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구독자님, 1999년 가을 미국에서 방영된 애플 광고 한 편이 있어요. 탱크들이 컴퓨터 한 대를 에워싸고, 나레이션이 흘러요. "역사상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가 미국 정부에 의해 무기로 분류되었습니다." 초당 10억 회 연산을 돌파한 파워 매킨토시 G4 이야기예요. 당시엔 냉전 시대 법률에 걸린 해프닝 정도로 끝났어요.
27년이 지난 지난주 금요일,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일이 벌어졌어요. 미국 상무장관이 Anthropic CEO에게 서한 한 통을 보냈고, 몇 시간 뒤 세계 최강 AI 모델 Fable 5가 전 세계에서 동시에 꺼졌어요. 이번엔 해프닝이 아니에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AI 모델이 반도체와 같은 국가안보 자산으로 취급받는 시대가 열렸어요.
🔴 72시간의 기록, 출시에서 차단까지
6월 9일, Anthropic은 자사 최강 모델 Fable 5와 Mythos 5를 공개했어요. Fable 5는 Anthropic의 가장 강력한 Mythos 계열 모델을 일반 사용자에게 처음 공개한 버전이에요. 사이버보안 등 고위험 영역에서는 응답을 제한하는 보호장치를 탑재했고, 이 보호장치가 일부 해제된 Mythos 5는 검증된 소수 기관에만 제공됐어요.
출시 하루 만인 6월 10일, 연구자들이 시스템 카드에서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발견했어요. 사용자가 프론티어급 AI 개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모델이 별도 고지 없이 스스로 성능을 제한한다는 거였어요. 반발이 거셌고, Anthropic은 이틀 만에 이 조치를 철회했어요.
그리고 6월 12일 금요일 오후 5시 21분(미 동부시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서한이 도착했어요. 내용은 명확했어요. Fable 5와 Mythos 5에 대한 모든 외국인의 접근을 즉시 차단하라. 미국 내 거주 여부와 무관하게, Anthropic 소속 외국 국적 직원까지 포함하는 조치였어요.
문제는 실행이었어요. Anthropic은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국적을 검증할 수 없었어요.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어요. 전 세계 모든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하는 것. 금요일 아침까지 수억 명이 쓸 수 있었던 모델이, 금요일 밤에는 아무도 쓸 수 없게 됐어요.
Anthropic은 이의를 제기했어요. 정부가 제시한 탈옥[1] 방법은 이미 다른 공개 모델(OpenAI의 GPT-5.5 포함)에서도 가능한 사소한 취약점이며, 수억 명이 사용하는 상용 모델을 이 정도 근거로 회수하는 건 부당하다는 입장이에요. 출시 전 미국 정부, 영국 AI 안전 연구소, 서드파티 조직이 수천 시간의 레드팀[2] 테스트를 수행했고, 모든 보호장치를 무력화하는 범용 탈옥은 발견되지 않았다고도 강조했어요. 하지만 법적 지침인 이상 따를 수밖에 없었고, 두 모델은 현재까지 비활성화 상태예요. Claude Code나 Claude에서 Fable 5를 호출하면 이전 세대 모델인 Opus 4.8이 대신 응답하는 상황이에요. Fable 5 API 위에 서비스를 구축한 기업들은 하룻밤 사이에 인프라 전환을 강제당한 셈이에요.
🔑 1999년 맥 vs 2026년 AI — 무엇이 달라졌나
1999년 파워 매킨토시 G4 사례를 조금 더 들여다볼게요. G4에 탑재된 PowerPC 프로세서는 초당 10억 회 이상의 부동소수점 연산, 즉 1 기가플롭[3]을 돌파했어요. 당시 미국 수출관리법(1979년 제정)은 이 수준 이상의 컴퓨터를 '국가의 군사적 잠재력에 기여할 수 있는 기술'로 분류하고 수출을 통제했어요.
스티브 잡스는 이걸 오히려 마케팅으로 뒤집었어요. "Personal Supercomputer"라는 브랜딩을 붙이고, 탱크가 컴퓨터를 에워싸는 광고를 만들었어요. 광고 마지막 멘트가 걸작이에요. "펜티엄 PC에 대해서는, 뭐, 해로울 게 없죠." 실제로 클린턴 행정부는 이미 기가플롭 임계치를 상향하기로 결정한 상태였고, 2000년 1월 시행과 함께 수출통제는 약 4개월 만에 해제됐어요.
그런데 2026년의 Fable 5 사태는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첫째, 통제의 속도. 1999년에는 수출 심사에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렸어요. 2026년에는 서한 한 통이 도착한 뒤 수 시간 만에 전 세계 동시 차단이 이루어졌어요. 하드웨어는 국경에서 막지만, 소프트웨어는 API 한 줄로 막아요.
둘째, 통제의 성격. 1999년은 냉전 시대 기준선에 우연히 걸린 기술적 과도기의 부산물이었어요. 이미 상향이 예정되어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로비와 마케팅을 동시에 굴릴 여유가 있었어요. 2026년은 의도적이고 표적화된 조치예요. 상무장관이 직접 서한을 보냈고, 해제 시점은 미정이에요.
셋째, 통제의 범위. G4는 특정 국가(중국 본토 등)로의 수출이 제한됐어요. Fable 5는 전 세계 모든 외국인이 대상이에요. 미국 내 거주 외국인과 Anthropic 자사 외국 국적 직원까지 포함돼요. 실질적으로 미국 시민권자만 쓸 수 있는 모델이 된 거예요.
Fortune 기사에서 사이버보안 연구자 Peter Girnus가 남긴 말이 이 상황을 정확히 짚어요. 자기 제품을 보도자료마다 '군수품'이라고 묘사하면, 결국 정부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거예요. Anthropic이 Mythos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보호장치의 필요성을 역설할수록, 정부 입장에서는 보호장치가 뚫렸다는 보고에 즉각 반응할 근거가 생긴 셈이에요.
미국 정부가 실시간으로 배포 중인 상용 AI 모델에 수출통제를 적용해 강제 종료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반도체는 물리적 수출을 막았지만, AI 모델은 원격으로 '꺼버렸어요'. 통제의 대상이 원자(atoms)에서 비트(bits)로, 국경에서 API로 옮겨간 거예요. 레딧등에서는 나중에 Fable 5를 사용하기 위해선 사회 보장 번호(SSN, Social Security Number)는 미국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9자리 식별 번호를 입력하고 써야하는거 아니냐라는 말도 나오고 있어요.
🌏 소버린 AI, 구호에서 생존 전략으로
이 사건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건 유럽 정치인들이었어요.
각주
- [1] 탈옥(Jailbreak): AI 모델의 안전장치를 우회해 원래 차단된 응답을 이끌어내는 기법이에요. 특정 프롬프트 조합을 사용해 보호장치를 무력화하는 것을 뜻해요.
- [2] 레드팀(Red Team):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격자 역할을 수행하는 보안 테스트 팀이에요. AI 모델에서는 모델의 보호장치를 뚫으려는 시도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는 전문가 그룹을 말해요.
- [3] 기가플롭(GFLOP): 초당 10억 회의 부동소수점 연산 능력을 뜻하는 단위예요. 1999년에는 슈퍼컴퓨터급 성능이었지만, 오늘날 아이폰 15 Pro는 약 2,000 기가플롭을 처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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