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닙니다’ 이후로 최근 가장 핫하게
SNS에서 회자되는 펭귄이 있습니다. 바로 허무주의(니힐리스트) 펭귄이었죠.
펭귄 한 마리가 무리를 이탈해서 눈앞에 있는 '설산'으로 돌진합니다.
왜?
글쎄요. 펭귄의 깊은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 다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죠.
펭귄의 본능은 바다입니다.
하지만 이 펭귄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닫힌 괄호'를 찢고 설산으로 향합니다.
설산은 펭귄에게 죽음의 공간일 수도, 무의미한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펭귄이 그곳을 향해 걷는 순간, 설산은 불가해한 가능성의 영토가 됩니다.
수만 마리의 펭귄이 바다(생존)를 향할 때, 홀로 수직의 설산을 향해 ‘뒤똥뒤똥’
걸어가면서 ‘내 알빠노? 기’를 시전하는 그 뒷모습은 동시대인를 살아가는
알파 세대의 망탈리테를 뒤흔들기에 충분했습니다.
니체는 "인간은 짐승과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라고 했습니다.
무리를 이탈한 펭귄은 짐승의 본능-무리에 섞여 안주함-을 버리고, 자기만의 북극점(설
산)을 향해 나아가는 주체적 의지를 증명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펭귄에게서
시스템의 명령에 "알빠노?"를 시전하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요?
'알빠노' : 닫힌 결말에 대한 주권 선언
'알빠노'는 시스템이 정해둔 정답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선언입니다.
그게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인데?라고 되물으면서 타인이 설계한 시간표(크로노스) 속으로
편입되지 않겠다는 ‘주체적 선긋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타인의 시선이나 미래의 불안에 저당 잡히지 않고, 오직 내가 몰입하는
찰나의 가치(카이로스)만을 긍정하는 것이죠.
'알빠노'라는 쿨내나는 냉소 뒤에는 "나는 오직 내가 의미를 부여한 것에만
내 괄호를 열겠다"는 지독한 주체성이 숨어 있습니다.
눈이 녹으면 그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셰익스피어가 묻자
허무주의 펭귄은 답합니다.
알빠노? ㅅㄱ
흰빛이고 자시고, 눈이 녹기 전에 설산으로 돌진해버리는
이 대책 없는 시대 정신에 오늘도 빠..빠져듭니다. (짜릿해. 늘 새로워)
세상의 닫힌 괄호를 깨부수는 전복적 상상력.
가장 품격 있는 병맛의 일갈. 알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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