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아티클 기고 안내

048. 제어되지 않는 열(Heat)의 서사

도시가스가 비껴간 어느 도시에 관하여

2026.02.15 | 조회 137 |
0
from.
PP
PP PICK의 프로필 이미지

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안녕하세요. 2026년 새해에 인사 드립니다.

퍼블릭 퍼블릭은 올해 도시 인프라, 사물, 관찰을 키워드로 아티클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비인간 타자와의 얽힘을 드러내고 감각하는 것이 시대의 화두인 만큼, 사회적 의제나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여 이러한 논의를 고민하는 국내외 예술 작업과 실천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구독자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올해는 더욱 자주 아티클로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도시, 184세대의 가구가 개별 주소 없이 장지동 596-5’로만 존재하는 마을. 서울 송파구 장지동 남쪽 끝, 경기도 성남시와의 경계선에 위치한 화훼마을의 이야기다. 얼기설기 지어진 낮은 건물과 검정 비닐로 둘러진 지붕, 화물차와 트럭들이 질주하는 도시고속도로 너머 탄천 옆 저지대에 위치한 이 마을이 가시화되는 거의 유일한 순간은 뉴스에서 화재 소식이 들려올 때다. 불붙은 LPG 가스통이 연쇄 폭발하며 마을 주거지의 70%를 전소시킨 2006년 화재처럼, 화훼마을은 여러 차례 화마(火魔)를 겪으며 세상에 모습을 잠시 비출 뿐이다.

장지도 화훼마을 전경 [출처: 파이낸셜뉴스]
장지도 화훼마을 전경 [출처: 파이낸셜뉴스]
장지동 화훼마을 전경 [출처: 공간유보]
장지동 화훼마을 전경 [출처: 공간유보]

 

인프라가 부재한 자리

재난의 주요 원인은 이 마을에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데 있다. 난방과 취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많은 가정에서 LPG 가스보일러를 사용한다.[1] 이 마을을 구성하는 집들은 슬레이트 지붕의 가건물로 지어졌기에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1982년 잠실아파트단지 조성 시 철거민들이 장지동의 영농 지역 비닐하우스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가스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기반시설이 비껴간 자리, 재난으로부터 이곳의 서사는 시작된다.  

도시 인프라(infrastructure)는 전력망, 상하수도, 도로, 국경, 항만, 물류창고에서부터 데이터센터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을 구성하는 물리적 구조물이자 사회기반시설이다. 이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을 제공하지만 그 존재는 '배경(background)'으로 남아 인식되지 않는다. 이러한 인프라의 은폐성(invisibility)에 주목하는 이유는 인프라가 결코 중립적이고 이타적인 기술이 아니라현실을 구성하고 매개하는 복합적이고도 이질적이면서도 강력한 행위자이기 때문이다.[2] 다시 말해 인프라는 도시 공간을 ()배치함으로써 권력을 작동시키는 지정학적 행위자인 것이다. 이러한 인프라는 제대로 작동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고장이나 오류가 발생했을 때, 재난과 함께 비로소 그 물질적 존재와 사회적 중요성을 드러낸다. 마치 화재를 통해서만 도시가스가 없는이 마을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동시대 시각예술은 이러한 인프라의 은폐된 측면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윤리적, 정치적 문제를 가시화하는 중요한 비평적 역할을 수행해오고 있다. 박정선 작가의 개인전 《STRUCTURE ENTROPY 596-5》은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무허가 판자촌이자 송파구의 마지막 개발지라 불리우는 화훼마을에 주목한다. 작가는 현장 리서치를 바탕으로 비정형 주거 구조를 파악하고, 주민과의 비공식 인터뷰와 현장 채집을 통해 인프라의 부재가 야기하는 서사를 재구성한다.

《STRUCTURE ENTROPY 596-5》 전시 전경 [출처: 공간유보]
《STRUCTURE ENTROPY 596-5》 전시 전경 [출처: 공간유보]
영상 <Ashes> 스틸컷 [출처: 공간유보]
영상 <Ashes> 스틸컷 [출처: 공간유보]

 

잿가루로 지은 유토피아

전시는 실제 마을을 3D 스캐닝 데이터로 재구현한 영상 <Ashes>(이미지 1)로 시작한다. 본 작업은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집들이 구축되고 또다시 잿가루로 아스라이 해체되는 풍경을 반복한다. 이는 계획되지 않은 무작위의 임시 공간들로 형성된 마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프라의 배치에서 배제된 도시공간의 운명, 다시 말해 재난 혹은 재개발로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마을의 위태로운 현재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마을 너머 높이 세워진 아파트 빌보드 광고는 재개발로 변화될 신도시에 대한 마을주민의 갈망을 시사한다. 이는 전시장 왼편의 방에 설치된 작업 <들리지 않는 낙원>(이미지 2)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인조잔디 위 연탄가스 배출장치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현란한 그림자와 사운드가 눈을 사로잡는다.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공간은 현실의 비루함을 잊은(잊으려는) 자본주의적 열망을 투영하는 듯하다.

이어서 작가는 비가시적인 이 마을의 내부에서 들끓고 있는 각기 다른 욕망과 기대를 파고든다. 영상 <Ashes> 아래 가건물의 형상을 구현한 공간설치 <596-5>(이미지 3)는 관람자가 등을 구부리고 시선을 낮춰 통과하도록 의도된 작업이다. 이 구조물 내부에는 2020~2025년 사이 진행된 서울시 송파구의회 도시건설위원회 회의록에서 발췌한 문구들이 적혀 있다.

“거주하시는 분들은 어디로 가죠? 그것도 이주가 확정된 거예요?”

“땅주인은 따로 있고 진짜 막말로 농지라고 해가지고 벌통 하나 갖다 놓고 임대아파트 하나 얻고”

“지금 거기 사는 사람은 그 복판에다가 보도블록을 깔아달라, 지금 탄천 옆에 데크를 해가지고 삶의 질을 높여달라 이렇게 조건이 온다고”

도시의 끝으로 더 이상 밀려나지 않으려는 발버둥과 도시의 개발로 부를 얻으려는 욕망, 재난을 공약으로 활용하는 정치 사이, 작업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도시에는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갈등을 표면화한다.

<들리지 않는 낙원> (이미지 2) [출처: 공간유보]
<들리지 않는 낙원> (이미지 2) [출처: 공간유보]
공간설치 <596-5> 디테일(이미지 3) [출처: 공간유보]
공간설치 <596-5> 디테일(이미지 3) [출처: 공간유보]

 

불안정한 삶을 동기화하는 엔트로피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이해관계 속 어지러운 마을의 상황을 통과하면, 이 마을의 기묘한 풍경이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불가한 해소>(이미지 4)는 자물쇠가 엉켜 매달려 있고 그 아래로 끓는 물이 수증기를 내뿜는 설치작업이다. 그 반대 편에는 천연잔디 블록 위로 희미한 식물등이 켜져있는 설치작업 <그럴듯하지만>(이미지 5)이 위치한다. 전시 기간동안 점차 녹슬어가는 자물쇠와 말라가는 잔디는 모두 끓는 물과 조명의 빛에 의해 그 상태가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이 마을에서(haet)’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에너지인 동시에, 공식적인 인프라망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채 오직 재난을 통해서만 그 존재를 증명하는 비극적 매체다.

작품 <불가한 해소>(이미지 4) [출처: 공간유보]
작품 <불가한 해소>(이미지 4) [출처: 공간유보]
작품 <그럴듯하지만>(이미지 5) [출처: 공간유보]
작품 <그럴듯하지만>(이미지 5) [출처: 공간유보]

전시의 제목인구조 엔트로피(Structure Entropy)’는 본래 복잡한 시스템 내에서 구조적 구성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무질서한지를 측정하는 지표다. 박정선은 이 공학적 개념을 도시 사회학적 맥락으로 치환하여, 인프라의 질서로부터 배제된 화훼마을의 생존 방식을 해독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고립된 계(system)의 엔트로피가 증가하듯, 도시가스라는 인프라가 닿지 않는 화훼마을은 외부의 에너지가 유입되지 못한 채 점차 무질서가 극대화되는 고립된 곳이다.

이곳에서 작가가 포착한 '제어되지 않는 열'은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는 마을을 집어삼키는 화마이자, 난방을 위해 위태롭게 끓여내는 LPG 가스의 열기이며, 동시에 재개발이라는 거대 자본의 욕망이 뿜어내는 뜨거운 갈등의 열기이다. 작가는 자물쇠가 녹슬고 잔디가 메말라가는 설치 작업을 통해, ''이 어떻게 마을의 물질적 기반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삶을 변형시키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인프라 내부의 도시가 정교하게 설계된 에너지 순환을 통해 평온을 유지할 때, 인프라 외부의 화훼마을은 제어 장치 없는 엔트로피의 증폭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비정형의 구조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박정선의 작업이 가시화하는 것은 단순히 낙후된 빈민촌의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인프라라는 거대한 권력의 망이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지점에서 어떻게 '불안정한 삶'이 동기화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누리는 도시의 매끈한 질서는 혹시 이토록 뜨겁고 무질서한 엔트로피를 도시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어 얻은 대가가 아닌가. 재난으로 시작된 화훼마을의 서사는 작가에 의해 도시라는 거대 구조가 숨기고 싶어 했던 열역학적 진실, 다시 말해 배제된 곳에서 증폭되는 무질서를 우리 눈앞에 정면으로 대면시킨다.

《STRUCTURE ENTROPY 596-5》 전시 포스터 [출처: 공간유보]
《STRUCTURE ENTROPY 596-5》 전시 포스터 [출처: 공간유보]

[1] 주언규, ‘매연 내려앉은 검은지붕… 잇단 수해·한파에 시름 깊어져 [개발의 그림자 강남 판자촌]’ (파이낸셜뉴스, 2023. 2. 9.) https://www.fnnews.com/news/202302091810142727

[2] 김지훈 (2025), 『위기미디어: 위태로운 21세기 사회와 미디어의 확장』, 아카넷.

 

※ 본 아티클은 박정선 개인전 《STRUCTURE ENTROPY 596-5》(2025.10.17.-10.31., 공간유보)의 비평글을 재편집한 것입을 밝힙니다. 자세한 전시정보는 공간유보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PUBLIC PUBLIC에서 당신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PRISM 아티클 기고 방법을 확인해보세요. 


PUBLIC PUBLIC은 사회적 가치를 담은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연구하고 사후연구과 비평을 포함한 담론생산을 실험하는 연구단체이자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PP PICK은 도시의 틈에서 이뤄지는 예술활동과 실천들에 관한 소식과 해설을 정기적으로 담아냅니다. 또한 예술작품과 대중(관객) 간의 상호소통에 주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개입과 참여에 반응하는 예술 생태계를 매개하고자 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6 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