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9] 🌻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등허리가 접혀버린 2월에 편지를 쓰고 있는 숑🌻입니다. 모두들 건강 조심히 지키고 계신가요? 아무리 2월이 짧다지만 벌써 절반을 돌았다니 믿기지가 않네요! 역병이 그 어느 때보다 기세등등한 요즘이라 그런지, 마치 격전지의 한복판에서 편지로 구조 신호를 띄우는 기분이 듭니다. 감염병의 최전선에 계신 분들에게는 하루하루가 비유 아닌 현실의 격전지겠죠. 모쪼록 이 혼란스러운 시국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있어요.

이따금 디지털이 주는 '너무 끈끈한 연결'이 피로하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요즘은 멀리서나마 주고받는 안부가 일상의 큰 위안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PRIIISM을 읽고 계실 구독자님은 어떤 생각으로 2022년의 2월을 건너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메일리 댓글 외에 구독자님의 목소리를 자유롭게 들을 창구를 만들어봤어요. 거창한 건 아니고 매주의 레터를 읽은 뒤 의견을 익명으로 남길 수 있는 네이버 폼입니다. 언제든 전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놀러오세요. 한 글자여도 좋고 아무 말, 넋두리여도 좋아요. 버튼은 레터 맨 아래에 달아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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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쏜애플 - 2월

연말부터 유튜브 뮤직을 접하고는 그 이전의 생활을 상상하지 못하게 됐다. 듣기 좋게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 계정을 광고 없이 오가며 누릴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음악을 용하게도 추천해준다. 적막한 재택근무 생활에 8할의 낙을 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밴드 노래를 추천해주는 대로 듣던 어느 날이던가. 너무도 특색 있고 익숙한 목소리가 귓구멍에 꽂혔다.

마지막으로 즐겨 듣던 쏜애플의 노래가, 그러니까 거의 10년 전에 발매된 <남극>이었다. <2월>이 수록된 앨범의 발매 시기는 2019년. 그 오묘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최근 앨범까지도 고스란했다. 같은 사람이 쓰고 불렀으니 당연한 걸까 싶다가도 괜히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종종 느끼는 경험이지만, 오래 전 듣던 노래가 그때의 나를 아련하게 데려오는 때가 있으니까. 내게는 쏜애플의 목소리가 그랬다.

하필 2월의 중턱에 만났으니 더욱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봄이 오는 듯하다가도 다시 불어닥친 한파에 무릎이 꺾어버린 요즘에 BGM을 붙일 수 있다면 가장 맞아떨어지는 곡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차디찬데 봄이 오기는 올까, 이대로 시들어만 가는 건 아닌가. 그럼에도 어딘가에서 봄은 뚜벅뚜벅 걸음을 게을리하지 않을 테다. 차고 굳은 날일수록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꺼내어본다.

-괴로움 속에서 말없이 메모하는 기분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를 듣는 것과도 같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정혜윤, 『아무튼, 메모』, p.57)

🌻 윤지영 - Blue bird

요즘 가장 자주 들은 여성 가수를 꼽자면 단연 윤지영이다. 2017년 데뷔했으니 비교적 신인이라 할 수 있는데 지난 해 11월에는 네덜란드 뮤지션 베니 싱스(Benny Sings)와 프로듀싱을 함께하는 등 행보마다 눈에 띈다고 느낀다. 그 중에서도 <Blue bird>는 윤지영을 처음 알게 한 노래이자 꽤 오랜 기간 몸서리를 치며 들었다. 너무너무 좋아서!

산뜻한 목소리와 멜로디에 귀를 뺏겼지만 가사를 곱씹으면서는 금세 심오한 기분이 된다. 제목을 직역하면 자유를 상징하는 파랑새일 텐데, 노랫말을 훑고 나면 후회에 가득 차 미련 없이 강물에 몸을 던진 이의 이미지만 머릿속에 남는다. 의미를 알 수 없던 차에 '술을 마시며 진지하게 죽음을 얘기하는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게 자유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는 앨범 소개글을 읽었다.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을 법한 이야기다. 왜인지 나는 노랫말을 새기며 모종의 후련함을 느꼈다. 마음에 떠도는 속엣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그것은 타인의 것이 된다. 말을 고르고 발음하는 과정에서 듣기 좋게 검열되므로 더이상 개인적인 경험이 아닌 것이다. 윤지영의 노래를 들으면 이따금 찾아드는 불안과 절망조차 나를 이루고, 남에게 어떻게 비치든(비치지 않든) 태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뾰족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느낀 그의 음악은 내게 그렇다.

🌻 김일두 - 가난한 사람들

김일두의 적적한 목소리는 겨울 밤에 왜 이리 잘 어울릴까? 정확히는 홀로 있는 밤에 어깨에 내려앉은 어둠 같은 노래다. 사위가 캄캄한 날이라면 그 순간의 온도는 아무 상관 없을 것이다. 김이 다 빠져버린 맥주나 단조로운 맛의 위스키 한 잔 같기도 하다. 지극히 담백하지만 썩 나쁘지 않다. 어떻게 매일이 스파클링 샴페인처럼 반짝일 수 있을까? 이벤트 같은 날도 존재하지만, 대개의 일상은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흘러간다.

벽에 기대 통기타를 뚱땅거리며 친구들의 안부를 가만가만 읊는 내용의 가사가 마음의 평화를 부른다. '상민이 놈은 맨체스터에 뿌려졌단 얘길 들었소, 스티브 놈은 해운대에다 근사한 카지노 하구요, 민호 녀석은 커밍아웃해 훈무랑 결혼해 잘 삽니다'... 노랫말은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구요'라며 담담히 끝맺는다.

이 노래를 들을 적마다 찾아오는 평화의 출처는, 바로 그 김 빠진 맥주 같은 담담함일 것이다. 우리는 빛나는 순간만을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여길 때가 많다. 지리멸렬한 평일이 어서 끝나기를, 후련한 휴가로 뛰어들고 나면 찌푸려진 미간이 그제야 활짝 펴질 테니까. 그럼에도 지금이 모여 삶이 된다고 했던가. 매일의 징검다리를 건실하게 골라 이은 내가 있었기에 무탈한 휴일도 온다. 주변의 누구나 그렇게 돌을 놓으며 산다. 그 사실이 가만한 위안을 준다. 아무튼, 굳건한 얼음 아래서도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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