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줍게의 쓰줍레터
2025. 3. 10.
Vol. 1
'새롭게 시작합니다'
LETTER
쓰줍레터를 새롭게 시작하며
안녕하세요, 쓰줍게입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아마도 월요일 아침, 가장 먼저 읽으실 글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긴장이 됩니다. 무엇보다,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쓰줍레터를 이렇게나 발 빠르게 구독해주신 점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것을 기대하면서 구독 버튼을 눌러주셨을지, 소중한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고요. 복잡한 생각들이 엉켜 이 편지를 쓰는 지금에 이른 것 같습니다.
쓰줍레터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24년 1월입니다. 활동 1년을 맞은 쓰줍게가 정기적인 아카이빙을 위해 만든 작은 매체였죠. 부족한 시작이었지만 많은 분께서 함께해 주셨습니다. 가끔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전해주시던 응원도 하나하나 간직하고 있어요. 새 시즌을 시작하며 플랫폼을 옮겼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해야 했기에 약간의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저희는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구독해주신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쓰줍레터는 2주에 한 번, 월요일 오전에 여러분을 찾아갈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여정에서 저희의 활동, 다양한 콘텐츠 큐레이션, 에세이 등을 실어보낼 예정인데요. 가볍게 읽어주시고, 한 주를 시작하는데 미약한 힘이 된다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이제 시작해보겠습니다!
ARCHIVE
쓰줍게가 주운 쓰레기
이전까지 쓰줍레터를 구독하신 분들이라면 저희의 활동에 이미 익숙하실 텐데요. 다만 오늘은 첫 번째 레터인만큼, 저희에 대해 약간의 추가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쓰줍게는 '쓰레기 줍는 계정'의 줄임말로 시작된 인스타그램 계정입니다. 길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며 조깅을 하는 '플로깅plogging'을 하고, 사진을 공유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활동을 시작하던 2023년은 로스쿨에 다니고 있던 때였지만, 현재는 멤버 모두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각자 직업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모든 사진들은 퇴근 후 저녁이나 주말 시간을 이용해 쓰레기를 주운 결과입니다.
최근에는 멤버 모두가 정신 없이 바빴습니다. 제 이야기를 드려보자면, 업무에 치이다보니 퇴근 시간이 되면 모든 에너지가 빠져버렸지요. 집에 오면 바로 침대에 드러눕기 일쑤였습니다. 무기력하고 힘이 도통 나질 않았어요. 자연히 쓰줍을 하러 나갈 생각은 저 아득히 멀어져만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몸을 이끌고 쓰줍을 나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3월 7일, 마지막 쓰줍이 2월 21일이었으니 정말 간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곳 근처에는 유독 페트병이나 테이크아웃 컵과 같은 재활용 쓰레기가 많은데요. 너무 춥지 않은 날이면 간단히 외투를 챙겨입고 산책 겸 쓰줍을 하곤 했습니다. 특히 이곳은 바다 근처인지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쓰줍을 하다보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았지요. 마침 날이 따뜻해지고 있어 부담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개인이 쓰레기를 줍는 시간은 무기력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매번 비슷한 산책 코스를 돌지만, 주운 것이 무색하게 다시금 쓰레기로 채워져있는 거리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애써 만든 거리의 깨끗함도 잠시뿐이라는 사실에 실망하기도 하지요. 다시 원래대로 더러워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행위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걸지,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줍는 행위가 의미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다시 더러워질 것이기에, 계속 줍는 일이 의미를 가지는 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거리에선 언제나 쓰레기가 기본값인 세상이니까요.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쓰줍게를 시작하기 전의 저 역시 언젠가 잠깐의 편리를 위해 길에 쓰레기를 버린 적이 한 번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럽지만 진실로 그랬을 것입니다.
더러워지면 치우고, 다시 더러워지면 치우는 일을 반복하며, 언제까지 똑같이 쓰레기가 생기는지 보자,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일종의 오기랄까요. 로스쿨 때도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담배꽁초로 가득한 빌라촌 근처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다시 올 때는 꽁초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꽁초들은 버러졌고, 그럼에도 계속해서 주웠지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조금은 버려지는 꽁초가 줄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비슷한 마음인가 봅니다.
그러니까 반성하는 마음 반, 계속하는 마음 반인 것 같습니다. 신중하지 못했던 날들만큼 많이 줍자는 마음, 더럽힌만큼 깨끗이 만들자는 마음, 저번에 주웠으니 이번에도 주워보려는 마음, 미약하더라도 계속 가보려는 마음. 그렇다고 반성문 쓰듯 죄책감만을 가지며 쓰레기를 줍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모든 것들이 스스로에게 일종의 사명감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지면 안 되니까요. 저는 여전히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쓰줍에 나갈 것입니다. 오늘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기분 좋게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CURATION
쓰줍게가 모은 콘텐츠
가끔 우리가 한 일들이 정말 별거 아니라고, 사실은 그렇게까지 어렵게 끙끙대며 일구어낸 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작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용기내"라는 말이나 "다회용기"라는 말이 일상용어처럼 쓰이는 걸 보면 가끔 너무 신기하고 가슴이 막 콩닥콩닥거립니다. 어쩌면 얼스어스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 것 같아서요.
'용기 있게 얼스어스', 119쪽
서촌동, 연남동에 위치한 '얼스어스'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제로웨이스트 카페 중 한 곳입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카페의 본질을 살리면서, 방문객들에게 고유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표 길현희 님은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던 2017년부터 카페를 운영해오며, 제로웨이스트라는 문화를 널리 알리셨는데요.
'용기 있게 얼스어스'는 길현희 님이 그간의 여정을 고스란히 글로 풀어낸 첫 에세이입니다. 원래부터 얼스어스를 알고 있던터라, 출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얼마 전 읽어보았어요. 제로웨이스트에 관한 인사이트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언가 한 가지를 지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쓰줍게도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는 입장에서 얻어갈 부분이 많았어요. 꼭 환경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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