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일정을 빠르게 끝내고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한달음에 넘어왔다. 누나는 벌써 피렌체 학교에 적응을 다한것인지 친구들과 돌로미티로 여행을 갔다 했고, 그렇다면 나혼자 이탈리아 피렌체를 즐길 생각에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구시가지의 선이 굵은 적붉은색 벽돌이 트램에서 내리는 여행자들을 환영하고 환대를 받은 그들은 중심가에 있는 새하얀 두오모 성당을 향해 자연스럽게 개미처럼 행군한다. 나 또한 그 행렬에 끼어들어 여행자 느낌을 한껏 취하다가 골목길 아치형 모양의 아파트 현관을 넘어서면 그토록 고대하던 둘째의 집이 보인다. 복도는 등이 없어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그림자가 방문자를 환영해주고, 대부분 구시가지 건물들은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보니 쿰쿰한 곰팡이내와 함께 세월의 때가 건물 이곳저곳을 데코레이션 처럼 수놓았다. 평범한 집이지만 3층에서 바라보는 피렌체의 주황빛 톤과 시끄럽게 오고가는 외국어를 들으며 여행자를 관찰할수 있는 마음편한 공간을 무료로 사용할수 있다는건 큰 행운이자 축복이다.
우리 가족들과 강한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는지, 나의 베니스를 시작으로 누나의 정착, 그리고 로마서 어머니의 마지막 영면까지 모든게 이 역사의 땅에서 이루어졌고 그덕에 나는 그 어느 국가보다 가장 친숙하고 마음의 안식처같은 장소가 됐다. 이곳에서는 공부가 아닌 글을, 뜀박질 보단 대리석에 앉아 독서를 하는 이방인을 바라보는게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하며 나또한 베키오 다리를 바라볼수 있는 한적한곳에 주저앉아 이렇게 글을 쓴다.
얼마만인가, 이렇게 아무 생각을 하지않고 글을 쓸수 있다는게. 업무적인 성과 스트레스와 수면장애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여기서는 온몸을 녹아내릴 정도로 쉴수 있겟다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