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생일이 두 번
나는 생일을 두 개다. 음력 1월 14일, 양력으로는 2월 18일 이렇게 생일이 두 개다. 왜 생일이 두 개냐고 물으신다면, “집에서는 음력 생일을 밖에서는 양력 생일을 이렇게 두 번 챙기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생일 선물을 두 배를 받느냐? 또 그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내 생일은 음력으로 따지면 늘 봄방학 시기와 맞물려서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지 못했다. 그게 늘 속상했다. 나는 열심히 친구들의 생일을 챙겼지만 정작 내 생일은 봄방학이라 아이들을 만날 수 없어서 친구들이 내 생일은 잊곤 했다. 더욱이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다 보니 아이들은 매년 바뀌는 음력 생일을 더 챙기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꾀를 내었다. 집에서는 음력 생일을 챙기고 밖에서는 양력 생일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양력 생일도 봄방학 시기와 맞물려서 여전히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매년 바뀌지 않는 생일 날짜 덕에 절친한 친구들은 내 생일을 꼭 기억해 주었다.
부러우면 지는거야
오늘은 음력 9월 24일 사랑하는 남편의 생일이다. 남편은 어릴 적 넉넉지 못한 집안 환경으로 생일 파티다운 파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끔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는 부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곤 했다. 부러우면 지는 거지? 지금부터라도 내가 챙겨주겠노라 다짐하며 나는 남편의 생일을 두 번 챙겼다. 괜찮다며 손사래 치는 남편의 모습에서 생일에 대한 기대감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음력생일은 시댁 식구들과 함께 축하했다. 남편의 생일파티는 음력생일이 하루 차이인 시동생과 함께하는 생일파티였다. 식구라고는 딱 7명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우리 내외, 시동생 내외, 조카 1명. 이 7명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 생일파티였다. 식사 메뉴는 어머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으로 예약했다. 아들들 생일인데 어머님은 꼭 어머님이 드시고 싶은 음식으로 메뉴를 선정했다. (아마 자기를 낳으나 고생한 어머님을 배려한 아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끔 우리가 먹자고 한 음식이 저녁 메뉴로 선택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이 공산당 같은 생일파티가 나는 못마땅했지만 어릴 때도 이렇게 동생과 함께 케이크에 초 하나 불 켜두고 같이 후~하고 불었을 남편을 생각해 화를 꾹 참았다. 케이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생일파티, 어릴 적 남편이 얼마나 서운했을지 짐작이 간다.
열흘 정도 지나면 남편의 양력 생일이 된다. 그날엔 우리 둘이 생일파티를 한다. 솜씨는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준비해 한 상 떡 하니 차려낸다. 벽에 풍선과 현수막을 붙이고 한껏 멋들어지게 장식한다. 생일 축하한다는 손 편지도 준비한다. 1년 동안 조금씩 모은 용돈으로 남편의 선물을 준비한다. 새벽에 잠들어 정오쯤에나 일어나는 남편을 위해 나는 최대한 집을 화려하게 꾸몄다. 마치 돌잔치라도 하는 것처럼 꾸며두면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에는 아이처럼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 성공이다. 남편을 식탁에 앉히고 반주도 없이 생목소리로 남편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한번 부르고 나 혼자 신이나 앙코르라며 또 부른다. 촛불을 끄기 전, 남편은 눈을 감고 소원을 빌며 후~하고 촛불을 끈다. 연기 속으로 아이처럼 웃던 남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남편은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오늘은 남편의 생일
2024년 10월 26일, 음력으로 9월 24일. 오늘은 남편의 생일이다. 남편은 이제 내 곁에 없지만 나는 늘 그랬듯 미역국을 끓이고 케이크를 준비하며 한 상 만들기에 분주하다. 그는 없지만 그가 자신의 생일을 기다리고 좋아했기에 나는 또 그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밥상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오늘 무슨 날이냐며, 귀한 손님이 오시냐고 묻다가 주방 옆 달력에 크게 표시된 아빠의 생일을 금세 알아차린다. 분주한 엄마 옆에서 숟가락도 놓아주고 반찬도 나르면서 아이들도 아빠의 생일을 함께 준비한다. 주인공인 그는 우리 곁에 없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하늘에서 우리가 준비한 생일 파티를 즐기고 있을까? 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생각 나는 날이다.
여보 생일 축하해.
이지연
아들 쌍둥이를 씩씩하게 홀로 키우고 있는 엄마이자 아이들에게 영어와 미디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원 공동체 라디오 Sone FM에서 "그녀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DJ를 하고 있다.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고 있으며, 부족하지만 그림 감상과 글쓰기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