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과일 가격 보시고 놀란 적 있으시죠? 과일 수요가 가장 많은 시기인 설 명절이 한참 지났는데도 과일 가격이 내려오지 않고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과·귤 등 국내생산 과일은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는 가격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파인애플·오렌지 등 수입과일로 눈을 돌리거나 과일 사먹기를 포기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과일 가격이 비싼 이유는
과일 값은 기본적으로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수요가 쏠릴 때 올라요. 요즘 사과가 ‘금사과’라 불리는 이유도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 수분 활동을 하는 꿀벌이 줄고 이상기온과 병충해 피해로 인해 사과 생산량이 30%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과일 유통구조의 문제 또한 과일 값이 비싼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어요. 서울 송파구의 가락시장과 같은 공영도매시장에서 열리는 경매로 과일가격이 결정되는데요, 생산원가나 물류비가 얼마인지를 따져서 가격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최고가를 제시한 중도매인이 과일을 낙찰 받아요. 과일이 소매점으로 건너가 우리 식탁 위에 올 때까지 유통마진이 더 붙죠.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부진은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데, 우리나라는 유통구조의 문제점이 더해져 전세계에서 ‘사과 값이 가장 비싼 나라’로 불리게 되었어요.
‘금사과’ 낳은 농민들은 돈을 벌었을까?
사과 값이 계속 오르면 농민들은 수익을 크게 낼 수 있어서 좋을 것 같은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농민들은 과일을 재배하면 미리 계약한 대형마트에 팔거나, 가락시장과 같은 도매시장에 보내요. 대형마트는 보통 미리 대량으로 과일을 사재기합니다. 대형마트는 자본력을 이용해 과일 값을 후려치는데, 농민은 판매처 확보를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싼 가격에 과일을 넘기기로 계약해요. 그 이후에 과일 값이 폭등하면 그 몫은 대형마트가 갖게 되지 농민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공영도매시장에 과일을 보내면 농민은 아예 가격협상을 할 수 없습니다. 과일을 재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가격이 결정돼요. 농민들이 청과회사(도매시장법인)에 물건을 넘기면 이들이 경매를 진행하면서 과일가격이 결정되고, 농민들은 4~7%의 수수료를 냅니다. 시장에서 20만원에 팔리고 있는 감 한박스를 생산한 농민에게 돌아가는 돈은 6만7천원 가량이었다고 해요. 과일 값이 올라도 농민이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은 거죠. 전문가들은 이렇게 불투명한 가격 결정 구조 때문에 ‘공급량 감소로 가격이 30%가량 올라야 할 때 실제로는 90% 이상 오르는 현상을 겪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불합리한 가격결정 구조 + 불투명한 유통구조
도·소매인은 물류비에 더해 과일이 팔리지 않았을 때의 위험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마진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처음 경매에서 과일 가격이 결정될 때 농민에게 협상권이 전혀 없다는 점은 정말 불합리합니다. 이러한 가격 결정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공영도매시장에 농산물이 들어오면 도매법인이 진행하는 경매로 가격을 정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기 때문이에요. 농민에게 과일을 받은 도매법인은 비싼 값에 팔수록 수수료를 많이 챙길 수 있고, 중도매인은 낮은 가격에 낙찰 받을수록 이익이기 때문에 양자가 견제를 하도록 만든 거예요. 과일을 사가고 싶은 중도매인들끼리 입찰 경쟁을 하면서 공정한 시장가격을 형성하게 된다는 원리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공정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어요.
과일 경매, ‘시장경쟁’ 이뤄지고 있는 거 맞나요?
과일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의 숫자가 적을 때는 2~3명이고, 많을 때는 10명이라고 하는데요, 얼굴을 아는 중도매인끼리 암묵적으로 가격을 담합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요. 과일 경매 수십 건이 모두 낙찰될 때까지 4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는데, 정말 충분한 가격경쟁을 통해 낙찰이 이뤄지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죠. 처음 농민들에게서 과일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농민들이 과일 값을 제대로 방어해주는 곳을 골라 과일 경매를 맡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경매를 진행하는 청과회사(도매법인)들은 수십년 간 독과점을 이어오고 있어요.
덕분에 경매를 진행하는 청과회사들은 ‘특별히 돈 들어갈 데 없이 매년 앉아서 현금을 따박따박 가져가고 있다’고 해요. 서울 가락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5개의 청과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은 2020년 23.9%, 2021년 22.1%에 이릅니다. 동종업체 대비 영업이익률이 6배 이상 높아요. 이 청과회사들이 남기는 영업이익은 대기업에게 배당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시나요? 이들 청과회사의 주인이 호반건설, 고려철강, 아모레퍼시픽家의 장남이 회장으로 있는 태평양개발 등의 대기업이거든요.
수입으로 해결한다?
정부는 이러한 과일 유통 과정의 문제점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보다는 ‘과일 수입’으로 과일 값 폭등에 대처하겠다는 기조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과일 수입으로는 과일 가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해요. 사과의 경우 지금 수입을 시작해도 빨라야 4년 뒤에 들어오거든요. 병해충이 들어오면 우리나라 과일을 다 파묻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기 때문에 8단계의 검사를 거쳐야 해요. 우리가 다시 국산 과일을 식탁 위에서 만날 수 있으려면, 수입을 통해 물량부족만을 해소하려 하기 보다는 가격이 결정되는 유통망의 실태부터 파악하고, 직거래 도매를 확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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