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당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말하지 마세요.

#19. 용서하고야 말 것들에 대해서는 굳이.

2024.05.10 | 조회 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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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매주 작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내게 당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이름도 필요하지 않고요, 나이는 정말로 쓸모 없어요.

대신에 당신이 길 위에 비둘기를 무서워 하진 않는지, 카페에서 케이크와 음료가 있으면 무엇에 먼저 손이 가는지, 고민이 있을 땐 어느 번째 손가락을 물어 뜯는지 말해주세요. 그러니까 나는 당신의 배경 말고 내용이 궁금합니다. 

배역을 사랑하는 것과 배우를 사랑하는 것은 다르데요. 나는 이를테면 내 애인 혹은 내 친구라는 배역에 걸맞는 캐스팅을 찾고 있었겠지만, 당신을 알게 된 이후에는 어떤 배역이든 좋으니 당신을 내 삶에 욱여 넣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수많은 배역을 맡으며 뱉은 대사 말고, 당신이 대사를 뱉으며 깊게 새겨진 양쪽이 조금 다른 입가의 주름이나, 어느 배역을 소화하든 보이는 비슷한 손짓, 이런 것들을 말해주세요. 연기로는 숨길 수 없는 당신의 새어 나오는 모습, 새겨진 흔적, 깊게 밴 냄새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게 되면 용서하고야 말 것들은 말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난 당신이 버리지 못하는, 당신이 되어 버린 것들을 사랑하고, 당신의 주변을 용서합니다. 


추신 / 글

우리는 사랑이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착각하지만, 잘못이라 생각하는 일들이 애초에 그저 내 사랑이 만든 허상이라는 것을 압니다.  사실 그들의 것 중에 용서해야 할 일은 없다는 것도요. 그저 전부 그들을 사랑하기 위한 나의 준비일 뿐입니다.  원래라면 모든 일은 준비하고 시작하기 마련이지만, 제게 사랑은 그러고 싶지 않은 유일한 일입니다. 나는 먼저 사랑하고, 뒤에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난 우선 알아버린 그들의 울퉁불퉁한 손톱같은 사랑스러운 버릇들에 빠져버린지 오랩니다. 내게 사랑은 준비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추신 / 그림

세상에 완벽한 사랑이 있을까요? 완전한 사랑이 있다면 그건 어떤 형태일까요? 저는 누군갈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만 나에게 오는 게 아니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나에게 찾아오는.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품을 때 불순물 없이 가장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 사랑은 하얀색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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