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를 시작하기에 앞서, 넋두리부터 해보고자 합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위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다보니 속마음부터 공개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이 파트 없이 그냥, '다 아는듯' 떠들어댄다면 기만적인 행동일겁니다.
'멋있어 보이는 말'을 늘어놓을 바에야 그냥 잘 아는 주제로 한 회차를 채우는 게 서로 이익일거예요. 그럼 넋두리부터 시작.
-
사실 저는, 어렸을 때 부터 '똘똘하다'라는 평가나 이미지 프레임 안에 항상 갇혀 있는 편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똘똘함'이라는 것이 참 애매한, 수치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이잖아요. 친가만 해도요. 사촌중에 저보다 압도적으로 똑똑한 사람들이 널렸습니다. 의사도 있고, 대한항공 기장도 있고, 서울대 로스쿨 나온 변호사도 있고. 아슬아슬하게 대학에 들어간 저를 압도하는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뭔가 똘똘하다'라는 이미지는 항상 제가 챙겨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항상 은밀하게 즐겨오곤 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이미지를 이용해서, '정공법은 아니지만 -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나름 수도 없이 고안해봤었고, (수학 과외가 아닌, 수학 저항감 과외 코스를 열어서 - 카이스트 대학생들과의 과외 경쟁에서 승리한다거나) 지금은 이를 아예 강의화시켜서 인사이트 강의라는 것도 만들어서 팔아먹고 있잖아요. 더 나아가, '팔아먹는 과정 속에서의 고군분투'를 Moist Notes라는 이름으로 영업하고 있고요.
그런데 몇년 전. 그동안 은밀하게 즐겨왔던 저 이미지 때문에 많이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 딴에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는건데 - '뭐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반응이 돌아온다거나. 그냥 괜히 앓는소리하는 느낌으로 치부한다거나. '너는 그래도 이러이러한 고민은 없잖아'라는 식으로 제 고민을 튕겨낸다거나. '똘똘한 애'라고 규정되는 순간, 저를 이해해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제가, '기능이 아닌 사람으로 인지되어야만 한다'라고 수없이 강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언젠가부터, '촉마' 콘텐츠에 속마음을 많이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나름의 고민도 그냥 다 넣어버리고. '사실 이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돈 벌려고 하는 것 맞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해버린다거나. '이건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못 하겠다'라고 한다거나. 그건 몰라서 못한다거나. 어찌보면 브랜딩에서 금기시되는 것들을 모두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가장 최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도, '돈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저항감/죄책감'을 이야기했잖아요. 같은 맥락입니다.)
왜 이런 긴 넋두리로 레터를 시작하냐면요. 제가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이, 어찌보면 조금 피상적으로 - 뻔해보이는 - 그렇기에 흘려듣게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어서 그렇습니다. 적당히 쓴 글이 아니라, 제 진심을 담았습니다.
얼마나 진심인지를 어필할 수 있는, '외로움'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사실,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사고방식이 저와 다른 파트가 바로 보이긴 했어요. 바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이라는 파트인데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울 것 같아서, '어떤 단추를 가장 먼저 채워야만 하는가'라는 생각에 시작하지 못한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등산을 떠올려봅시다. 등산로가 A~E. 총 다섯개가 있네요. 하나를 고릅니다. 열심히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등산로를 골랐네요. A로 갔어야 하는데, C로 왔습니다. 다시 내려갔다가 올라갈바에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상대경쟁 상황이었다면, 처음부터 제대로 A를 고른 사람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지기도 하고요. '해봤자 안돼' 라는 사고방식이 나를 지배합니다.
그런데요. 저는 1인기업, 퍼스널브랜딩.. 이를 뭐라고 부르던간에 등산과는 많이 다르다고 봅니다. 애초에 저런, 결정하면 끝인 분야가 아니고요. 'A~E'까지의 능력치-경험치를 모으는 여정이라고 보는거거든요. 드래곤볼 이야기를 다들 아시지요? 몰라도 됩니다. 그냥 볼 7개를 다 모으면 용이 나와서 소원을 들어주는 컨셉입니다. 그리고, 볼을 모으는 순서는 상관이 없어요.
그간 제 콘텐츠를 열심히 읽어보신 분들은 제가 강조하는 '볼'들이 어느정도 기억나실겁니다.
1. 강점이 아닌, 컨셉 자체의 신선함을 떠올려내는 능력(꼭 매번 떠올려 낼 수 있는 능력치는 아니더라도, 컨셉 자체가 강점인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한다는 의미.)
2. 1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능력. (마술 비유를 여러번 했지요. 신기한 잔기술 마술을 배운 상황. 이를 친구들에게 보여준다고 하면, 누군가는 자연스레 보여주고 환호를 이끌어내지만, 다른 누군가는 '정확히 언제 보여줘야 하지. 말투는? 목소리 크기는? 표정은? 친구의 반응별 넥스트 스탭은?' 식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는 이야기.)
3. 한두가지 주제로, 글이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 글감 하나 = 글 하나. 상황은 한달 내로 번아웃이 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같은 글감, 비슷한 이야기일지라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4. 돈을 받는 능력. 이에 대한 저항감을 낮추기. '돈 내세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능력.
5. 나라는 사람, 혹은 내 콘텐츠가 여기저기서 자발적으로 이야기되도록 만드는 방법. 해당 분위기의 전제조건. 이를 유도하는 방법들. (제 강제 글쓰기 사이트가 공유되는 것을 떠올려보시면 될 것 같아요. 심리테스트라거나.)
이 외에도 이런저런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단 여정을 시작하다보면 이런 '볼'들을 하나씩 얻게 된다고 믿어요. 혹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볼은 무엇이고 - 내게 없는 볼은 무엇이구나. 라는 것을 인지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때, 여행의 다음 목적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나는 4번은 이미 갖추고 있네? 그런데 2번을 정말 못하는구나. 그러면 2번을 훈련해야겠다. 식으로요.
그리고 위의 문장은, 일단 여정을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이것이 제 답입니다. 특정 커리큘럼, 루트가 있어서 그 경로를 밟는게 아니라, 모아야만 하는 능력치들이 있는데 - 이를 하나하나 모아가는 여정이 퍼스널브랜딩이며, 그렇기에 '첫 단추를 잘못 끼운다'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믿어요. '색이 다른 단추 7개를 모으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
다시 말해,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저는.
의견을 남겨주세요
토리마티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낭만어부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