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미뤄두었던 이야기

어쩌다 시작하게 된 귀농인가

2023.07.15 | 조회 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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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농부

기후위기에서 살아남는 법

이미지. 다큐멘터리 수라 포스터
이미지. 다큐멘터리 수라 포스터

당신의 수라는 무엇인가요?

같이 사는 사람들과 수라를 보러 갔다. 전에 지인한테 여러 번 추천받았던 영화인 데다가 요즘 꼭 봐야 하는 영화로 꼽히는 걸 보고 봐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우리 지역에 GV가 있어서 보고 왔다. 감동적이고 공감되는 영화지만 슬픈 생각이 들어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도 울컥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왔다. 새만금, 갯벌, 새들과 다양한 생명들. 그리고 잃어버릴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아파하며 그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수라.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사람들이 "다 죽었어" 라고 말해요. (중략) 갯벌이라는 이름을 놓지 않으면 갯벌이 돌아온다는 거죠.' 바닷물이 막혀서 말라 죽을거로 생각했던 작은 게를 10여년 만에 발견하는 장면은 그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수라는 누군가의 슬픔이고 아픔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희망을 말하는 영화였다.

GV 끝 무렵에 감독은 관객들에게 물었다. 당신의 수라는 무엇인가요? 이 지역의 수라는 무엇인가요?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내가 떠올린 나의 수라는 지구였다.

 

이미지.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 (출처: BRAC)
이미지.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 (출처: BRAC)

농업과 농촌과 대단한 일

나는 항상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엔 꿈을 물어보면 대통령, 대학교수, 외교관을 말했고, 스무 살이 넘어서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제개발 분야에서의 업력을 쌓기 위해 저개발국의 나라로 1년간 봉사활동을 갔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작은 나라여서 한인 모임이 꽤 활성화 되어있었다. 국제개발 단체나 국가 기관을 통해 장단기로 오는 또래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한 친구를 만나게 됐다. 농업 연구원으로 온 그 친구와 이야기를 자주 나누다 보니 내가 알던 세상이 그가 보는 세상과 너무도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끝이 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도 기이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국제개발 단체에서 일하면서 대부분 빈민가 사람을 만났고, 그 나라에서도 가난한 지역에서 지냈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은 농부이거나 일자리가 없었다. 농부들은 남의 땅에서 일하는 소작농이 100%였고, 열심히 땅에서 농사지어도 자신과 가족들이 먹을 채소 하나 구하기 어려웠다. 그 나라는 채소가 고기보다 비쌌다. 심지어 나라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자국에서 잡은 생선은 대부분 인근의 나라로 수출되고, 해안가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자국민들은 수입된 생선을 사야 했다. 이상한 일들 투성이인 한 해를 보내면서 그동안 굳게 믿고 있던 것들에 대해 의심이 가득해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농업'으로 대표되는 1차산업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농업에 대해 파고들다 보니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고, 농업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농촌과 관련한 일들을 시작했다.

농업 컨설팅으로 시작한 일은 시간이 갈수록 탁상공론이라 느껴졌다. 현장으로 가면 농업에 관한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커졌다. 그렇게 시골 마을의 작은 친환경 회사로 가서 몇 년간 일했다. 농작물 가격의 불안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된 회사여서, 즐겁게 진심을 다해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이미지. 농사여행을 하던 퍼머컬쳐 농장에서 토마토 수확 후 저장을 위해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다
이미지. 농사여행을 하던 퍼머컬쳐 농장에서 토마토 수확 후 저장을 위해 토마토 소스를 만들었다

귀농을 바란 날들

농업의 문제를 인지하면서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희석됐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이제 그다지 상관이 없었다. 내가 공감을 느끼고 감정을 느끼는 범위가 나라는 사람과 타인을 넘어 지구의 모든 생명체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계기는 그리 특별하진 않았다. 국내외로 농사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만났고, 농촌 문제와 연결되는 환경, 기후, 먹는 것에 대한 것도 그동안 책이나 기사로 보아 온 것보다 더 큰 위험이고 심각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부분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나 스스로도 인간종이지만, 인간과 인간이 만든 사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커졌다. 사회적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고 만들어 내는 것보다 이제 나에게 중요한 건 지구에 조금이나마 해를 덜 가하는 것이 되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예전처럼 사는 게 뭘까 고민해 보았다.

-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 건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길러지는지 모르는 삶
-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길러지는지 이론으로는 알아도 실제로 해본 적이 없는 삶
- 돈으로 내 일상의 대부분을 해결하는 삶
-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지 반문하지 않는 삶

국적이나 나이를 불문하고 도시인으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런 삶을 산다 해도 개개인에게 모든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삶에 의해서 내가 위기라고 느끼는 문제들이 심화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채로 계속 살아가긴 싫었다.

그래서 나는 귀농을 바라게 되었다. 스스로 기르고 만들면 예전과는 다르게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고, 지구에 해를 덜 가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시골 회사에 다닐 때 회사 주변의 땅과 집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젊은 외지인이 구할 수 있는 땅은 없었다. 처음 1~2년 정도 시도해 보다가 그 근처에 귀농하는 건 포기했다. 땅과 집을 구할 방법이 돈이라 생각하게 되면서, 시골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도시 중의 도시로 왔지만, 여전히 나는 귀농을 바라고 있었다.

 

이미지. 귀농한 마을에서 가꾸고 있는 작은 밭
이미지. 귀농한 마을에서 가꾸고 있는 작은 밭

신중하면서도 신속한

서울로 돌아와 새로 사귄 친구들도 나의 귀농에 대한 열망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귀농에 대한 바램을 이야기할 때 공동체라는 단어는 언제나 함께 나왔다. 함께 사는 것은 중요하기 때문에, 자급자족하는 생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이곳저곳에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나중에 늙어서도 결혼 못 하고 있으면 나도 받아줘' 라던가 '그거 자리 잡고 일자리 생기면 불러줘'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한 친구도 비슷했다. 'ㅇㅇ님이 만들어 주시면 저도 갈래요. 받아주세요!'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친구한테도 같이 공동체를 만드는 설립자가 되자고 설득 아닌 설득을 하곤 했다. 그러다 몇몇 사람들끼리 서울에서 함께 주말 농사를 하게 되었다. 공동체에만 관심이 있었던 사람도 있고, 농사여행을 몇 번 경험해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진짜 자신의 농사를 한 건 한 명 빼고는 다들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도 결실을 보지 못한 농사를 한 번 직접 지어본 것 외에는 내 밭을 오랜 기간 가꾼 것이 처음이었다. 같이 농사를 한 사람 중 일부와 귀농을 얘기하게 되었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일이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농사 그리고 공동체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그토록 바랬던 귀농도 점차 선명한 꿈이 되어갔다. 가을부터 지역들을 답사하기 시작했고, 각 지역의 농부들과 관계 부처의 공무원들을 만났다. 그러다 한 주무관님의 추천으로 한 마을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촌장님이라 불리는 분이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마을을 어필해 왔다.

10채가 넘는 마을의 집들을 직접 지은 촌장님은 에너지 자립을 컨셉으로 마을을 디자인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우리와 함께 마을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했다. 이 마을로 귀농하면 농사지을 땅도, 살기 좋은 전원주택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몇 년 전의 경험과는 너무도 다른 환대에 이틀 만에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정말 빠르게 결론을 냈지만, 공동체원들끼리 이미 맺은 유대와 지역 답사를 다니며 파악하게 된 각자의 시골살이에 대한 이상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회의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신중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랜 바램 끝에 귀농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기른 채소를 요리해서 공동체 친구들과 함께 먹고, 일상을 기록하고, 지금 남아있는 지구를 지키기 위한 활동들을 모색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잃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 나는 앞으로 글을 써보려 한다.

나는 나의 수라인 지구를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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