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투명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가만히 반짝이는 진실을 제대로 보려면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한다. 한참 만에 드러난 진실이 항상 반갑기만 한 건 아니다. 사실 얼떨결에 진실을 알게 됐지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스타벅스가 그랬다.
사람은 누구나 소비를 할 수밖에 없다. 직접 농사를 짓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남다른 삶을 택한 경우가 아니라면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소비한다. 먹고살기 위해 소비하는가, 가장 본능적인 욕구가 아닌 좀 더 고차원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소비 생활은 대략 이렇다. 출근길에는 습관처럼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주문하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인텔 로고가 박힌 컴퓨터를 켠다. 코카콜라를 들이켜다가 책상에 몇 방울이 떨어져 내리면 옆에 놓인 크리넥스 티슈를 재빨리 뽑아 책상을 훔친다. 퇴근 후에는 백화점에 들러 올드머니룩의 정석이라 불리는 랄프로렌을 동경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클래식한 아름다움에 고개를 끄덕인다. 비싼 가격표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냥 뒤돌아서서는 아쉬운 마음에 에스티로더 립스틱을 하나 사 들고 집으로 향한다. 물론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에서 햄버거를 픽업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로레알 샴푸로 개운하게 머리를 감고 샤워를 끝낸 다음에는 존슨앤존슨 바디로션으로 충분히 보습을 해준다.
사용해본 적이 없는 브랜드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브랜드는 없을 것이다. 이 브랜드들은 모두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오래전부터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래서인지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들 브랜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이런 브랜드를 만들어 낸 기업들이 모두 시오니스트(Zionist) 기업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는 유대인들의 민족주의 운동인 시오니즘(Zionism)을 지지하는 시오니스트 기업으로 의심받고 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시오니즘에는 유대 국가 건설을 향한 유대인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 팔레스타인 땅에 살고 있던 이슬람교도와 유대 국가 건설의 꿈을 안고 팔레스타인으로 모여든 유대인들이 처음부터 서로 총부리를 겨눈 것은 아니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영국은 유대인의 힘을 이용할 목적으로 유대인의 대표 격이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에 서신을 한 통 보냈다.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서신은 훗날 ‘벨푸어 선언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벨푸어 선언문’은 유대인들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아 1948년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는 근거가 됐다. 조상이 살았던 땅에 그 민족을 위한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꿈은 언뜻 보기에 타당하다. 그 꿈이 문제가 되는 건 유대인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집으로 똘똘 뭉쳐 그 땅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총칼로 몰아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터무니없는 논리로 불법적인 행동을 포장해가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서 꿈과 희망,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는다. 물리적인 거리만 따지면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은 유럽보다 훨씬 가깝다. 하지만 심정적인 거리를 따지면, 우리나라에서 몇 광년쯤 떨어진 별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쩌면 나의 소비와도 깊이 얽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은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마신 커피가 총알이 되어 누군가의 머리에 박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마신 커피가 거꾸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기프티콘을 선물할 때도 선물 받는 사람의 편의를 생각해 스타벅스를 골랐고, 친구와 수다를 떨 때도 편하다는 이유로 스타벅스를 찾았다. 투박한 스타벅스 머그잔에 열광했고 심지어 낯선 여행지에서도 익숙한 스타벅스를 마셨다. 그런데, 그 커피잔에 커피가 아니라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총알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스타벅스를 찾기가 힘들었다.
소비에 신념이 더해지자 삶이 불편해졌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나 한잔하자는 친구의 제안이 불편해졌고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얻겠다고 프리퀀시를 모으는 사람들이 우스워 보이기 시작했다. 꽤 의식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스타벅스의 신상 텀블러나 럭키백을 사겠다고 새벽 댓바람부터 몇 시간씩 줄을 서는 꼴을 보면 괜히 울컥했다. 도대체 당신이 낸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알기는 하냐고 따져 묻고 싶은 충동이 들끓었다. 사실 이제 한국은 어지간한 시골 읍내에서도 언제든지 카페라테 한 잔쯤은 쉽게 마실 수 있는 커피 선진국이 됐다.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고 크레마가 풍성하고 우유 거품이 탄탄하게 올라간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스타벅스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자 좀 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다. 집 앞에 생긴 작은 로스터리 카페 주인은 직접 볶은 원두로 신선하고 풍미 좋은 커피를 내려 싸게 팔았다.
스타벅스에 발길을 끊었지만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풍문만 믿고 불매를 택한 나의 결정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기에는 상황이 간단치 않았다. 소비에 잘못된 신념이 더해지면 단순히 내 삶이 불편해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 대한 나의 믿음에 오류가 있으면 크건 작건 누군가가 피해를 보게 된다. 스타벅스가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풍문에 고개를 끄덕여 본 사람이라면 유명한 회사 로고가 주르륵 박힌 불매 기업 목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꽤 정성을 들인 듯 여러 기업의 이름을 분야별로 깔끔하게 정렬해 놓은 불매 기업 목록은 제법 신빙성 있어 보였다. 나 역시도 온전한 유대인의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뽑아내는 기업들의 목록을 보고 스타벅스를 불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반복되자 나의 불매 결정에 의문이 생겼다. 과연 스타벅스를 불매하겠다는 나의 결정은 옳은 것일까?
스타벅스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후원하는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것은 시오피디아(Ziopedia)라는 반유대주의 사이트가 공개한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시오피디아는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가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편지에는 이스라엘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를 수 있도록 스타벅스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가 공개되자 아랍이 분노로 들끓었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하워드 슐츠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스타벅스가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소문은 끝도 없이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 돼서야 시오피디아 운영자는 그 편지를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결국 시오니즘을 혐오하는 사람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작정으로 써 내려간 한 통의 거짓 편지가 스타벅스 불매 운동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일단 공식적인 자료를 뒤져 본 결과만 놓고 본다면 스타벅스는 시오니스트 기업이 아니다. 먼저, 스타벅스는 자사가 시오니스트 기업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거기에다가 해외 진출 현황을 보면 스타벅스가 시오니스트 기업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스라엘에서는 현지 브랜드의 공세에 눌려 2003년에 전면 철수를 결정했지만, 인근 아랍 국가에서는 활발한 영업을 펼치고 있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시오니스트 기업의 행보와는 정반대다.
그렇다면 나의 불매 운동은 어떻게 돼야 할까? 스타벅스의 커피가 맛이 없다거나 서비스가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불매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니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아무런 근거도 없는 완전한 오해 때문에 스타벅스를 피한다면 나의 잘못된 신념 때문에 스타벅스가 커피 한 잔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스타벅스 같은 거대 기업의 입장에서 일개 소비자가 커피 한 잔 덜 마신다고 별일이야 있겠냐마는 한 잔이 모이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모이면 언젠가는 천 잔, 만 잔이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타벅스의 수익이 간접적으로나마 팔레스타인 공격에 쓰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어쩌면 아직은 진실이 투명하게 밝혀진 게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는 계속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스타벅스는 아주 단정하지만 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그런 해명의 글만 내놓았기 때문이다. 아직 확신을 갖고 어느 한쪽을 온전히 지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투명하게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조금 더 무겁게 고려하는 편이 옳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내 의사와 상관없이 스타벅스에 가게 되더라도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산 커피가 팔레스타인으로 날아가는 총알이 될 가능성이 1%도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에 단순히 내 입의 호사만을 위해 스타벅스를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 글쓴이 - 김현정
제법 긴 시간 경제/경영 서적을 번역해 왔다. 책을 좋아해 공부도 내팽개치고 독서에 빠져 살던 학창 시절, 한 여성의 인생 여정을 그린 소설 <조개줍는 아이들>을 읽고 번역가의 꿈을 키웠다.
책이 좋아서 마흔 권이 넘는 책을 번역하고 나니, 이제 내 글도 쓸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과 세상을 향한 관심을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 브런치,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오래오래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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