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줍게의 쓰줍레터
2025. 3. 24.
Vol. 2
'쓰레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上'
LETTER
봄을 기다리며
안녕하세요, 쓰줍게입니다. 봄이 오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는 날씨입니다. 약간의 꽃샘추위만 더 지나보내면 정말 따뜻한 날들이 찾아올 것 같아요.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게 느껴집니다. 뉴스레터를 리뉴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다음 편을 보내드릴 때가 되었다는 사실도 말이죠.
오늘도 레터에서 여러분을 위해 읽기 좋은 글들을 준비했습니다. 쓰줍게가 모아둔 환경 인터뷰 콘텐츠와 함께, 쓰레기를 주우며 생각한 이야기들을 에세이로 보내드립니다. 최근 활발하진 않았지만 쓰줍게가 참여한 일들도 공유해드려요. 메일과 함께 따뜻한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CURATION
쓰줍게가 모은 콘텐츠
‘Don’t buy this jacket’은 뒤에 숨겨진 영리한 전략 같은 게 없었어요. 그냥 그 문장 그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재킷을 구입하기 전에는 두 번 생각하길 바랐고, 만약 구입한다면 평생 보증이 되고, 망가지면 수선할 수 있고, 수명이 다하면 재활용될 수 있는 제품을 사라는 솔직한 메시지였던 거예요.
이본 쉬나드, 파타고니아 창업자 인터뷰
친환경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patagonia’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의 인터뷰입니다. 파타고니아는 가장 홍보에 열을 올려야 할 블랙 프라이데이에, “이 자켓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이라는 파격적인 광고를 선보였죠.
이 기사에서는 파타고니아를 포함해, 그린워싱이 아닌 ‘진짜 친환경’을 보여주는 해외 브랜드 3가지를 다루고 있어요. 지속 가능성과 럭셔리 패션을 감탄스럽게 조화시킨 가브리엘라 허스트Gabriela Hearst, 윤리적 생산을 내세우면서도 그린워싱을 극도로 경계한 신발 브랜드 베자VEJA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마침 쓰줍게에서도 과거 그린워싱과 진정성에 관한 고민을 에세이로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비슷한 생각을 해보신 분이시라면 즐겁게 읽어보실 수 있을 듯 합니다.
ESSAY
쓰레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上
버려지는 쓰레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의 마지막 일과는 항상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다. 밤이 되면 방에 남은 쓰레기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고, 분리배출할 재활용 쓰레기는 다른 한 곳에 담는다. 우선 단단히 묶은 종량제 봉투를 내다 버린 후, 10분 정도를 걸어서 분리수거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상자에 담은 재활용 쓰레기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적절한 곳에 분리 배출한다.
쓰레기는 일상이 지나간 흔적이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하루를 떠올리는 일에 다름 없다. 그 날의 쓰레기에는 그 날의 일과가 담겨 있다. 밤마다 쓰레기를 담고, 묶고, 분리하고, 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하루를 돌아보게 된다. 다 쓴 노트를 버리면서 지나보낸 고민들을 떠올리고, 못 쓰게 된 옷을 버리면서 그 옷을 입고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챙겨둔 영수증 종이 뭉치들을 버리면서 내가 소비한 것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어떤 쓰레기는 잊고 있던 이야기를 기억으로 불러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미뤄둔 집 대청소를 했다. 가구들을 밀어가며 바닥의 먼지를 닦다보면, 벽 틈으로 밀려 들어간 쓰레기들을 발견하게 된다. 언제 떨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오래 방치된 쓰레기들. 그 날 내 눈에 띈 것은, 좋아하는 스킨 케어 브랜드의 숍에서 받아와서 썼던 샘플 봉투였다. 문득 그 가게를 찾았던 날이 떠올랐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와 서로의 피부 타입 따위를 얘기하며 신나게 제품을 골랐던 기억들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버린다는 건 떠나보내는 것이다. 쓰레기란 일종의 물성을 가진 기억이다. 그래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은 하나의 기억을, 이야기를 떠나보내는 일이다.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며 작별인사를 고하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 이야기를, 다음 하루를, 다음 쓰레기를 맞이할 준비를 이어가야 한다.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우리의 일상을 매듭짓는 일이라면, 우리는 분명하게 그것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잘 매듭짓는 것은 잘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제대로 매듭지어야만 비로소 새로운 실을 손에 잡을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매일 쓰레기를 버리는 일과는 지나간 하루에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기도 하다. 꼼꼼히 방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잘 버리기만 해도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그건 내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다는 감각이다.
버려지는 쓰레기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가 쌓이면 한 사람의 삶이 된다. 그래서 쓰레기는 누군가 고유하게 살아가고 있는 삶의 조각들이 된다. 눈물과 땀방울과 손기름이 묻어난 그 사람만의 흔적들. 내가 해야할 일은 그 조각들을 조심히 주워담아, 돌아가야 할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그건 나를 지나쳐가는 작은 이야기들조차 소홀히 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깨끗해진 방보다 좋았던 건,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서던 그 짧은 순간의 고요함 속에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내 이야기를 성심껏 돌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다. 보내주어야 할 이야기가 남았다.
ARCHIVE
쓰줍게가 주운 쓰레기
3월 23일에는 포항시 동해면에서 쓰줍을 했습니다. 집 근처를 산책하며 밤에 쓰레기를 줍는 것은 저만의 작은 루틴이에요.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시간이 나면 산책 겸 쓰줍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날은 테이크아웃 컵들을 주워보자는 생각으로 나가, 평소에 잘 가지 않던 개천 근처까지 걸어가 플로깅을 하고 왔어요.
한편, 지지배(@zlzlbae.official) 멤버들과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라 미국의 환경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참여자들이 각자 언론과 연구자료를 통하여 트럼프 정부의 환경정책 분석과 예측 등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이번 스터디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은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이 되었습니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이해하면서도 미국의 장기적인 기후대응 정책은 발전해왔다는 사실과 미국 정치 내에서 작동하는 저항선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언론에서 헤드라인으로만 볼 때만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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