렸던 책 『0원으로 사는 삶』에 설탕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0원으로 살기’에 도전하며 자급자족 공동체에서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고된 노동 후 달콤한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몸살을 앓지요. 동료에게 겨우 얻어낸 잼은 설탕을 넣지 않고 만든 잼. 맛이 없어서 슬픈 잼.
자급자족 공동체원들이 설탕을 먹지 않는 까닭은, 물론 자급자족이란 원칙 상 단 것을 직접 생산하기 어려운 면도 있지만, 환경오염 문제, 사탕수수 생산지의 노동 착취와 불공정 무역 문제 등이 얽혀 있기 때문이라 해요. 저한테는 그렇게 거시적인 세계를 보는 눈은 없었지만, 어쨌거나 임신 중인 저와 아기의 몸을 잘 건사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건강하게 출산하기 위해 설탕을 멀리했던 것뿐.
아마 설탕을 경계하는 요즘 사람들의 주요한 이유 또한 ‘건강’일 테지요. ‘zero’가 적힌 다이어트 콜라에 머물러 있던 제로의 세계는 ‘설탕을 빼자’는 대유행을 타고 탄산음료에서 소주로, 과자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 넘쳐나는 것을 끊어내는 힘
불행 중 다행인지 저는 단 것 중에서도 콜라를 비롯한 탄산음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유독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는 주변 사람들을 발견하면 신이 나 놀리곤 했지요. 단 걸 먹으면 안 되지만 단 것을 먹고야 말겠다는 그 놀라운 의지에 감탄하며, 그냥 탄산음료를 안 마시는 의지를 발휘하면 안 될까? 하고 장난을 쳤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각종 커피 음료와 초콜릿, 디저트류를 달고 사는 저에게는 그들을 조롱할 자격이 없었어요. 넘쳐나는 설탕들! 거기에 길들여진 저는 소위 ‘당 충전’을 하지 않으면 오후 시간을 버티기 힘들어하는 중독자였거든요. 세상에 넘쳐나는 온갖 달콤한 음식들. 계속해서 그것들을 원하고 소비하고 먹도록 저는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원하는 무언가가 없어서 직접 생산하고 만들어내는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고, 대신에 무엇을 원한다고 주입당하고 소비하는 시대의 인간들이지요.
넘쳐나는 것이 어디 먹는 것뿐이던가요. 손 안의 스마트폰, 화면을 당기면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 올라오는 SNS 타임라인, 정확한 알고리즘으로 원하는 영상을 계속해서 물고 오는 유튜브…… 멈출 수 없는, 끊어지지 않는 욕망이 그곳에도 있습니다. 잠깐 멈추고 끊어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이미 몸소 알고 있습니다.
💡 열망 없음을 열망하라는 명령
무가당 식음료가 쏟아지는 작금의 제로 열풍은 그래서 더 기의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모두가 제로를 열망하고, 제로가 돈이 된다는 걸 알아차린 기업들이 자꾸만 제로 상품을 쏟아냅니다. 제로를 구입하세요! 탐욕의 끝과 같던 설탕을 버리고, 그러니까 자본주의 열망에 등을 지고, 다시 슈거리스(sugarless)의 삶을 욕망해보라는 기이한 열망의 주입.
우리가 제로에 도달하고자 하는 이유는, 넘쳐버린 욕망을 진정으로 벗어나고 끊어내는 것에 머물지 못합니다. 새로운 욕망을 욕망하게끔 명령을 받고 이행하는 것뿐이지요.
반골 기질이 다분한 저는 제로 열풍에 반기를 들겠노라 다짐해봅니다. 나는 제로를 소비하지 않을 거야, 대신에 넘쳐나는 열망들을 끊어내자, 생산자가 되자, 몸의 주인이 되자……. 그런데 우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쵸코하임부터 모두 먹어 없애자…….라며 슬며시 비굴해지면서요!
2023년 8월 11일
순천에서 민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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