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케이팝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연애 중이라는 기사가 났습니다. 팬들은 실망감을 나타냈고, 카리나의 소속 회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시가 총액이 600억 넘게 빠지기도 했어요. 결국 카리나는 자필 사과문을 올리게 됐죠. 케이팝 아이돌이 열애를 인정하며 ‘공식사과’를 하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연애는 잘못이 아닌데 왜 사과해야 하는 걸까요?
‘유사연애’ 만으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
일각에선 아이돌 산업이 ‘유사연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돌 멤버가 연애사실을 사죄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말해요. 그러나 팬덤 문화를 향유하는 당사자들은 ‘유사연애’에 기반한 해석이 ‘게으른 분석’이라고 지적합니다. 요즘 아이돌 가수와 팬덤의 관계에선 ‘유사 육아’ 가까운 모습도 자주 발견된다고 해요. 팬덤은 음원·음반·영상콘텐츠·굿즈·광고상품 등을 열심히 소비하면서 아이돌 가수의 성과를 만들어주고, 아이돌은 점점 더 실력있고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죠. 팬들은 아이돌을 위해 헌신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의 심정을 느끼기도 하고, 친구나 연인의 마음을 갖기도 하며, 투자자와 같은 태도를 갖기도 합니다. 엔터사에겐 이러한 팬덤과 가수의 관계가 곧 ‘비즈니스 모델’이에요. 그래서 팬들이 아이돌과의 관계에 ‘과몰입’ 하도록 부추겨서 지갑을 열게 만듭니다.
“앨범깡·스밍·영업·키배로 키운 내 가수”
팬들은 아이돌의 음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수십, 수백장씩 앨범을 사고요, 음원 차트의 순위를 올리기 위해 24시간 스트리밍을 해요. 휴대폰 공기계를 구해 ‘스밍’을 돌리는 팬들도 많죠. 아이돌의 매력적인 순간이 담긴 영상을 편집해 SNS나 커뮤니티에서 홍보를 하면서 직접 팬덤을 키우고요, 아이돌과 관련된 안 좋은 게시글이 있으면 직접 설전에 나서거나 법적대응을 위한 자료를 수집해 소속사에 제보합니다. 아이돌 그룹 간의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레이스에서 팬들은 단순히 응원석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멤버들과 함께 ‘2인3각’ 경주를 펼치고 있는 거예요. 팬들은 열심히 레이스를 뛰고 있는데 아이돌 멤버가 ‘연애에 한눈을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실망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만큼 돈 써라’ 노골적 마케팅
팬들이 단순히 아이돌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유사 육아’에 몰입하게 된 걸까요? 팬들이 아이돌에 과몰입하는 이유는 엔터업계의 ‘상술’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엔터사들은 ‘내 가수’를 응원하는 팬들의 심리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뿐만 아니라, 더 자극해서 돈을 벌어요.
‘포카장사’가 대표적인 상술이에요. 하나의 음반을 포장만 바꿔 4~6종의 버전으로 판매하고요, 음반마다 아이돌 멤버의 랜덤 사진(포토카드)를 넣어둬요. 거기다 음반 판매처별로 포토카드나 포스터를 다르게 제공하는 ‘특전’을 만들어서 팬들이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을 모으도록 부추깁니다. 또 실물음반을 많이 구매할수록 아이돌 멤버와의 영상통화나, 팬사인회에 당첨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해서 수백장씩 앨범을 사게 만들죠. 가수와 관련된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굿즈장사’도 합니다. 비싼 가격에 질 낮은 굿즈를 파는 엔터사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내가 응원하는 멤버의 굿즈 판매량을 신경 쓰는 것이 팬들의 마음이에요.
팬들은 시간과 돈을 쓴 만큼 아이돌과의 관계에 더욱 몰입하고 보상심리를 갖게 됩니다. 엔터사가 과도한 상술로 팬들의 지갑을 열수록 아이돌 가수는 기본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겠죠. 이런 문제는 아이돌 가수가 일반인이 쉽게 벌 수 없는 규모의 돈을 번다는 이유로 합리화되고 있고요.
팬들의 과몰입을 부추기는 케이팝 비즈니스가 가진 문제점은 또 있습니다.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는 거예요. 케이팝 아이돌 산업은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과 재활용이 불가한 각종 폐기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케이팝 음반의 80%가 매장에서 버려지고 있고, 매년 수천만장의 앨범이 소각되거나 매립되고 있어요. 이 와중에 엔터사들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연예 기획사의 매출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음반·음원 사업이라고 해요.
아티스트 보호· 환경보호 한다더니…'상술은 못 버려'
팬들의 욕망과 헌신을 ‘소비’로 이끄는 마케팅으로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는 엔터사들은 이 비즈니스 모델을 놓을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대량구매를 한 팬들의 보상심리에 아티스트가 부담과 압박을 받자 엔터사들은 ‘아티스트 보호’를 강조하기 시작했는데요, 시민들은 인격체를 보호하는 게 아닌 그저 ‘상품을 보존하려는 행위’에 그치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기후위기 행동에 목소리를 내고 있는 엔터사들이 여전히 대량구매를 조장하는 마케팅을 놓지 못하는 모습도 기만적이에요. 아직도 케이팝 기획사들은 여러 버전으로 앨범을 내고, 랜덤 구성품을 지급하며, 대량구매 할수록 이벤트 당첨 확률을 높입니다. 포토카드 판매 방식, 이벤트 응모 방식 등 소비를 부추기는 각종 상술들을 바꾸지 않는다면 엔터사들이 외치고 있는 ‘아티스트 보호’와 ‘지구 보호’라는 의제는 모두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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