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68] 🌻 이렇게 더운 날 누가 락페를 가..

한 주도 잘 지내셨나요? 숑🌻입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굴러가는 나날이지만 계절과 시간도 조용히 제 몫의 일을 하고 있네요. 어제가 입추였다고 해요. 이제 막 기나긴 장마의 터널을 벗어나서 본격적인 더위에 찐 만두가 되어가는데, 벌써 가을의 정수리가 보인다고 하니 기분이 요상합니다. 한낮엔 '이렇게 더운데 뭐가 입추야...' 싶다가도 이제 하루가 다르게 저녁 무렵 공기의 감촉이 달라지겠죠. 비지땀을 흘리더라도 시간 내어 걸으며 차츰 기우는 계절의 테두리를 느껴봐도 좋겠네요.

입추가 오기 전 마지막 주말이었던 8월 초는 대단히 더웠습니다. 다들 어딘가에서 안녕하셨나요? 저는 그렇게 폭염이 맹위를 떨치던 일요일에 (예고한 대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왔어요. 입장 줄 서는 순간부터 '락페를 왜 매년 이런 날씨에 할까?', 오후 3시쯤 '아 진짜 올해까지만 온다..' 불평하다가도 고작 반나절 지나니 모든 기억이 미화되더라구요. 내년은 또 펜타포트 20주년이라고 하니 더욱이 이 짓(?)을 반복할 명분이 생겼네요!

PRIIISM 구독자 분들 중에도 펜타포트에 다녀온 분들이 많으시겠죠?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평일을 살면서도 그날의 여운에 푹 잠겨 있을지도요. 저도 잊고 싶지 않은 주말을 추억하며 공연의 여운으로 가득찬 노래 세 곡을 공유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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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yokuoushoku Shakai - Zutto Zutto Zutto

현생에 치여 이렇게까지 예습을 일절 하지 않은 페스티벌도 처음이었다. 이 밴드 이름을 뭐라고 읽어야 할지도 모른 채, 노래 한 곡 모른 채 공연을 보러 갔다. 료쿠오우쇼쿠 샤카이, 즉 녹황색사회(緑黄色社会)란 이름의 여성 보컬 밴드다. 고등학교 동급생과 그의 소꿉친구로 이루어진 밴드라니 벌써 일본 애니메이션 한 편 뚝딱이잖아.. 내게 있어선 펜타포트 셋째 날 하루를 통틀어 가장 빠져든 공연이 되었다. 무대매너, 진정성, 실력 모든 것에 반했다..!

거의 모든 무대가 좋았지만 가장 내 취향이었던 곡은 <Zutto Zutto Zutto>, '계속 계속 계속'의 뜻이다. 이번이 첫 내한이었던 이들은 공연 내내 스크린에 한국어 자막은 물론 노래 중간중간 정성스런 한국어 멘트까지 선보였다. 해외 밴드가 '안녕하세요'만 해도 관객들 자지러지는데 이렇게 또박또박 공부한 티나는 문장들이라니.. 물론 맑고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에너지, 듣고 있으면 어딘지 왈칵해지는 희망적인 가사들도 참 좋았다.

이날의 공연 분위기가 잘 담긴 영상도 첨부해본다. 시작부터 센스 있게도 녹황색(초록+노랑) 컨패티를 팡 뿌려줘서 마치 만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던 <Mela!> 무대. 자연의 노란빛 노을이 무대와 관객을 물들이고 보컬과 건반이 등을 맞대고 노래하고.. 다시 돌이켜봐도 정말 환상적인 시간이었다!

🌻 글렌체크 - 60's Cardin

생각해보면 내 인생 첫 페스티벌에도 글렌체크가 있었다. 그날의 배경은 서울 난지한강공원이었고, 나는 전날의 숙취로(?) 잔디밭 어딘가에 멀찍이 주저앉아 이들의 음악을 귀로만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대 앞에서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뻗치고 춤추며 음악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과 예쁘게 내려앉은 가을의 노을빛. 그 이후로도 글렌체크의 음악은 러닝할 때 주로 함께했다. 무슨 노래든 말단세포부터 들썩이게 하는 일렉트로니카, 근데 이제 락킹한 밴드 사운드까지 곁들여지니까 신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60's Cardin>이 발매된 지 벌써 12년이 됐단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들을 때마다 새롭게 가슴 뛰는 이 도입부가 언제쯤 질릴까? 타이거디스코의 지휘 아래 이 노래에 맞춰 모든 관객이 락페 체조(?)를 하는 진풍경이 공연의 클라이막스다. 개인적으로 정말 일상에 지칠 때마다 이 영상 한번씩 보면서 울컥해서 눈물 짓는다.(과장 아님) 2022년 펜타포트 영상으로, 저 안에 나도 있다!

🌻 데이식스 -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펜타포트 셋째 날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무대를 꼽는다면 브라질의 40년 된 메탈밴드 세풀투라(SEPULTURA)였다. 어리바리 서 있을 틈도 주지 않고 냅다 온몸으로 헤드뱅잉을 하게 만드는 그 엄청난 도파민이란..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소개하자니 아직 내게 메탈을 사운드 자체로 받아들일 경험치가 부족하다. (메탈신이여, 나중에 성장해서 다시 뵙겠습니다) 세 번째 곡으로는 공연장을 나오면서 진짜 최종 마지막까지 흥얼거린 데이식스를 골라봤다. 데이식스는 이날의 서브헤드였다.

사실상 전곡이 히트곡 아닌가 싶은 짱짱한 셋리스트. <예뻤어>,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HAPPY> 등 흘러나오는 노래마다 귓전 어딘가 맴돌던 멜로디였다. 전광판을 볼 때마다 다들 너무 잘생겨서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멤버 전원이 잘생긴 밴드? 너무 판타지 아닌가..) 펜타포트를 추억하며 아련해질 때마다 <행복했던 날들이었다>를 듣고 있다. 과거형이라 그런지 흥겨운 분위기인데도 왜인지 끝맛이 촉촉하다.

페스티벌에 함께 간 친구들끼리 매년 고생스럽게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땀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생사를 오가며 음악을 들어야겠냔 자조를 나눈다. 그럼에도, 미련하더라도 가장 뜨겁게 열광해본 하루의 기억이 남은 계절을 든든히 떠받쳐준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노래의 가사가 자꾸만 마음을 들락거리는 일이 우연이 아닐 거다. '매 순간이 아까웠어 가는 시간이 참 미웠어 / 지금 돌이켜 보면 바보 같긴 하지만 후회는 남기지 않았어, 사랑했으니까 뭐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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