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1] 🌻 여름의 한가운데를 노래로 기억한다면?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언제 이렇게 7월과 하반기가 성큼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영국에서 부치는 레터를 쓴 지 정확히 3주가 흐른 지금 저는 발리에 있습니다. 이곳 기후는 적도 근방이면서도 건기여서 습도가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역시 K-습도는 어지간한 동남아 날씨를 상회하는군요. 한국의 일기예보를 찾아볼 때마다 어떻게 또 이 계절을 보내야 할까 아득해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작년에도, 그 이전 해에도 비슷한 걱정을 하면서도 어찌저찌 잘 나긴 했지만요!

발리에서 저는 일주일 넘게 우붓이라는 작은 동네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식당과 카페, 길가가 모두 정글로 둘러싸인 곳이에요. 눈앞의 풍경을 볼 때마다 지극히 이국적이라고 느끼는 한편 초록으로 가득한, 지극히 여름의 압축판 같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느낀 느긋한 마음을 일상의 여름에서도 재생하고 싶다고 자주 다짐하면서요.

그래서 오늘 소개할 세 곡은, 돌아갈 일상에서도 휴가지의 기분을 곱씹을 수 있는 곡으로 골랐습니다. 여행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기념품도 좋지만 그곳의 조명, 온도, 습도를 단번에 떠올릴 만한 무드의 노래를 정해보는 일도 좋은 것 같아요. 여러분의 올해 여름은 어떤 노래로 기억하게 될까요? 7월 초라면 여름의 한가운데라 할 수 있으니, 지금의 타이밍쯤 떠올려봐도 괜찮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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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S - 땡볕

홀로 떠나는 해외여행은 처음이라 준비하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 중 하나는 다소 적적하지 않을까 하는 것. 다행히 요가의 성지로 유명한 발리에서 크고 작은 요가원을 드나들며 매트에 땀을 쏟고, 길을 찾고, 하루 세 끼를 고민하다 보니 너무 바빠 심심할 틈이 없었다. 사방의 창문이 정글을 향해 탁 트인 공간에서 요가를 하던 순간은 이 여행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CHS는 2018년 데뷔한 우리나라 밴드다. 작년 크고 작은 페스티벌의 오프닝 타임에 이들의 이름을 자주 목격했다. 아무려면 석양이 무르익을 무렵에 어울리는 노래가 많아 시간대가 아쉽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가사 없이 나른하게 이어지는 연주곡인 <땡볕>은 땀에 젖은 채 사바사나 자세로 매트에 누운 상태를 빗대기에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 또한. (사족: 레터를 쓰기 위해 이들의 최근 활동을 훑어보다, 2021년에 발리에서 작업한 노래를 모아 스페셜 앨범을 발매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내가 발리에서 하필 그들을 떠올린 게 우연은 아니었어!)

🌻 황인경 - 늙은 개의 여행

인도네시아어로 ‘잘란잘란’이라는 표현이 있다. ‘잘란’은 길, ‘잘란잘란’은 산책하다 내지는 어슬렁거리다 정도의 뜻이라고 한다. 발리 여행 카페를 보면 ‘잘란잘란하러 발리에 왔다’는 식의 글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대단한 장관을 보기 위한 여행이라기보다 그저 어슬렁거리기 위해, 낯선 기후와 땅을 딛는 자체로 그곳만의 에너지를 누리겠다는 의지처럼 보였다.

나 역시 일주일이 넘게 한 동네만을 머물며 ‘잘란잘란’에 충실했다. 목적지를 향한 바쁜 걸음이기보다 느긋하게, 아무 데서나 엎드려 자는 큰 개와 오래된 사원에 시선을 던지며 그저 천천히. 마음이 느릿해지니 더운 날씨인데도 카페에 가면 뜨거운 커피를 골랐다. 바삐 식혀야 할 마음도, 열기도 없었으니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이 여유를 다시 떠올릴 수 있을까? 딱히 자신은 없지만 이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비슷한 기분을 채울 순 있을 것 같다. 황인경의 목소리는 여름을 대표하는 밴드 전기뱀장어의 보컬답게 보송하고 산뜻하다. 그가 쓰고 부르는 여름 노래를 나는 언제까지고 환영할 것이다.

🌻 Japanese Breakfast - Diving Woman

땡볕을 피해 그늘로 숨을 수는 있지만 여름 장마의 습기는 뾰족한 방법을 찾기 어렵다. 목적지로 순간이동을 하지 않는 이상 현관을 나서자마자 부시시하게 피어오르는 머리카락, 종아리까지 축축해지는 하의, 우산을 간수하느라 덩달아 축축해지는 상의... 나는 비 오는 날에 꽤 타격을 받는 편인데, 발리에 머물며 우산 없이 우비를 쓰고 폭우 속을 걸은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때 느낀 신묘한 자유가 지금도 생생하다. 단지 나는 빗방울에 한 톨도 젖지 않기 위해 기를 쓰느라 비 오는 날이 싫었던 건가?

물론 여행지에서 반짝 느낀 자유의 낭만을 일상에 그대로 적용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다시 숨이 턱끝까지 차게 초조해지는 날이면 온몸으로 비를 맞던 날의 마음을 떠올려보자고 다짐해봤다. 꽉 쥐고 있던 실 하나를 놓는 일만으로, 긴장한 마음 한 가닥을 내려놓는 행위만으로 마음의 평화가 해일처럼 몰아칠지도 모른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는 작년 이맘쯤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공연을 보고 알게 됐다(벌써 1년 전이라니!). 한국계 미국인인 미셸 자우너의 1인 밴드로, <Diving Woman>은 그녀의 두 번째 앨범에 실렸다. 과하지 않은 전자음이 몽환적인 목소리와 어우러져 상쾌한 느낌을 준다. 제목의 'Diving Woman'은 해녀를 뜻하는 듯하다(가사 중 ‘제주도’도 등장한다). 일상에서도 한번쯤은 ‘Diving Woman'이 된 듯 습도와 빗물에 몸을 던져볼까 생각해봤다. 비가 몸을 때리는 촉감이야말로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또렷하게 가져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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