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inions on everything. Apologies for no one.

*2주 연속.. 금요일 대신 토요일 오전에 찾아와봅니다. 👀 다음 주는 과연..?!

날씨가 부쩍 따뜻해졌어요. 여전히 마스크는 써야하지만, 가벼워진 겉옷과 함께 들뜨는 마음이 공기에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지는 시절입니다. 제 직장이 있는 뚝섬, 서울숲도 부쩍 유동 인구가 늘었어요. 얼른 밥만 먹고 들어가야 하는 겨울이 아니라, 맛있는 차를 사러 조금 멀더라도 걸어갈 수 있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저녁에는 미식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 서울숲에서 봄밤을 만끽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고요.

과거에 만난 적이 있는 날씨를 다시 마주치는 느낌, 구독자님도 느껴본 적 있으시죠? 예를 들면 왠지 밤에는 아주 쌀쌀한 바람이 불 것 같은, 하지만 낮은 텁텁하고 따뜻한 날이면 저는 꽃이 흐드러지게 핀 중간고사 시즌의 학교가 떠올라요. 아주 높고 새파란 하늘과 찬 바람이 부는 초봄에는, 출장 가서 일만 하느라 항상 반수면 + 반몸살 상태로 다녔던 마운틴 뷰가 떠오릅니다.

저는 5년 전에 휴직을 하고 10월부터 12월까지 세 달 간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다녔던 곳들이 특히 봄, 가을에 생각이 많이 나요. 12월 초에는 이태리에 있었는데 서울의 가을과 겨울 사이 갸울 정도 날씨여서, 밤에도 걷기가 좋았거든요. 밤에 같이 걸어줄 사람들만 있으면 항상 나가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태리에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은 밀라노였어요. 밀라노는 이태리 북부에서 가장 큰 도시고, 시내 인구가 로마 다음으로 많다 정도만 알고 도착을 했는데, 오랜만에 보는 진-짜 큰 도시더라고요. 아마 그 직전에 중부의 소도시들에 머물다 가서 더 그러기도 했겠지만 중앙역도 크고, 트램도 다니고, 대성당 근처의 아케이드도 규모가 어마어마 하게 느껴졌습니다.

밀라노에서는 호스텔에서 묵었는데요. 그 호스텔은 저녁마다 아페리티보를 운영해서 숙박객 말고 그냥 동네 청년들도 많았습니다. 숙박객들만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 있었는데, 저를 각별히 챙겨주던 호스텔 스탭 덕에 저도 밤마다 그 테이블에 끼어 앉아 재밌는 얘기를 많이 들었죠.

그 중에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는 하룻밤이 있는데요. 그 날 따라 멤버 조합이 잘 되어서(?) '저기 어디 클럽 많은 동네가 있다는데 한 군데 다녀오자!'라는 여론이 형성되었습니다. '안전'의 차원에서, 이 그룹을 시비 붙이기 어려운 그룹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외모와 인종의 남자애들이 같이 있었고, 저랑 한창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있던 여자애들도 간대고, 자기가 안내하겠다고 하는 이탈리안도 있어서 저도 따라 나섰어요. (우선 클럽은 그냥 그랬습니다..!)

이 날 제가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순간은 뭐냐면요. 길을 잘못 들어서 여덟 명 쯤 되는 인원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한참 걸었던 시간이에요. 저는 인도계 미국인인 남자애랑 걷고 있었는데, 걔도 이태리를 쭉 여행한 참이라 어느 동네에서 뭐 봤는지를 얘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애가 이야기하는 중에 아주 명백한 팩트를 틀리게 말했어요.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라는 말을 했는데 제가 야 그거 미켈란젤로야 하고 싶은 마음에 No! 부터 외쳤어요.

그리고 깨달은 것은 제가 여행하는 3개월 동안 No란 말을 거의 안 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No, 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최대한 그냥 이해해보려고 하거나, 돌려 돌려 말했거든요. 혼자 들어간 레스토랑에 자리도 많은데 굳이 제일 구석에 저를 앉힐때도, 피곤해 죽겠는데 방 배정은 안 하고 다른 숙박객이랑 떠들고 있는 직원을 봐도, 자꾸 서울에 대해 이상한 자기 주장을 하는 무례한 애들에게도 말이죠. 그래서 미안하지만(?) 그 애한테 No를 외쳤을 때 통쾌함 비스무리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냥 말 고쳐준 걸로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암튼 그 맥락이 있었어요. 혼자 3개월, 즐거웠지만 항상 긴장한 채로 길을 걸었던 시간 동안 No 한 번 할 수 없었던 저에 대한 맥락이요!

공식 트레일러에 함께 나오는 문구인데요,

아마도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Pretend It's a City>의 프랜 리보위츠에 대한 설명일 거에요. 모든 것에 의견이 있고, 아무에게도 사과하지 않는 사람. 프랜 리보위츠는 1950년대 생으로, 뉴욕에 살며 작가, 비평가로 오래 활동해 왔고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마틴 스코시지 감독과 절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도시인처럼>은 언짢은(가끔은 욕하기 직전인) 표정의 프랜 리보위츠가 뉴욕 어느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 그녀의 강연, 다양한 주제에 대한 그녀의 인터뷰가 담긴 다큐멘터리에요.

프랜 리보위츠는 거침이 없고, 단호하고, 위트있는, Sarcasm의 왕처럼 보입니다. (마틴 스코시지는 그런 프랜의 거의 모든 말에 깔깔깔로 화답하는 분으로 나오고요.) 뉴욕의 미니어처 모델('Panorama of the City of New York') 사이를 걸으면서, 또 뉴욕의 플레이어스 클럽 테이블에 앉아서 프랜 리보위츠는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야기가 문화 예술, 대중교통, 돈, 건강하게 사는 것, 나이를 먹는 것,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루는 동안, 프랜 리보위츠와 마틴 스코시지가 기억하는 뉴욕의 장면들과 과거의 시간이 덧입혀져요.

<도시인처럼>을 보면서 수많은 프랜 리보위츠의 말을 받아적어서 뼈에 새기고(...) 싶었는데요. 그 중 하나입니다. 제 마음에는 오래 있었는데 적확한 말로 꺼내지 못한 생각이 이 말을 보는 순간 너무 명료해졌어요. 겉은 지구 반대편 뉴욕에 대한 '부머 세대의' 이야기지만, 속은 어느 시대의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어쩐지 황소윤님 인터뷰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보는 내내 프랜 리보위츠의 모습이 내가 미래에 되고 싶은 어른의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단한 자기 의견과 확신이 있는, 그와 동시에 이해와 애정이 있는 어른. 프랜 리보위츠의 신랄한 No와 쯔쯔로 시작해서 마틴 스코시지의 웃음소리에 적응할 때까지, 한 편에 30분, 딱 7편이랍니다. 🌃

인스타그램 @__ofcl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