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랑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죠

6년째 같은 곳을 여행하는 이유

2024.03.25 | 조회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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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니의 여행노트

기꺼이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는 당신에게, 월 3회 여행 레터를 전합니다. [☀️월요여행 단편시리즈 연재중]

 

 

*

 

나와 짝꿍 훈이는 전라남도 구례라는 시골 마을에서 작은 양식당을 운영한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하우스콘서트를 여는데, 

어느날, 공연이 열리지 않는 목요일에 콘서트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요청 메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환갑동안 함께 늙어온 두 친구가 구례로 여행을 가요. 꼭 열어주면 좋겠어요.”

 

.

.

.

 

꼭 열 수 밖에 없었다.

요청을 수락하자마자 신기하게도 비슷한 연령대의 중년 부부가 추가로 예약을 했다.

 

이렇게 네 사람만을 위한 목요일 하우스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호흡을 주고 받으며 대화하듯 진행되는 공연이었다.

 

내가 훈이를 생각하며 치앙마이에서 만든 첫 곡, 

<릴라와디> 곡 설명을 할 때 였다.

 

“제가 곡을 쓰게 된 건 훈이의 영향이 커요. 원래도 음악듣는 건 좋아했지만 직접 만들어서 불러 볼 생각은 전혀 못했거든요. 그런데 훈이가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저도 노래로 마음을 선물해보고 싶었어요. 훈이를 만나면서 제 안에 있던 특별함을 하나씩 꺼낼 수 있게 돼요.”

 

마주 앉은 객석에서 부드러운 음성이 잔잔히 들려왔다.

 

”사랑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죠.“

 

“흥얼거리는 멜로디, 그게 다 내면의 소리에요.”

 

 

사랑이 가만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콕 박혀서 

공연이 모두 끝난 후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 서서, 다시 한 번 소리내어 읊조려 보았다.

 

사랑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죠’

‘사랑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죠’

 

손을 꼭 붙잡고,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며 공연 내내 따스함을 채워준 두 사람과 

꼭 어디서 한 번쯤 만난 것만 같은 중년 부부.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묘하고, 신기하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시인 <저녁에>

 

한 구절이 생각나는 밤이었다.

 

 

 

*

 

치앙마이를 여행하며 만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숙소 카운터를 지키던 늘 웃는 얼굴의 직원분,

숙소 근처 빨래방에서 만난 핑크퐁을 좋아하던 아기,

액자 가게를 찾기위해 무작정 길을 나섰다 우연히 들어간 화방에서 친절하게 지도를 그려주던 아저씨,

가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렸다가 만나게 된 태국인 한국어 선생님,

교실에서 함께 기타치고 놀았던 태국 고등학교 친구들,

마침내 찾은 액자가게 사장님과 대식구들,

카페에서 새로 사귄 동갑내기 세 친구,

아주 멋진 페레모를 팔던 모자가게 사장님,

치앙마이대학교 졸업식에서 만나 함께 사진찍은 친구들,

새벽 세시, 뜨끈한 국수를 먹기위해 자전거 타고 깊은 밤을 가르며 도착한 치앙다오 쌀국수집사장님네

빠이에서 쌀국수를 가장 맛있게 만들어 주는 제임스 부부…

건과 임, 포와 메, 꼰띱과 짐.

 

그 사이로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한 얼굴,

 

기억에만 남아있는 흐릿한 얼굴이 아니라

이제는 매일 아침과 저녁을 함께 보내는 또렷한 얼굴,

 

훈이가 있다. 

 

 

내 인생에서 꼭 만나게 될 인연이 있었다면

그건 아마도 그가 아닐까.

 

 

 

 

훈이는 나한테 치앙마이를 왜 꼭 가보라고 했어?

 

"치앙마이는 음식, 문화유산, 음악, 예술이 너무 뛰어난 곳이야. 세계에서 이 밸런스가 가장 잘 잡힌 나라가 아닐까 싶어. 새로운 것들을 막 해보고 싶고, 마침 여행이 필요해 보이는 그 시기에 치앙마이가 라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어."

 

치앙마이에서 처음 만난 나를 어떻게 기억해?

 

”내가 기억하는 라니는 색조화장이 짙고, 눈썹이 정리 정돈돼 있었고, 답답한 브래지어를 하고 있고, 꽉 끼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어. 뭔가 예뻐지려고 애쓰는 얼굴이었지. 라니는 지금이 가장 자연스럽고, 예뻐. 점점 더 예뻐지는 것 같아.“

 

우리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같은 여행길 위에 있네. 훈이가 미얀마 난민학교에 느낀 감정들이 있다면 어떤 게 있어?

 

처음에는 좋은 일을 한다, 멋진 일을 한다는 으쓱한 감정으로 난민촌을 방문했었어.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개인적인 프로젝트 성과를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만나러 갔지. 그런데 해를 거듭해 방문하면 할수록 괴로워지더라고. ‘나는 위선적이다’라는 생각이 내게 윽박지르는 기분이었어. 왜냐고? 나는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정화된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하고, 에어컨 아래서 더위를 식히다, 얼음 잔뜩 넣은 위스키에 망고스무디를 원하는 때 언제나 마실 수 있는 이곳과는 정반대의 세상으로 돌아갈테니까. 한동안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많이 무거웠었어.

그럼에도불구하고, 아이들과 한 약속 ‘내년에도 꼭 다시 올게’를 지키기위해 8년째 난민학교를 방문하면서, 오래동안 나를 괴롭혔던 질문, 나는 왜 태어났을까,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을 그곳에서 찾았어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나로 태어난 것이고,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네게 온전한 사랑을 주기 위함이다’

 

이제 왜 나는 난민학교에 가는가,하는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아. 왜냐하면 어느새 이 모든 섭리가 내 삶의 일부가 되었거든.

 

 

 

 

*

 

 

사랑이 성숙하게 익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간다.

 

나를 더 알아가기 위해 그를 본다.

그를 더 알아가기 위해 나를 본다.

 

그렇게 지금 이 길 위에 그와 나란히 서 있다. 

뚜벅뚜벅 속도도, 시간도 잊은 채.

 

 

 

*

 

 

가장 나다운 나를 만나러 가는 길,

그리고 나에게 닿은 모든 이들에게 사랑주러 가는 길.

 

이것이 내가 치앙마이를 계속 해서 가는 이유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의 훈이. 치앙다오에서. 
지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나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그대로의 훈이. 치앙다오에서. 

 

 

<6년째 같은 곳을 여행하는 이유>

 

 

- 끝 -

 

 


 

6년째 같은 곳을 가는 이유, 에피소드 열개를 채우고 끝을 맺습니다.

이다음부터 연재되는 글은 <월요여행 단편 시리즈>입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마다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날거에요. 

노트 한 권, 배낭 하나만 매고요.

그곳에서 제가 직접 찍고, 그리고, 적으며 떠올린 것들을 보내 드릴게요.

여행을 통해 어떤 걸 나누면 좋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늘 고맙습니다 :)

 

 


🎧Today playlist

제가 훈이 노래 중에 가장 아끼는 곡이에요. 아래 가사는 몇 번을 곱씹어도 힘이 나요.  
하지만 그때야 비로소 물을 수 있죠 나는 얼마나 강한가 견뎌낼 수 있는가 얼마나 강한가 이겨낼 수 있는가 그 언젠가 사라질 감정들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나 그 언젠가 사라질 감정들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나 미움도 슬픔도 외로움도 사라져 사라져 미움도 슬픔도 괴로움도 사라져 사라져 가네 사라져 사라져 가네 사라져 사라져 가네 사라져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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