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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 공공예술이 뭔가요(2)

물리적 장소에서 담론적 장소를 위한 열린 과정으로

2025.03.27 | 조회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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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공공예술은 도시 공공장소의 조형물로 처음 시작하여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거치며 오늘날 비물질적이고 참여적인 형태의 예술로 분화해왔다. 지난 아티클 017.공공예술이 뭔가요(1)에서는 도시 공간과 도시 개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공공예술의 관점 변화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공공예술에서 닫힌 정의란 존재하지 않으며 관점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범주화하고 이해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지난 아티클에 이어 본고에서는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공공예술을 바라보고 이를 통해 공공예술의 정의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도록 한다. 


“공공장소는 고정된 ‘물리적 장소’라기보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교차하는, 따라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담론적 장소’임을, 그리고 공공미술은 이를 만들어 가는 열린 과정이다.”

윤난지 ,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4: 공공미술」, 눈빛, 2016  

 

알다시피 공공예술은 영어로 ‘Public Art(s)’로 표기된다. 일반적으로 Public은 ‘공공의’, ‘대중의’ 정도로 번역되는데, 여기서는 사적(Private) 장소와는 달리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한 공공장소로서 물리적인(Physical) 장소성을 담보로 한다. 그러나 장소성은 단순히 크기, 재료, 형태, 기능으로서만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그 공간이 위치한 지역의 역사나 사회적 이슈, 주민 간의 갈등 등 보이지 않는 요소들로 구성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80년대 뉴욕 사우스브롱스 주민들의 초상을 조각으로 제작하여 거리에 전시한 존 에이헌(John Ahearn)의 작업이나 길거리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여러 그룹의 대화를 기획한 2013년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작업은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낸 공공예술 사례들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화예술을 다룬 아티클 014. 대화가 예술이 될 때를 참고) 

한편 공공예술은 여성, 장애, 환경, 노동 등과 같은 논쟁적인 사회적 문제, 즉 공적 영역(Public Realm)을 다루며 사회참여적 예술로 확장된다. 2023년 아르코가 주최한 공공예술 포럼에서 차별과 장애에 관한 작업을 지속해온 콜렉티브 다이애나랩은 공공예술의 범주 안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함을 이점으로 언급했다. ‘장애예술’이라는 명명 자체가 일종의 배리어를 만든다는 의미 아닐까? 이처럼 공공예술은 오늘날 다양한 사회 이슈를 포괄하고 액티비즘 즉, 사회운동과  결을 같이 하면서도 예술적 언어로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예술이 되었다. 이는 공공예술이 물리적인 장소를 뛰어넘어 담론적인(Discursive) 성격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다이애나랩, <천천히 우회하며 오르는 길>,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입구 설치, 2020  ©웹진이음
다이애나랩, <천천히 우회하며 오르는 길>,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입구 설치, 2020  ©웹진이음

 

사회적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이미 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본 아티클에서 의도적으로 ‘공공미술’ 대신에 ‘공공예술’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공공미술(Public Art)은 건물 앞 조형물과 같은 건축물 미술작품을 포함한 물리적인  작품구현 형태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한편, 공공예술(Public Arts)은 참여와 상호작용 중심으로 보다 폭넓은 예술 활동 전반을 포괄한다는 차이가 있다. 필자는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를 관성적으로 사용하기보다  그간 공공미술이 지녔던 기존의 한계와 문법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공공예술’을 택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공공예술을 이야기할 때는 참여와 개입이라는 상호작용이 주요한 요소라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상호작용에 주목하는 예술은 이 뿐만이 아니다. 관계 미학(Relational Art), 커뮤니티 아트(Community Art), 협업예술(Collaborative Art), 대화예술(Dialog Art), 사회참여 예술(Socially Engaged Art), 참여예술(Participatory Art),  사회적 행위(Social Practice) 등 90년대 이후 수많은 동시대 예술에서 참여와 개입은 중요한 근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왜 생겨난 것일까?  

예술은 사회를 담는 그릇이므로 사회의 변화상을 살펴봐야하겠다. 우선 첫째로 디지털 네트워크의 발달로 인한 관계 지향적 사회와 연결될 수 있다. 마셜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전자기술의 확산이 문화적 참여를 증가시킬 것이다”라고 메시아적인 발언을 한 바 있다. 오늘날 네트워크 사회는 인터넷과 SNS 등에 의해 관계 지향적 사고를 확산하고 있다. 둘째로는 경험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 90년대 경제학자 조셉 파인(Joseph Pine)이 말한 것처럼 “과거의 기업이 소비자에게 물리적인 상품을 판매했다면 현재의 기업은 경험을 둘러싼 환경을 판매”한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에서 예술 역시 변화한다. 미술창작과 예술가의 노동을 통해 작품의 실물을 공개하고 감상하는 것에서 작품과 관람자 간의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관람자의 내부에서 생성되는 육체적, 감정적, 지적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동하였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참여 예술을 다룬 아티클 010. 참여 예술, 예술적 현실을 위한 실천 혹은 레토릭 을 참고) 

안토니 문타다스(Antoni Muntadas), <주의: 인지는 참여를 요구한다(Attention: Perception Requires Participation)>, 2013 ©Canada Line
안토니 문타다스(Antoni Muntadas), <주의: 인지는 참여를 요구한다(Attention: Perception Requires Participation)>, 2013 ©Canada Line

 

참여와 개입의 수준을 고려해야  

공공예술이 담론적인 장소로 변하고, 예술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상호작용이 점차 중시되는 경향은 열린 구조나 탈-위계적 구조를 가진다. 여기서 시민/주민/관객의 참여와 개입을 통해 예술가-관객 사이의 위상이나 위계가 변하는 지점은 일변 긍정적이다. 예술가는 자기주도적으로 창작을 하던 권위적인 지위에서 관계적으로, 관객은 관람과 감상이라는 수동적 대상에서 참여와 개입, 협력이라는 능동적 주체로 변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이 과연 민주적 공동체를 구현하는가?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과 같은 이론가들은 (이러한 관계와 참여적 행위를 다루는 작업들에서) 대립과 분쟁, 반목과 불만이 삭제된 유대와 연대는 우호적 관계에만 치중한다며 ‘선한 의도’에만 천착함을 비판한다.[1] 더불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동성과 유연함을 강조하며, 일시적인 프로젝트 중심의 사업, 그리고 제품이 아니라 특정한 경험을 통해 감정을 공유하는 노동은 신자유주의적 생산방식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참여와 개입의 양(quantity)에 치중하는 많은 공공예술의 사례를 접하면 참여가 주는 능동성이란 빛 좋은 개살구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예술가의 의도가 일방향적인 경우가 많고 주민/시민/관객이 환경개선 사업에 “동원”되는 양상으로 간혹 비쳐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와 개입의 질(quality)적인 측면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 뉴욕 구겐하임과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한 바 있는 파블로 엘게라(Pablo Helguera)는 참여의 구조를 네 단계로 나눠서 설명한다: ①일반적인 작품 관람의 방식으로 관람자가 작품과 거리를 둔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명목적인 참여(안토니 문타다스 사례), ②단순한 임무를 통해 관람자가 작품의 완성에 기여하는 지시된 참여, ③예술가가 만든 하나의 틀 안에서 작품을 구성하는 특정 콘텐츠를 제공하는 창의적인 참여(리미니 프로토콜 사례), ④ 관람자와 예술가가 작품 구조와 콘텐츠 개발에 책임을 공유하는 협업 수준의 참여.[2]

공공예술은 더이상 “허울만 좋은 참여”에 그치지 말아야한다. 예술가의 의도와 관람자/대중의 개입이 충돌하며 (때로는 반목과 부침을 겪으며) 만들어지는 풍부한 논의를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설계하는 것, 오늘날의 공공예술에서는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 <100% 광주>, 아시아예술극장,2014 ©한국일보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 <100% 광주>, 아시아예술극장,2014 ©한국일보

[1] Claire Bishop, "Antagonism and Relational Aesthetics," October 110 (Fall 2004), p.79.

[2] 파블로 엘게라(Pablo Helguera), 『사회 참여 예술이란 무엇인가』, 열린책들, 2013, p.35-38.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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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PUBLIC은 사회적 가치를 담은 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연구하고 사후연구과 비평을 포함한 담론생산을 실험하는 연구단체이자 콘텐츠 큐레이션 플랫폼입니다. 

PP PICK은 도시의 틈에서 이뤄지는 예술활동과 실천들에 관한 소식과 해설을 정기적으로 담아냅니다. 또한 예술작품과 대중(관객) 간의 상호소통에 주목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개입과 참여에 반응하는 예술 생태계를 매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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