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윤동규 41주차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2023.12.24 | 조회 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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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윤동규

한 주간 쌓인 쓰레기들을 공유합니다

Part 1


0.
슬럼프라 하기에도 부끄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뭔가 유명한 소설 속 첫 문장 어쩌구 같군요. 최소한 슬럼프라면, 열심히 하는데 안 되는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의욕을 상실하는 것 또한 포함이지만, 제 경우엔 열심히 하지 않을 궁리만 하고 있습니다. 변명거리야 있어요. 늘 최선을 다하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정도의 작업, 지속 가능한 수준의 일에만 손을 대고 있습니다. 가성비는 점점 정도를 넘어서 날강도에 이르렀습니다. 노력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콘텐츠가 인기 있었으면 해! 노력을 안 하는데 어떻게 인기가 있어? 몰라, 지금까지는 그렇게 되던데?

1.
결국 나를 망치는건 쉽게 이뤄낸 성공이다. 이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모두 없던 것으로 하고, 어렵게 이뤄낸 성공을 향해 노력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더이상 최선을 다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조막만한 아이디어와 헐떡이며 따라가기 급급한 하찮은 기술로 성공해야 합니다. 예전에는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성공한다를 믿고 달렸다면, 지금은 나는 그냥 재능이 있어서 대충 해도 성공한다를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나는 재능이 없어요, 그걸 가장 잘 아는게 나입니다. 그러니 답답할 수 밖에요. 그때의 난 그저 얻어 걸린 것 뿐인데, 머리에 총을 겨누며 똑같이 해봐라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안돼, 돌아가. 성공시켜 줄 생각 없어.

2.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로워합니다. 저는 이 괴로워하다, 라는 마음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일종의 죄책감이며 자기 혐오, 그리고 안일하게 살았던 날들에 대한 후회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좀 더 일찍부터 이러한 작업을 쌓아가지 않았나. 왜 그 많은 시간을 무한도전 다시보기나 정글 럼블, 자위 따위에다 쏟아부었나. 그런 기분이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나는 비록 게으르지만, 그렇다고 병상에 누워 임종을 기다리는 노인은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법을 잊어버렸을 뿐, 무언가를 만드는 재미와 사람들의 환호에 벅차오르는 기분은 여전히 어딘가에 품고 있습니다. 그거면 됐지 않습니까? 일단 영화에 총이 나오면 언젠가는 쏘게 되어 있습니다. 

3.
그러니 저는, 이런 글을 쓰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게으름을 받아들이고. 몰락을 이해하며, 재기를 꿈꿉니다. 최선을 다하거나, 시간을 쏟아붓지 않아도. 어떤 다른 묘수나 편법, 요행을 바라며.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길을 찾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내일 게으르기 위해 오늘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이해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겠지만, 그것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나는 이게 몹시나 재미있습니다. 

 

Part 2


이상하게 집착하게 되는 물건이 몇 개 있다. 사용 빈도는 낮고, 대체할 수 있는 싼 제품은 얼마든지 있으며,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예쁜줄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인 제품들. 뭐 커터칼, 샤프, 드라이버나 줄자 같은 것들인데, 어쩌다가 이런 제품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는가? 결국은 전문직에 대한 존경이 그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누구나 커터칼을 쓰고, 누구나 줄자를 쓴다. 하지만 그 앞에 <업계 사람들이 쓰는>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저 그런, 아무런 가치 없는 다이소에서 팔 것 같은 물건이 한순간에 헤리티지를 가진 역사의 산 증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업계에서 쓰는걸 내가 쓴다고 단숨에 뭔가 달라지거나 근사해지지 않는다. 중요한건 내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일 뿐이다. 아이돌이든 락 밴드든 뮤지컬 배우든, 누군가를 덕질하는 사람은 쉽게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덕질하는 사람이 특정 음료수만 마신다면, 그게 무슨 아침햇살이라 하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괜히 근사하고 멋있고, 그와 같은 음료를 마시는건 한 발자국 더 가까워 진 듯 한 기분이 든다. 나는 그것을 덕질하는 대상이 아닌 전문직 종사자를 예로 드는 것 뿐이고. <타지마 줄자>의 경우엔 건축이나 인테리어, 더 넓게는 도배나 공사장 배테랑 십장들을 떠올리며 구매했다. 특히나 현장에 대한 동경이 있는데, 모르긴 몰라도 안전모 쓰고 현장에서 실측하고 다니는 선생님들을 멋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건 일종의 굳즈가 아닌가? 뭐 영 틀린 얘기는 아닌 듯 싶다. 아직도 탁자나 벽면의 길이를 잴 때엔 어김없이 타지마 줄자를 이용하고 있고, 분실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남은 인생, 다른 줄자를 사용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이게 생각보다 꽤 짜릿하다. 말하자면 <도구의 졸업>인 셈. 이 몇 안되는 짧디 짧은 삶에서 '아, 이건 내가 졸업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게 몇이나 있겠나. 줄자의 타지마. 그리고 한참을 쥐어 짜내봤지만, 두번째 예시는 떠오르지 않는다. 별 생각 없이 찍었지만, 새삼 참 근사한 물건이다.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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