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주를 마셨다. 그동안 음주를 안한건 아니지만 쉽고 빠르게 분위기에 취하는 주종이라 그런지, 마음에 내킬때가 아니라면 소주를 멀리하고 있던 터였다.
너는 내게 앞으로 어떤 연애를 하고 싶냐라고 물었고, 나는 깊은 고민을 하다 천천히 입을땟다. 더 이상 상대방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랑이 아닌, 적당한 거리의 연애만 하고싶다 라고. 과거가 없는 사람처럼 용감하게 뛰어들고 싶지만 이전 연애의 교훈은 내 뒤를 남한테 맡겨서도 안되고 누구나 자신의 입장을 무기로 상대방을 난도질하니 더이상 기대도, 미련도 사라졌다 말했다.
고작 그런 사람때문에 그럴 필요가 있을까? 라고 말하던 너. 몇달전이었으면 고작이란 단어에 참지않았겠지만 이제는 잠잠하다. 고요한 호수 표면장력에 아무 충격을 주지 못하는것처럼. 손가락으로 검은 테이블을 툭툭 치며 잠깐 생각의 방으로 들어가 저 말을 되새기는데, 생각해보면 이젠 떠나간 이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도 없으며, 비슷한 연애를 또 한번 할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지닐 이유도 없다. 너의 말처럼 나는 또 다시 용기있게 사람에게 다가가면 그만인거고, 고작 그런 사람과의 과거로 인하여 내 행동을 제약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어렴풋이 눈치챈건 장례식 이후다. 빈소에 찾아오지 않았던 그 사람을 동생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생각한다는걸. 그때부터 동생은 너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흘렸고, 우리는 낯선 만남을 조우했다. 어색했고 나의 굳은 마음은 매끄럽지 않은 대화를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먼저 연락이, 호의가 계속 됐다. 자극적인 대화나 나를 새로운 방향으로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더 차분하게 감사할줄 아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제는 뻣뻣하고 딱딱한 마음을 열로 녹아내어 다가오는 사람을 굳이 막으려 하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반대로 나를 떠나간 사람이 준 완벽한 이별을, 완전한 이별을 받아들이며 그 어떤 미련도, 감정도 없이 연락처를 차단하며 몇년간의 관계를 드디어 종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