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연결되어 있는 것들

자연으로서의 인간

2023.08.05 | 조회 311 |
1
|
위기농부의 프로필 이미지

위기농부

기후위기에서 살아남는 법

위대한 작은 농장인 애프리콧 레인 팜의 지도 (출처. 애프리콧 레인 팜 홈페이지)
위대한 작은 농장인 애프리콧 레인 팜의 지도 (출처. 애프리콧 레인 팜 홈페이지)

서울에만 상영관이 있어서 못 보고 있던 위대한 작은 농장을 얼마 전 우연히 검색해 보았다. 전에 찾아봤을 땐 없었는데 어느새 네이버 시리즈온에 올라와 있어서 바로 구매했다. 그날이 마침 농사 쉬는 날이어서 맥주 한 캔을 따고 영화를 틀었다. 도시에서 자연을 그리며 살던 한 커플이 생명역동농법(Biodynamic), 유기농법, 그리고 재생농법으로 땅을 살려내는 모습이 영상에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 농사와 공동체를 통해 지켜 내고 복원하고자 하는 것들이 근사한 이상향으로 화면에 재현되는 듯했다.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영상 속에는 그들이 겪은 고민과 어려움과 난관 중에 일부만 나온 것일거라 생각하니 각자의 어려움을 견뎌내야 저런 결실도 맺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농장인 애프리콧 레인 팜의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물도, 풀도, 나무도, 새도, 쥐도, 뱀도, 물도, 흙도 그리고 인간도 모두 섬세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 살아있는 자연은 원래 그렇다. 끊어진 곳 없이 이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다.

만들고 며칠 후 연못의 모습 (출처. 우리 밭)
만들고 며칠 후 연못의 모습 (출처. 우리 밭)

우리 밭의 자랑거리

지금의 마을에서 살기로 결정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마을 내에 있는 땅을 사용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시골로 귀촌을 하고 싶다해도 마을에 이미 아는 사람이 없으면 마을 안에서 살 집을 구하는 것부터 어려운데, 여기선 밭까지 같이 해결되니까. 당시 여러 지역을 다니며 농사지을 곳을 찾아 헤매던 중이어서 반가움이 더욱 컸다. 밭이라고는 하지만 원래 논 부지여서 땅에 물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밭에서 처음 한 일이 연못 만들기였다. 땅의 가장 높은 곳에 물이 샘솟아서 그 구역을 그대로 팠다. 물이 혹여나 멈춰있거나 밭으로 넘치지 않도록 배수로를 팠고, 연못의 가장자리를 마을에서 쓰고 남은 벽돌로 꾸몄다. 

연못을 만들고 초반에 가장 걱정이었던 건 물이 자꾸 탁해진다는 거였다. 문득 초등학교 때 배웠던 '물을 맑게 하는 부레옥잠'이 생각났다. 확인차 찾아보니 역시나 부레옥잠이 수질정화에 으뜸이라길래 세 뿌리를 들였다. 그리고서 넓이가 2미터 남짓 되는 연못에 두었다. 딱 3개체를 가져다 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군락이 되었다. 물도 그때부터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맑은 물에 동글동글한 부레옥잠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연못은 우리의 자랑거리였다.

"여기엔 도롱뇽도 있고, 개구리도 있고,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어요."

깨끗한 물에 여러 생명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생태 다양성이 우리 연못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 때문에 모기가 모여들 거라 걱정했는데 장구벌레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을 어르신 말로는 도롱뇽이 모기 유충을 먹는다고 했다. 기특한 연못이었다.

급격하게 번식한 부레옥잠의 모습 (출처. 우리 밭)
급격하게 번식한 부레옥잠의 모습 (출처. 우리 밭)

연못도 생태계다

장마가 지나면서 다른 풀들처럼 부레옥잠도 기세가 등등하게 세를 넓혀갔다. 부레옥잠이 연못을 거의 90% 가까이 덮어서 도롱뇽 새끼는 안보인지 오래였다. 풀 위나 물에 떠 있는 개구리는 보여도 장마 전에 보이던 다슬기 같은 소동물은 보이지 않았다. 맑고 탁하고를 떠나서 물은 잎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물속의 동물들이 숨을 못 쉴까 봐 급하게 낫으로 부레옥잠을 걷어냈다. 옷이 비에 젖어도 어쩔 수 없었다. 동물들이 죽고 물이 썩을까 봐 걱정이었다.

걷어내도 며칠 후면 군락은 넓게 퍼졌다. 부레옥잠 대신에 뭘 연못에 심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연못 수질정화 작물이라 검색하면 부레옥잠을 추천하는 글이 대부분이다. 그게 아니면 개구리밥이나 연(꽃)이 나온다. 하지만 연은 꽃이 지면 보기가 좋지 않고, 개구리밥도 번식력이 너무 좋아서 부레옥잠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다가 한 연못 관련한 글을 보았다. 이우학교라는 생태학교의 학생이 썼던 생태연못에 관한 기사였다. 기사에서 말하는 내용은 하나였다. 연못도 생태계라는 거. 내가 지금 지으려는 농사는 생태계를 모방하는 농사다. 밭에 이랑을 만들어 땅을 나누어도 이랑 하나하나가 각각의 독립된 것이 아닌 다 같은 하나의 땅이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밭에 작게 한편에 비료를 뿌린다 해도 그 땅 전체에 연결되어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나는 자연이 거대한 유기체라는 데에 동의하며 농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연못에는 대입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위에 말한 기사에 따르면 연못은 호소생태계에 속하고, 호소생태계는 식물, 동물, 미생물, 흙 그리고 물 등의 요소와 비생물학적 요소가 모두 어우러져야 한다. 그리고 이 호소생태계는 연못 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연못 주변부까지 모두 포함한다.수질을 좌우하는 요소 중 하나는 식물인데, 이 식물도 침수식물부터 습기를 좋아하는 호습식물까지 호소생태계의 다양한 층위에서 분포한다. 그런데 나는 '물의 정화'라는 기능만 떼어놓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유식물인 부레옥잠만 심었고, 호습식물이나 침수식물 등 연못을 구성하는 여러 식물이 없어 단일 식물만 빠르게 번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농사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분리되고 고립된 도시의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풀-명아주-이 내 키를 훌쩍 넘은 우리 밭 중 하나의 모습 (출처. 우리 밭)
풀-명아주-이 내 키를 훌쩍 넘은 우리 밭 중 하나의 모습 (출처. 우리 밭)

유기적인, 연결된, 우리

농사를 가운데에 두고 삶을 바라보니 더욱 중요해진 건 유기적인 존재로서의 나와 주변이다. 우리가 겪는 기후 위기도 자신과 타인을 나누고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면서 발생했고, 분리된 존재인 인간으로 인해심화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생태 연못이 자연스러운 공간이 아닌 그저 부레옥잠을 가득 담고 있는, 주변과 분리된 커다란 물 그릇이 된 것처럼. 그 연못에 녹조가 생기고 부레옥잠까지 죽어가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유기체로서 나와 주변을 대하고 싶다. 풀과 작물을 함께 농사짓는 풀농사를 하고 있지만, 너무 빨리 그리고 많이 번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풀들을 보면 다 깎아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연결된 존재로서의 풀과 작물, 땅 그리고 나를 보고자 노력하려 한다. 나 스스로도 유기체로 살고 싶은 마음이 생태 공동체를 꿈꾸는 방식으로 커졌다. 여러 사람이 이미 지나가기도 했고 아직 머물러 있기도 한 공동체라는 실험을 지인들과 연습해보고 있다. 나와 지인을 포함한 동시대를 사는 '우리'는 유기적으로 사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시골에서 공동체라는 실험을 통해 연결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 좌충우돌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서로가 연결되는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기적인 존재로 나를 인식할 때 보이는 세상은 이전과 다르다. 우리는 분리되거나 고립되어있지 않고, 원래부터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도 자연이기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위기농부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 맥북원해의 프로필 이미지

    맥북원해

    1
    over 2 year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 2025 위기농부

기후위기에서 살아남는 법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