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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대화가 예술이 될 때

인식하고 행위하는 주체들을 끌어내는 참여적 예술들

2022.11.16 | 조회 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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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 PICK

예술로 미닝아웃하는 다양한 관점을 나눕니다.

지난 10월 마지막주 토요일, 금천 소재의 한 전시장에서 만두 빚기가 진행되었다. 독서실 책상과 닮은 ‘얇은 방’ 구조물 내 1인용의 작은 공간에 앉은 15인의 관객들. 그들은 만두속 재료를 다듬고 만두피를 빚느라 분주하다. 그럼에도 틈틈히 작은 창 너머로 낭독극을 바라보고 또 듣는다. 자신만의 방에 갇힌 한 은둔이의 독백은 작지만 울림을 가져온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스스로를 고립시켜본 적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찐 만두를 먹으며 관객이 서로에게 질문하고 또 자문한다.

다른 관객분들은 어떤 이유로 여기에 참여했나요? 저는 이제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겼어요. 그런데 그게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제가 과연 잘 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습니다.

<토론극장: 우리_들> 9막 ‘유인도 표류기’ (패널: 김혜원, 연기:박시호),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2 ©토론극장: 우리_들
<토론극장: 우리_들> 9막 ‘유인도 표류기’ (패널: 김혜원, 연기:박시호),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2 ©토론극장: 우리_들
<토론극장: 우리_들> 9막 ‘유인도 표류기’ (패널: 김혜원, 연기:박시호),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2 ©토론극장: 우리_들
<토론극장: 우리_들> 9막 ‘유인도 표류기’ (패널: 김혜원, 연기:박시호),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2022 ©토론극장: 우리_들

 

<토론극장: 우리_들>(박혜수, 이경미 공동기획)은 관객들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할 수 있도록 일종의 무대와 같은 환경을 조성한다. 그러나 이 무대에 올려진 서사는 개인의 삶에 밀착된 주제이기에 거리두기도 어렵고, 여럿이 하는 공론장에 사적 이야기를 꺼내기란 쉽지 않다. 그리하여 프로그램은 매번 관객 간의 대화와 토론을 위한 워밍업 활동을 설계한다.

쿠킹(9막), 투표(3막, 5막), 카드게임(7막), 그룹 토의 및 발표(2막), 관객 사이에 배우를 심어놓은 상황극(5막, 8막), 선택실험(1막, 4막) 등의 활동을 통해 관객은 자연스레 낯선 공간과 환경에 동화되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틈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게임이나 실험, 심리극을 전반부에 배치하여 사고의 유연함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도록 의도하는 한편, 패널/작가/기획자가 때로는 관객이 되어 개입하기도 하고 안내자가 되어 진행의 부스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우구스또 보알,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 현장 이미지, 리버사이트 교회, 뉴욕시, 2008
아우구스또 보알,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 현장 이미지, 리버사이트 교회, 뉴욕시, 2008

 

인식하고 행위하는 주체로서의 관객

참여를 독려하는 예술의 유연한 전략이나 그 의도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레퍼런스 중 하나로 아우구스또 보알(Augusto Boal)의 <억압받는 자들의 연극(The Theatre of the Oppressed)>이 있다. 브라질 출신의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인 보알은 남미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서유럽식 연극이 그대로 모방되고 상연되는 현실에 강한 회의를 갖았다. 그리하여 억압받는 민중이자 수동적인 관객을 삶의 주체이자 무대의 배우로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고 1970년대 이 연극을 처음 발표했다. 그리하여 관객이 자신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을 극으로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는 연극 안에서 삶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갈등장면을 배우들을 통해 제시하고, 관객에게 직접 극 안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통해 상황을 바꾸도록 제안했다. 주인공이 해결하지 못한, 다른 결말과 변화의 가능성에 관하여 관객이 다른 관객들과 함께 토론하도록 이끄는 구성을 취한다. 따라서 수동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관객이 여기서는 배우이자 퍼포머로 분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토론연극(Forum Theater)은 ‘관객-배우(spect-actor)’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열린 구조를 지니게 된다.

보알을 이를 가능케하는 두가지 장치를 고안했는데, 첫째, 전체 집단을 이끄는 ‘조커(joker)’가 있다. 그는 관객을 통솔하기보다는 안내하고 적절한 개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 구체적인 실행단계 전에 놀이와 신체활동 등의 웜업 활동을 선행한다. 이는 관객이 심리적이고 정서적으로 억압받지 않는 자유로운 상태로 진입하도록 이끌어준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능동적이고 참여적인 관객이 중요한 것인가? 연극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에서 관객은 보통 행위자라기 보다는 수동적인 감상자의 지위에 머물러왔다.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는 “보기만 하는” 관객을 수동적인 구경꾼(spectator)으로 지칭하며, 이는 인식하고 행위하는 능동적인 존재와 구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술작품은 더 이상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에게 수동적이고 일방향적인 관람방식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미적 경험들을 제시하는 것이 주요한 의제임을 주장한다.[1]

본인이 중요한 참가자라는 인식을 통하여 주체가 되는 경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관해 인식하는 것. 또한 다른 참여관객과의 협업의 과정들을 통해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에 관하여 사유하는 것. 여타의 참여적인 예술은 대화를 이끌어냄으로써, 예술 자체에 몰입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내가 속한 사회를 이해하도록 이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반으로 관객 스스로가 일종의 배움과 경험적 지식을 만들어 가기를 독려하는 것이다. (참여예술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지난 아티클  <참여 예술, 예술적 현실을 위한 실천 혹은 레토릭>을 참고하시라.)

 

수잔 레이시, <크리스탈 퀼트>(1985-87) ©The artist Photo: Gus Gustafson
수잔 레이시, <크리스탈 퀼트>(1985-87) ©The artist Photo: Gus Gustafson

 

공론장의 풍경들

대중들이 참여하고 대화를 개진하면서 만들어내는 이러한 풍경은 다른 관객에게 일종의 퍼포먼스로 읽힐 가능성이 있다. 물론 참여하고 있는 본인들에게는 현대판 아고라와 같이 대화와 토론의 장이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새로운 장르 공공예술’이라는 공공예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 수잔 레이시(Suzanne Lacy)의 <크리스탈 퀼트(The Crystal Quilt)>가 있다.

60세 이상의 여성 430명이 함께 모여 늙어감에 대한 이야기를 테이블에서 나누는 이 퍼포먼스는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현장과 방송을 통해 관람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2] 한편 대문 앞의 계단에서 여럿이 함께 젠더, 인종, 계층에 관한 담화를 나누는 프로젝트도 있다. 2013년 미국의 브루클린에서 400명이 넘는 남녀가 참여하여 만들어진 이 풍경은 여성 활동가들이 부스터가 되어 대중과 거리에서 만나고 소통하며 대화하는 활발한 장으로 구성되었다. 그들의 대화와 토론 내용은 비록 기록되지 않았지만 연결의 경험과 순간은 참여자와 관람자 대중에 의해 남을 것이다.

수잔 레이시,<Between the Door and the Street> (2013) ©Bibiana Crespo-Martín
수잔 레이시,<Between the Door and the Street> (2013) ©Bibiana Crespo-Martín

 

본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대화의 예술들이 지닌 궁극적인 지향점은 관객 사이에서 발생하는 토론이며 상호 교류이다. 이 예술들은 “대화와 토론을 위한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중점을 둔다. 이러한 사회 참여적 예술의 특성은 관객이 흥미로운 의견의 교환에 도달할 수 있도록 담론의 공간을 개방하고, 구축한 구조 안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콘텐츠를 보탤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3]

미술실천에서 중요한 지점은 대중과 관객을 대하는 예술의 태도이다. 참여예술에서 관객은 “각자 내부에 창조력을 가진 소중하고 능동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대안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도록, 그리하여 점진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키는 잠재적 힘을 스스로 믿고 주체적인 존재로서 인식하기를 바란다.[4] 다양한 정체성이 용인되는 예술작업에서는 민주적인 실험실로서 개인들에게 공공에의 감각을 재확인시켜야 한다. 다름에의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활동을 통해 경험해보는 것이다. 열린 토론을 위한 공론장의 존재가 무색한 현실에서 예술의 역할이란 공공의 참여를 이끌어내고 개인들에게 목소리를 내어주는 각축장이 아닐까?

 

※ 본 텍스트는 <토론극장: 우리_들>(2020) 출판물 수록 글 <여기 관객들이 있다(Spectators are present)>를 재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Conversations between people can be exquisitely beautiful, but they can fail miserably as art. It is part of the edge in my work, the possibility of failure through disruption or lack of depth or relationality.

Suzanne Lacy, Frieze, 2012

 

이경미 / 독립기획자, PUBLIC PUBLIC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mia.oneredbag@gmail.com


[1] 랑시에르에 따르면 “관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것이 낳은 새로운 가능태들에 의거해 관객이 기존의 것을 변이시키는 조건들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리고 능동적 관객이자 행위자로 이루어진 살아있는 공동체 집단을 산출하는 매개로서 연극은 교육학 모델을 따른다고 언급한다. 자크 랑시에르(양창렬 역), 『해방된 관객-지적 해방과 관객에 관한 물음』, 현실문화, 2008/2016, pp.2019-222.

[2]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을 지향하는 작가는 이러한 프로젝트가 예술의 범주가 어디까지 인지를 질문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크리스탈 퀼트는 예술이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예술이 더 이상 예술이 되지 않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원문: https://www.tate.org.uk/whats-on/tate-modern-tanks/display/suzanne-lacy-crystal-quilt)

[3] 파블로 엘게라(고기탁 역), 『사회 참여 예술이란 무엇인가(Socially Engaged Art)』, 열린책들, 2013, p.80.

[4] Patricia Milder, TEACHING AS ART The Contemporary Lecture-Performance, 『PAJ: A Journal of Performance and Art』(Volume 33, Issue 1, January 2011), pp.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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