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노트

Mode, 세상은 무엇으로 드러나는가

3호 · 같은 안경에서 갈라진 선택, 그리고 지워지는 머뭇거림

2026.09.09 | 조회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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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지난주에 소식 두 건이 겹쳤습니다. 하나는 지난 금요일 9월 4일, RayNeo가 iO 스마트 안경의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무게 33그램에 눈높이 밝기 1,300니트, 그리고 광학 투과율 97퍼센트입니다. 회사는 이 안경의 표시된 글자가 “착용자에게는 선명하고 외부 관찰자에게는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8월 26일 Google이 공개한 전사 모델 Gemini 3.5 Transcribe입니다. 이 모델의 첫 번째 기능 항목은 정확도가 아니라 “지능형 전사”이며, 그 설명은 자기 수정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고 “군더더기 표현을 제거하며” 텍스트를 자동 서식화한다는 것입니다.

두 소식은 서로 무관해 보입니다. 하나는 착용 기기이고 하나는 음성 인식 모델입니다. 업계 보도도 각각 다른 지면에서 다뤘습니다. 그런데 두 소식을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 물음이 생깁니다. 올여름에 나온 안경들은 왜 서로 정반대의 길로 갈라졌고, 전사 모델은 왜 정확도보다 다듬기를 앞세웠는가. 답은 이 글의 마지막에서 제시하겠습니다.

이 글은 30회 연재의 세 번째 편이며, M4의 첫 번째 층위인 Mode를 다룹니다. 정의는 하나만 가져오겠습니다. Mode는 특정한 의미 형성 자원의 유형적 범주로서, 인간이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소통하는 표현 방식입니다. 이 한 문장으로 두 소식을 읽어 보겠습니다.

 

1.소식 하나, 같은 안경에서 갈라진 선택

먼저 사실을 정리하겠습니다. 지난 여섯 주 사이에 안경 형태의 기기가 세 갈래로 나왔습니다.

7월 22일 삼성전자가 런던 갤럭시 언팩에서 인텔리전트 아이웨어를 공개했습니다. 5월 19일 구글 I/O에서 디자인 2종을 처음 보인 뒤 기능과 디자인을 추가로 공개한 자리였습니다. 공식 자료가 밝힌 탑재 부품은 카메라와 센서, 마이크, 스피커, 그리고 스냅드래곤 AR1 Gen1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목록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목록에 없는 것입니다. 이 안경에는 디스플레이가 없습니다. 렌즈 안에 화면을 띄우지 않고 음성과 오디오, 그리고 카메라의 시각 인식을 조합합니다. 연내 출시 예정이며 가격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디스플레이를 뺀 이유가 취재로 드러나 있습니다. 설계에서 가장 먼저 정한 값이 무게 상한이었고, 그 상한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가 안경 바깥으로 밀려났습니다. 연산도 밀려났습니다.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일부만 안경에서 처리하고 나머지는 갤럭시 폰이 후처리하며, 폰의 메모리와 그래픽처리장치를 끌어다 씁니다. 삼성전자가 이 제품을 스마트폰의 대체가 아니라 “스마트폰 중심의 AI 경험을 화면 밖으로 확장하는” 웨어러블이라고 규정한 것은 이 구조의 정확한 요약입니다.

8월 26일에는 실제 판매가 붙었습니다. Meta와 에실로룩소티카가 일본에서 Meta Glasses를 발매했습니다. 색과 렌즈와 프레임 조합으로 26종이며 시작가는 5만 600엔, 도수 렌즈에도 대응합니다. 이 제품도 렌즈 안에 디스플레이가 없습니다. Meta의 일본 공식 비교표는 이 계열을 “렌즈 내 디스플레이 없음”으로 명시하고, 그 옆 칼럼에 “오른쪽 렌즈에 풀컬러 디스플레이 내장”이라고 적힌 다른 계열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같은 회사가 디스플레이를 뺀 제품과 넣은 제품을 같은 표에서 동시에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9월 4일 RayNeo가 iO를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의 두 제품과 방향이 반대입니다. 촬영이나 오락을 앞세우지 않고 표시 기능 하나로 초점을 좁혔습니다. 0.085세제곱센티미터 크기의 단색 녹색 표시 엔진에 회절 도파관을 얹어 시야에 글자만 띄우며, 광학 투과율은 97퍼센트, 눈높이 밝기는 1,300니트, 무게는 33그램입니다. 회사가 붙인 이름은 “보이지 않는 종일 도파관 디스플레이”입니다. 표시된 글자가 착용자에게는 선명하고 외부 관찰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회의가 끝나면 실행 항목을 뽑아 일정 갱신을 제안하고, 착용자는 고개를 끄덕여 확정합니다.

세 제품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같은 안경이라는 형태에서 두 회사는 시야에 글자를 띄우지 않기로 했고 한 회사는 띄우기로 했습니다.

 

2.업계 서술의 결함, 안경은 Mode가 아닙니다

세 제품을 묶어 보도하는 통상적인 문장은 이렇습니다. 스마트폰의 시대가 저물고 안경의 시대가 온다, 시각 정보의 방식이 바뀐다, 새로운 감각 양식이 등장한다.

앞의 사실을 보고 나면 이 문장들이 왜 성립하지 않는지 바로 드러납니다. 세 제품 가운데 둘은 시각 표시를 아예 넣지 않았습니다. 시각 정보의 방식이 바뀐다는 서술이 절반 이상의 사례에서 어긋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례 수가 아닙니다. 문장 자체가 층위를 섞고 있습니다.

이론서의 구분은 명확합니다. 매체는 메시지나 콘텐츠를 담고 전달하는 물질적, 기술적 수단입니다. 책, 신문, 라디오, TV, 스마트폰, 웹페이지, VR 헤드셋이 모두 매체에 해당합니다. 반면 Mode는 그 매체 위에서 구현되는 기호적 자원입니다. 그러므로 안경도, 화면도, 스마트폰도 Mode가 아닙니다. 전부 매체입니다.

Mode는 매체에 내재한 가능성과 한계를 실제 의미 형성 과정에서 활성화하는 표현 양식의 선택지입니다. 이 문장이 이번 사건을 읽는 열쇠입니다. 매체가 바뀔 때 벌어지는 일은 Mode 목록의 교체가 아닙니다. 그 매체가 활성화할 수 있는 선택지의 재배치입니다. 시각적 Mode는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새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 질문에 답할 때만 사건 분석이 됩니다.

 

3.무엇이 갈렸고 무엇이 밀려났는가

Mode는 특정 문화와 사회적 맥락에서 제도화되며 역사적 변화 속에서 재배치됩니다. 재배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늘어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리와 비중이 바뀝니다.

다만 이 원리를 사건에 그대로 얹으면 논증이 되지 않습니다. 정의에서 사건을 끌어내면 어떤 사건이든 그 정의에 맞게 서술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근거를 이론이 아니라 관찰에서 가져오겠습니다.

관찰 사실은 이것입니다. 같은 안경이라는 형태 안에서 표현 양식의 배분이 정반대로 갈렸습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반대 결과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 제품이 모두 시야에 글자를 띄웠다면, 안경이라는 형태가 시각적 표시를 요구한다고 볼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렸습니다. 그러므로 형태가 표현 양식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결정하는 것은 그 형태 위에서 무엇을 활성화할지에 관한 판단입니다.

그 판단이 어떻게 내려졌는지도 드러나 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가장 먼저 정해진 값은 표현 방식이 아니라 무게였습니다. 무게 상한이 정해지자 디스플레이와 연산이 차례로 밀려났습니다. 즉 물질적 제약이 먼저 정해지고 그것이 활성화 가능한 표현 양식의 범위를 잘랐습니다. 이론서에서 Medium을 두고 표현 양식과 정서 태도의 가능태를 결정한다고 말한 대목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무게는 착용 기기의 조건이며 그 조건이 선택지의 상한을 정했습니다.

밀려난 자리를 무엇이 채웠는지 보십시오. 삼성전자와 Meta는 시각적 표시를 포기한 대신 음성과 청각에 걸었습니다. 통역과 길 안내와 알림 요약이 모두 귀와 입으로 처리됩니다. 시야는 카메라가 보는 대상으로만 쓰이고 착용자에게 돌려주는 출력은 소리입니다. 이것은 손실이 아니라 이동입니다.

RayNeo의 선택에서는 다른 것이 밀려났습니다. 고개를 숙여 기기를 보는 동작은 지금까지 주위 사람에게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지금 다른 일에 주의를 쓰고 있다는 지표적 기호였습니다. 이론서는 몸짓과 자세를 신체적 Mode로 다루면서 Mode가 공간을 매개로 인간 행동을 조율하는 사회적 장치라고 서술합니다. 표시된 글자를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설계한 것은 착용자의 편의를 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그 지표를 없애는 선택입니다. 시각적 표시를 넣은 쪽에서 밀려난 것은 다른 감각이 아니라 주위 사람의 판단 근거입니다.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일정 갱신을 제안받은 착용자가 고개를 끄덕여 확정하는 절차를 보십시오. 끄덕임은 원래 사람 사이에서 동의를 전하는 신체적 Mode였습니다. 이것이 기계에 대한 확인 입력으로 배치되면 같은 동작이 두 수신자를 갖게 됩니다. 회의 상대가 보는 끄덕임과 기기가 읽는 끄덕임은 같은 몸짓입니다. 구분 장치가 없다면 오독이 생기고, 구분 장치를 만들면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몸짓 하나가 규격화됩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늘어난 것은 시각적 Mode가 아니고 줄어든 것은 촉각적 Mode가 아닙니다. 갈린 것은 착용 기기가 착용자에게 무엇으로 말을 걸지에 관한 배분이고, 밀려난 것은 그 대화가 진행 중임을 주위가 알아볼 수 있는 지표입니다.





「같은 매체, 갈라진 배분」. 안경이라는 하나의 매체에서 세 제품의 표현 양식 배분이 갈라진 구조. 제품 사양 근거는 삼성전자 뉴스룸, Meta 일본 공식 제품 비교표, RayNeo 보도자료. 필자 작성, 2026-09-07.
「같은 매체, 갈라진 배분」. 안경이라는 하나의 매체에서 세 제품의 표현 양식 배분이 갈라진 구조. 제품 사양 근거는 삼성전자 뉴스룸, Meta 일본 공식 제품 비교표, RayNeo 보도자료. 필자 작성, 2026-09-07.

4.소식 둘, 군더더기를 지우는 전사 모델

두 번째 소식으로 넘어갑니다.

Google도 같은 8월 26일에 전사 모델 Gemini 3.5 Transcribe를 공개했습니다. 이 모델은 85개 이상의 언어를 자동 감지해 전사하며, 사전 녹음 음원에서 최대 3인의 발화를 단어 단위 시각 정보와 함께 구분합니다. 정확도는 실시간 처리에서 단어 오류율 4.0퍼센트, 비실시간 처리에서 2.6퍼센트라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문장은 정확도 수치가 아닙니다. Google이 이 모델의 성격을 요약한 문장입니다. 이 모델은 “원음을 정확하고 다듬어진 서식화된 텍스트로 곧바로 변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듬어진, 이 한 단어가 이번 호의 핵심입니다.

무엇을 다듬는가. 회사가 직접 예를 들었습니다. 자기 수정을 처리한다면서 든 예는 화요일에 만나자고 했다가 곧바로 아니 수요일이라고 고치는 발화입니다. 그리고 “음”과 “아” 같은 군더더기 표현을 제거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이 기능은 유용합니다. 회의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기능일 것입니다. 다만 이번 호의 관심은 유용성이 아닙니다.

 

5.변환에서 무엇이 의미로 남고 무엇이 잡음이 되는가

이론서는 Mode의 작동 방식을 이렇게 서술합니다. Mode는 감각적 입력을 특정한 기호적, 문화적 틀 속에서 가공하고 배치함으로써 단순한 자극을 해석 가능한 지식과 정서와 상징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Mode는 수동적 정보 전달 채널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경험 세계를 구성하는 실천적 장치라고 덧붙입니다.

가공과 배치라는 말에 주목해 주십시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정하는 일이 바로 그 가공입니다. 그리고 그 판정 기준은 Mode마다 다릅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붙이는 서술입니다. 버려지는 쪽을 부를 이름이 필요하므로 잡음이라고 쓰겠습니다. 이론서의 용어가 아니라 이 글의 편의상 어휘입니다.

음성 Mode에서 머뭇거림은 의미입니다. 확신이 없다는 정보이거나, 곤란한 사안이라는 정보이거나,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중이라는 정보입니다. 반복은 강조일 수 있고 침묵은 거절일 수 있습니다. 대화 상대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읽습니다. 텍스트 Mode에서는 같은 요소가 다르게 분류됩니다. 문자로 옮긴 머뭇거림은 읽기를 방해하는 잡음으로 취급되어 회의록에서 지워집니다.

여기까지는 새롭지 않습니다. Mode 간 변환에서 손실이 생긴다는 것은 오래된 관찰입니다. 이번 사건이 새로운 지점은 다른 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판정은 옮겨 적는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무엇을 지울지 그 자리에서 결정했고, 결정에 책임이 따랐습니다. 회의록 작성자가 어떤 발언의 머뭇거림을 지워서 문제가 되었다면 그것은 작성자의 판단 문제였습니다.

이제 그 판정 규칙이 모델에 미리 심겨서 출하됩니다. 어떤 것이 군더더기인지가 제품 사양으로 정해집니다. 사용자는 그 판정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판정 결과를 받는 사람이 됩니다.

층위를 정확히 갈라 두겠습니다. 이 판정 규칙이 누구 손에 있는지는 Mode 층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론서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숨길지 결정하는 권한이 알고리즘 쪽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Medium의 권력성으로 다루며, 그때 전통적인 편집자와 큐레이터의 역할이 대체된다고 서술합니다. 즉 권한의 소재는 Medium 층위에서 다룰 문제입니다. Mode 층위에서 읽어야 할 것은 그 결과입니다. 그 권한이 옮겨간 뒤에 표현 양식들 사이의 위계가 어떻게 재편되는가입니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습니다. Google은 이 모델이 “자연스러운 말하기 방식을 포착해 의도를 더 잘 이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자연스러운 말하기 방식을 포착한다는 목표와 군더더기를 제거한다는 기능은 같은 문서 안에 나란히 있습니다. 머뭇거림은 자연스러운 말하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긴장이 봉합된 방식은 이렇습니다. 자연스러움은 의도를 추론하는 입력으로 쓰이고, 출력에서는 제거됩니다.

이론서에는 이 대목에 붙일 문장이 있습니다. AI는 문화적 맥락을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정서적 의도를 가지지 않고 패턴 인식을 통해 확률적으로 유사한 Mode를 재현할 뿐이며, 그러므로 AI가 하는 일은 Mode의 생산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군더더기 판정은 통계적 판정입니다. 다수의 자료에서 지워도 무방했던 요소가 군더더기로 분류됩니다. 문제는 그 다수 안에 들지 않는 발화입니다. 말이 자주 끊기는 사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말하는 사람, 감정이 격한 자리에서 말하는 사람의 머뭇거림은 통계적으로는 군더더기이지만 그 상황에서는 정보의 핵심입니다.



「판정의 자리가 옮겨간 지점」. 음성에서 텍스트로 옮길 때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판정이 사용 시점에서 출하 시점으로 이동한 구조. 근거는 Google 전사 모델 공개 자료. 필자 작성, 2026-09-07.
「판정의 자리가 옮겨간 지점」. 음성에서 텍스트로 옮길 때 무엇을 남길지 정하는 판정이 사용 시점에서 출하 시점으로 이동한 구조. 근거는 Google 전사 모델 공개 자료. 필자 작성, 2026-09-07.

6.두 소식이 겹치는 자리

이제 처음의 물음으로 돌아갑니다. 안경과 전사 모델은 어디에서 만나는가.

두 사건이 같은 종류라고 말하려면 먼저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기준 없이 둘을 묶으면 닮았다는 인상을 근거로 닮았다고 말하는 것에 그칩니다. 그래서 기준을 셋 세우겠습니다. 첫째, 무엇을 표현 양식으로 쓸지 정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둘째, 그 결정이 언제 내려지는가. 셋째, 사용자가 그 결정의 내용을 사후에 확인할 수 있는가.

안경 쪽에 대보겠습니다. 표시를 소리로 할지 글자로 할지 정한 주체는 제조사입니다. 결정 시점은 사용 시점이 아니라 설계 시점이며, 삼성전자의 경우 무게 상한을 정한 그 순간입니다. 그리고 착용자는 자기 안경에서 어떤 표현 양식이 배제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가 없다는 사실은 눈에 보입니다. 세 번째 기준에서 안경은 통과합니다.

전사 모델 쪽에 대보겠습니다. 무엇을 군더더기로 볼지 정한 주체는 모델을 만든 쪽입니다. 결정 시점은 사용 시점이 아니라 출하 시점입니다. 여기까지는 같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기준에서 갈립니다. 사용자는 자기 발화에서 무엇이 지워졌는지 결과물만 보고는 알 수 없습니다. 지워진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건은 앞의 두 기준에서 같고 세 번째 기준에서 다릅니다. 이 차이가 두 사건을 하나로 뭉개지 않게 해 줍니다. 공통점은 표현 양식의 기본값이 사용 이전에 정해진다는 것이고, 차이점은 그 기본값을 사용자가 알아볼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후자가 더 다루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다룰 자리는 이론서 안에 이미 있습니다. 이론서는 Mode가 단순히 의미 전달의 기술적 선택지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다고 서술합니다. 어떤 Mode가 합법적인 지식 전달 방식으로 인정되고 어떤 Mode가 덜 진지한 표현으로 간주되는지는 역사적, 제도적 맥락에 따라 달라지며, Mode 선택에는 가치판단과 문화적 위계와 제도적 관습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론서는 디지털 시대에 들어 시각적 데이터 시각화와 인포그래픽이 전문적 내용 전달에 쓰이면서 Mode 사이의 위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이번 사건은 그 재편이 일어나는 장소가 바뀌었음을 보여 줍니다. 위계 재편은 원래 오랜 시간에 걸친 사회적 합의로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표현 양식이 진지한 것으로 인정받는지가 논쟁과 관행을 통해 정해졌습니다. 이번 두 사건에서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은 무게 상한과 기본 설정입니다. 논쟁이 있었던 자리에 설계 결정이 들어왔습니다.

한 가지를 덧붙이겠습니다. 여기까지의 분석은 Mode 층위에서만 이루어진 것이고, 그래서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남습니다. 기본값이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착용자와 사용자가 어떤 조건과 태도로 그 경험에 들어가는지는 Mode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론서는 Modal을 무한히 열린 해석의 흐름을 특정한 사회적, 기술적 맥락 안으로 수렴시키는 해석의 제동장치로 규정합니다. 다음 층위에서 다룰 문제입니다.

 

닫는 말과 다음 회차의 질문

이 글의 제목은 세상이 무엇으로 드러나는가였습니다. 이번 호의 답은 이렇습니다. 세상은 표현 양식을 통해 드러나지만, 그 표현 양식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이미 골라져 있습니다. 안경이 소리로 말을 걸지 글자로 말을 걸지는 무게 상한이 정해진 날 결정되었고, 우리 말에서 무엇이 남을지는 모델이 출하된 날 결정되었습니다. 드러남의 방식이 사용 이전에 정해져 있다는 것, 이번 호에서 확인한 것은 그것입니다.

덧붙여 두 가지를 확인했습니다. 하나는 매체의 변화를 Mode의 변화로 옮겨 적는 서술이 왜 부정확한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Mode 간 변환에서 무엇을 잡음으로 버릴지 정하는 판정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가 왜 중요한 문제인지입니다.

다음 호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기본값이 이미 정해진 환경에서 사용자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설정 화면의 항목을 늘리는 것으로 이 문제가 다뤄지는지, 아니면 해석의 제동장치라는 다른 층위의 문제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삼성전자 뉴스룸, 「삼성전자, 인텔리전트 아이웨어 공개」, 2026-07-22. https://news.samsung.com/kr/삼성전자-인텔리전트-아이웨어-공개 (확인 2026-09-07)

매일경제, 「삼성 첫 스마트안경, 무게는 덜고 AI는 더했다」, 무게 상한과 연산 분산 및 디스플레이 미탑재 관련. https://www.mk.co.kr/news/it/11374000 (확인 2026-09-07)

Meta, 「Meta Glassesを8月26日より日本で販売開始」, 2026-08-26. https://about.fb.com/ja/news/2026/08/meta-glasses-japan/ (확인 2026-09-07)

ITmedia, 「Meta Glasses 일본 발매, 5만 600엔부터」, 2026-08-26. https://www.itmedia.co.jp/news/articles/2608/26/news110.html (확인 2026-09-07)

Meta 일본 공식 제품 비교표, 렌즈 내 디스플레이 유무 표기. https://www.meta.com/jp/ (확인 2026-09-07)

RayNeo, 「RayNeo Expands Consumer AR Lineup」, 2026-08-21 발표, 판매 개시 2026-09-04. https://www.prnewswire.com/news-releases/rayneo-expands-consumer-ar-lineup-302585000.html (확인 2026-09-07)

Google, 「Intelligent transcription with Gemini 3.5 Transcribe」, 2026-08-26. https://blog.google/innovation-and-ai/models-and-research/gemini-models/gemini-3-5-transcribe/ (확인 2026-09-07)

Kress, G. (2010). Multimodality: A Social Semiotic Approach to Contemporary Communication. Routledge.

Kress, G., & van Leeuwen, T. (2001). Multimodal Discourse. Arnold.

McLuhan, M. (1964). Understanding Media. McGraw-Hill.

서준호 (2027 예정). 『모드, 모달, 모달리티, 미디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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