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5] 🥦 받아들이는 마음에 관하여

반갑습니다, 콜리🥦입니다. 날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그칠 줄 모르고 비가 내리던 나날이 언제였냐는 듯 연일 폭염입니다. 에어컨을 제한적으로 틀어주긴 해도 저는 평소 실내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날씨 영향을 그나마 덜 받는다고 해야겠네요. 제가 사는 지역 근처에서 며칠 전부터 외국 청소년들이 대거 참여하는 꽤 큰 야외 행사가 열리고 있는데 이런 날씨에 야외 행사라니 내심 걱정입니다. 외부 출장이라든가 바깥에 있는 시간이 많은 분들도 모쪼록 탈 없이 지내시길 바라요.

칠말팔초, 피서객이 많은 시기죠. 구독자 님은 휴가 계획을 세우셨나요? 저는 록 페스티벌에 갈 예정입니다. 빠뜨린 게 없다면 2016년 경기도 이천의 어느 리조트에서 열렸던 것 이후 처음이니 7년만이네요. 그 전에는 적어도 2년에 한 번꼴로는 갔는데 말이죠. 축제 현장에 들어서면 감회가 무척 새로울 것 같은데요. 오랜만의 록 페스티벌인 만큼 마음을 크게 먹었습니다. 사랑해 마지않는 뮤지션이 무대에 서겠다, 해외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갑니다!

'처서 매직'이란 말이 있죠. 다 불태워버릴 것처럼 뜨거웠던 날도 처서를 지나면 귀신 같이 한결 누그러져서 생긴 신조어인데요. 올해 처서는 8월 23일이라고 하니 이 더위가 꺾일 날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면서 뜨거운 날들을 슬기롭게 보내보아요. 이제 음악 들어볼까요. 요즘 자주 듣는 세 곡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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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우림 - 반딧불

지독했던 장마가 지나갔다. 먹구름이 가시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본격적인 무더위가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주말에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집을 나섰다. 집 앞 편의점을 오가느라 고작 5분 정도를 걸었을 뿐인데 온몸에 땀이 맺히고 흐르기 충분했다. 아아 여름의 한복판이구나. 이 시절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집에만 있긴 시간이 아깝고 무료하다. 영화관, 백화점, 마트, 카페가 떠오른다. 차를 타고 일상 공간을 잠시 벗어나볼까. 산 속 계곡, 바다가 좋겠다.

에어컨 틀어진 실내에서만 지낼 게 아니라면 어쨌든 여름은 덥기 마련이다. 푹푹 찌는 여름이 힘들긴 하지만, 덥지 않은 여름은 그것대로 조금은 서운할 것 같다. 더운 만큼 극대화 되는 즐거움이 있잖은가. 수박, 콩국수, 냉면, 맥주, 아이스 아메리카노, 찬물 샤워 같은 것들. 나이 들면 찬 것도 조심해야 한다던데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겠다. 자우림 <반딧불>은 땀나는 여름이라야 더욱 빛나지 않을까. 잠을 설치게 되는 덥고 긴 여름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우리들은 젊었고 여름이었고 / 여름밤은 길었고 아름다웠다."

🥦 Sam Smith - Love Me More

사는 게 참 쉽지 않다고 느낀 최근 얼마간이다. 가깝게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부터 멀게는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여러 감정이 든다. 분함, 답답함, 허탈함, 측은함, 무서움, 조바심 같은 것들. 이러한 감정은 내 안에서 슬픔으로 수렴되곤 한다. 사회 생활 시작한 지가 어디 하루 이틀이던가. 좋지 않은 마음 따위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음악이나 운동으로, 때로는 술을 마시면서 해소하거나 적어도 감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슬픔은 평소처럼 가볍지 않았다.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믿는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가까운 데, 나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일상 사소한 것부터 조금 더 챙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밥 천천히 먹을 것. 운동하고 와서 바로 씻을 것. 그런 맥락에서 샘 스미스(Sam Smith)의 <Love Me More>를 자주 찾는다. 성 소수자임을 밝힌 이후 샘 스미스는 온갖 조롱, 염오,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을 지켜내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의 목소리를 건네는 샘 스미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인생이 좋을 수만은 없다. <Love Me More>는 힘들어 하는 이를 보듬어준다. 알겠는데 폭염에 듣기엔 좀 그렇지 않냐고? 그렇다면 같은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어떨까.

🥦 Belle and Sebastian - So In The Moment

이들이 영국 북쪽 스코틀랜드 출신이란 점에서 내가 지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 귀에도 그렇게 들릴까?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음악은 나무 같다. 곡조에 따라 봄날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것 같기도, 녹음이 짙은 한여름의 숲 같기도, 가을의 휘날리는 단풍잎 그리고 하얀 눈꽃이 서린 숲 같기도 하다. 다시 말해 벨 앤 세바스찬의 음악은 목가적인 분위기랄까, 고유의 감성을 지녔다.

벨 앤 세바스찬이 지난 1월 열두 번째 앨범 [Late Developers]을 내놓았다. 벨 앤 세바스찬 색깔이 여전하면서도, 전작들보다 다채롭고 경쾌한 음악들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가 생각나는 신스팝(Synth Pop) 풍 노래―앨범에서 제일 의외였고, 그래서 재미 있는 곡이다―도 담겼다. 그중 <So In The Moment>은 요즘 같은 때 듣기 좋은, 청량하고 발랄한 곡이다. 대학교 과제를 위해 시작됐던 밴드가 20년을 훌쩍 넘은 지금까지 활동하는 비결은 음악이 좋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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